My Life-2018년 추석에, 친구이야기
내가 31년 9개월을 몸담았던 검찰을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난 지도 어언 13년 세월이 흘렀다.
2005년 6월 30일의 일이었다.
딱 3개월이 지난 후인 그해 10월 1일에, 소위 ‘제 2의 인생’이라고 해서 새로운 자리매김을 했다.
바로 서울남부지방법원 소속의 집행관이라는 일터였다.
집행관은 법원이나 검찰에서 오랜 세월 실무적 경험을 쌓은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일터로, 채권자과 채무자 간의 해묵은 갈등을 강제집행이라는 방법으로 끝장을 내는 일이어서 늘 까칠한 다툼이 있는 현장에 서야하는 업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수수료 수입도 짭짤해서, 퇴직 직원들의 선호도가 꽤나 높은 편이다.
검찰수사관 현직에서 대통령 표창도 받고 훈장도 받는 등 나름의 기여도가 있어, 나도 다행히 그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업무가 여유로운데다가 경제적 형편도 좀 나아지다 보니, 내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있었다.
내 오늘을 있게 한 주위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곧 아내고, 집안이고, 그리고 친구들이었다.
아내와 집안이야 늘 내 관심 속에 있었기에 집행관이 되었다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지만, 친구들은 그렇지를 않았다.
그동안 너무나 소홀히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라져야 했다.
이제부터는 챙겨야 했다.
특히 고향땅 친구들이 더 그랬다.
내 앞길만 보고 살아보니, 고향땅을 찾지를 못했고, 그러니 그곳 지킴이로 살아온 고향친구들과의 만남도 뜸했다.
뒤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그 챙김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먼 훗날에 가서 고향 친구들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고향땅을 찾기 시작했고,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고향친구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교통비에 밥값 술값 해서, 당연히 비용도 들었다.
집행관으로서의 업무를 볼 때에도, 그날의 업무가 이어지는 그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을 일일이 챙겼다.
어떤 때는 술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한낮부터 술판이 벌어지는 바람에, 그날의 일을 망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고향친구들과 어울려 우정을 쌓는데 소홀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쌓은 우정으로 따스한 내 가슴이다.
우리 고향땅의 명산으로 하늘을 바친다는 해발 836m의 ‘천주산’(天柱山) 그 정상에 올랐다.
2018년 올 추석 다음날인 9월 25일 화요일 오후 1시 반쯤의 일이었다.
내 생전 처음 오른 봉우리였다.
그 봉우리에 올라서도 내 친구 생각을 했다.
왼쪽 저 아래 동로 마을 풍경도 내려다보고, 저 앞 멀리 맞은편 산 중허리를 파낸 산판 풍경도 건너다보고, 동로 마을에서 산기슭을 돌고 돌아 산북으로 뚫린 도로도 따라 가보고, 그 도로가 까마득하게 안보일 때쯤에 있는 호수 풍경도 내다봤다.
그 호수, 바로 경천호수였다.
물이 꽉 채워진 그 호수를 내다보는 순간, 그 호수 위로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고목훈 친구의 얼굴이었다.
고향땅에서 건축설계를 하던 친구였는데, 사반세기 전쯤의 어느 날 그 호수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 사연은 내 모른다.
그 착한 얼굴, 지금도 눈앞에 선하기만 하다.
평소에 좀 가까이 지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앞선다.
또 안할 수 없는, 내 친구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