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최고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거미인간도 해적도 녹색 괴물도 아니다. 존 맥클레인 형사다. 그가 돌아왔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형사인 존 맥클레인이 죽도록 고생하는 이야기, 다이하드 시리즈의 고전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감각과 조화를 꾀하려는 영화가 [다이하드4.0]이다. 아동용 영화인 [트랜스 포머]의 환타지에 비하면 그래도 [다이하드4.0]의 액션은 훨씬 현실적이다.
할리우드에서 노장들의 귀환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이미 록키 발보아가 되돌아 왔고 인디아나 존스도 귀환을 서두르고 있다. 존 맥클레인이 은퇴하려면 아직도 한참 기다려야 할 나이다. 그가 귀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12년 만에 돌아온 맥클레인 형사는 삶의 풍파를 겪으면서 더욱 완숙해졌고 땀 냄새를 풍기면서 훨씬 더 인간적이 되었다. 원래 별로 없던 그의 머리카락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민머리가 되었고 주름살은 훨씬 더 늘었으며 거칠고 힘든 일은 하기 어려울 것 같은 노쇠한 50대가 되었지만, 액션은 더욱 강해졌고 맥클레인이 겪는 고생담은 더욱 늘어났다. 할리우드 속편의 법칙, 전편보다 무조건 업그레이드시켜라! [다이하드4.0]도 예외는 아니다.
다이하드 시리즈는 뉴욕에서 근무하고 있는 존 맥클레인이라는 형사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내를 만나기 위해 L.A로 갔다가 초고층 빌딩인 나카토미 빌딩 내부에 갇혀 테러범들과 대결하는 이야기(다이하드, 1988년)로 시작해서, 공항으로(다이하드2, 1990년)) 그리고 뉴욕 도심 한 복판으로(다이하드3, 1995년) 맥클레인 형사의 활동범위를 공간적으로 점점 넓혀 나갔다. 이번에는 미국 동부 지역 전체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정부에서 버림받은 컴퓨터 전문가 토마스 가브리엘(티모시 올리펀트 분)가 다른 해커들을 규합해서 보안망을 뚫고 정부의 기밀 시스템에 접근한다. 교통, 통신, 전기와 가스 등을 컴퓨터로 조작해서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트리고 금융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뒤 거액의 돈을 빼내가려고 한다. 그리고 기밀 유지를 위해 계획에 참여했던 다른 해커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분)은 경찰에 붙잡힌 해커 전문가 매튜 패럴(저스틴 롱 분)을 FBI 본부까지 데려다 주기만 하면 임무는 끝이다. 물론 우리가 짐작하는대로 그의 임무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변치 않는 공식은, 존 맥클레인 형사가 원치 않는 시간에 원치 않는 장소에서 원치 않는 사건에 빠져들어 죽도록 고생하는 것이다. 그는 영웅이 되고 싶어 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를 통해 공공 시스템을 장악한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맥클레인은 혼자 싸워야 한다. 더구나 그는 컴맹이다. 컴퓨터 키보드를 통해 손가락 끝으로 세계를 장악하는 테러리스트들과, 오직 연약한 인간의 육체만을 이용해 싸워야 하는 그가 이길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이하드 시리즈가 성공한 것은 존 맥클레인이라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나 람보와 록키 시리즈의 실베스타 스텔론처럼 근육질의 몸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테러 집단에 맞서 죽도록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대중들의 가슴 속에 파고 들었다. 서민적인 영웅을 창조한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이하드 4.0]를 지배하는 것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브루스 윌리스의 육체를 이용한 액션이다. 아날로그 세대를 대표하는 존 맥클레인은 디지털 테러리스트들에게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영웅이 빛을 발하려면 악당이 강해야 하는 법. [다이하드4.0]에서 컴퓨터 테러리스트 역을 맡아 존 맥클레인 형사를 괴롭히는 티모시 올리펀트나 멋진 쿵푸 발차기로 공격해 들어오는 여자 악당 매기 큐는, 3편에서 지적 카리스마를 빛내며 등장했던 파란 눈의 제레미 아이언스에 비하면 중량감이 훨씬 떨어진다. 물론 맥클레인 형사를 위협하는 것은 현실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가상 공간을 장악한 테러리스트라는 설정도 있지만 그래도 3편에 비해서 악당의 존재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다이하드4.0]은 디지털 대 아날로그다. 아무리 디지털 문명의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어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액션은 진화해 왔지만 맥클레인 형사의 캐릭터는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시리즈물은 거듭될수록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 사이즈는 더욱 커지고 물량공세 위주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하지만 다이하드 시리즈는 초심을 잃지 않고 맥클레인 형사의 캐릭터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것이 성공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