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입는(수垂하는) 가사(袈裟) 이야기-법현스님
가사는 승려의 의복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규정한 법식에 맞는 의복이라는 뜻에서 여법의(如法衣), 응법의(應法衣)라 불리기도 한다. 원래 인도에서는 날씨가 더운 관계로 가사만으로 몸을 가리기 때문에 옷(衣)이라 하였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서는 날씨가 추운 관계로 가사 속에 장삼을 입어 가사와 구별하여 의식복, 법복이 되었으며 장삼은 입는다고 하며 가사는 드리운다(수한다)고 표현한다. 가사를 드리우는 것은 남방의 가사와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 단추나 묶을 것을 사용하지 않고 걸친다는 뜻이 배어있다.
부처님은 초저녁 안타회, 한밤중에 울다라승, 새벽에 승가리를 입는 것으로 추위를 막는데 충분하였다. 가사가 옷의 개념에서 의식복의 개념으로 바뀐 중국, 한국에서는 안타회는 5조로, 울다라승은 7조, 승가리는 9조-25조로 구분하여 수하고 있다. 부처님이 강조하신 [3의 1발(三衣一鉢)]은 그곳의 기후와 함께 걸식만으로 식사를 해결할 때는 가능했으나 현재는 ‘검소한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갈마소 (羯磨疏)에 의하면 25조까지 구분해서 만드는 것은 25유(有) 모든 중생을 위해서 복전을 짓기 위한 것이다. 조수를 홀수로 하고 짝수로 하지 않은 것은 출가한 사문이 사람을 가르쳐 훈육하여 세간에 보탬되는 것이 그늘보다 볕의 작용을 따름과 같기 때문이다. 장단은 마치 세간의 밭이랑이 높낮이가 다름과 같으며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성스러운 것은 늘어나고(聖增) 속된 것은 줄어듬(凡滅)을 표시한 것이라고 했다.
가사의 제작 가사를 만들 때 인도에서는 ‘쥐가 씹은 옷, 소가 씹은 옷, 시체가 입은 옷, 생리가 묻는 옷, 바람에 날려 찢어진 옷, 불에 탄 옷, 사당에 버려진 옷’등을 주어다가 꿰매 만들었다. 승려의 수도 많고 쓰임새가 위의와 의식 위주의 의복이 되다 보니 청정성을 중요시하여 처음에는 목면(木綿), 마(麻)등을 사용하였다. 차츰 교세가 확장되고 시세가 바뀜에 따라 견(絹), 면(綿), 모(毛), 마(麻)등으로 변하고 재료를 구하는 방법은 신도들의 보시에 의존하게 되었다.
교리 변천사적 측면에서 볼 때는 마하승기율과 선견율비바사에서는 9종류, 4분률은 10종류, 불아비담경은 14종류로 점차 가사를 만드는 재료의 폭이 넓어져 왔다. 가사의 형태는 폭이 깊고 츰이 낮은 장방형(長方形)에 가로선과 세로선이 구획되며, 일직선의 띠와 같은 형태를 조(條)라고 한다.
가사는 여러 개의 헝겊조각으로 이어 만든 법의이므로 먼저 가사에 놓일 위치에 맞추어서 가사의 중앙선인 주폭과 가장자리의 변폭과 그 사이의 샛장으로 나눈 후 천을 마름질한다. 장지 두꺼운 종이로 본을 만들고 그것에 일정한 치수로 시접분을 두어 재단한 뒤 헝겊을 본에 씌워 접고 인두로 다리면 조각 하나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한 조 한 조를 이어 가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단(短)의 길이는 보통길이의 1/2이되며 장(長) 2매와 단(短) 1매를 연결하는 경우에 2장1단이라 하고 바느질 할 때 흰색실로 상침을 하는 중간에 몇 뜸을 뜨지 않고 통문(通門)을 내는데 횡선과 종선의 한 조가 밭이랑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물이 늘 흘러내리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통문을 내는 것이며 실제는 콩이 드나들 정도로 터놓는다. 통문불(通門佛)이라 하여 한국전통가사에서는 중요시 한다.
각 조가 다 이어지면 가사 네 귀퉁이에 조그마한 4각의 천을 덧대고 그 위에 천(天), 왕(王)의 글자를 수놓거나 온 세계를 정화한다는 의미에서 옴(옴)자를 수놓거나 4천왕상을 수놓기도 하며 뒷부분에는 일.월광을 수놓는다. 고려조의 대각국사 가사엔 상단에 부처님, 2.3단에 보살님, 4단에 경전, 하단에 존자(큰스님)의 명호들이 새겨져 있어 이채롭다. 4천왕이 부처님을 옹호하는 것이다. 일월광은 해와 달을 상징하고 불교적으로는 일광보살, 월광보살로 약사여래의 보처보살이다. 뜨거운 사랑과 넌지시 하는 헌신을 소재로 하는 『자따까(本生經)』의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다.
가사의 색깔 가사의 색깔은 부처님이 만들어낸 법의의 독특한 색으로 실제로 복잡한 색상이어서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색의 이름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자체도 확실히 나타내지 못하는 색이다. 왜냐하면 옷을 해 입는 승려 스스로가 물감 재료를 구해 물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정도에 따라 색이 달라서 일정하게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사의 색깔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처음에는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의 5정색과 홍(紅), 백(白), 녹(綠), 비(緋), 자(紫)의 5간색을 피한 괴색을 사용하기로 하였으나 후에 차츰 변하여 북방불교에서는 적.황색을 주로사용하고 남방불교에서는 황색을 사용해 왔다.
또 ①청.흑.모란 ②청.니.적 ③청.니.서 ④청.니.불균색 ⑤청.모란의 5종 3색설이 있고 청.황.적.흑.모란의 5여법색설(五如法色說)이 있다. 중국불교에서는 돈황 석굴에 아난존자가 적색가사를 편단우견(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으로 수하고 있으며 머리깍는 승려의 모습에 첩상(貼相)가사를 수하고 있다. 음양오행설의 사상에 따라 황제가 중방이므로 황색을 입는 바람에 승려들이 황색을 입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붉은 색 가사를 수했다. 소림사를 중심으로 혜가가 믿음의 징표로 팔을 베었을 때 튄 피가 가사를 적셔 그 때부터 홍가사를 수하고 있다는 전설도 있다. 현대에는 대덕들은 홍가사를 수하고 젊은 승려들을 밤색가사를 수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고구려시대에는 홍가사를 수하고 있었음이 쌍영총의 고분벽화에 드러나고, 백제시대에는 단일색의 첩상(貼相)가사를 착용했으며 신라시대에는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의 영정 및 자장율사가 문수보살로부터 받았다는 석가여래의 가사 등에서 홍가사를 수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산수납가사(山水衲袈裟), 마납(磨衲)가사, 불명호수(佛名號繡)가사, 만수(滿繡)가사, 자황첩상(紫黃貼相)가사, 괴색5조(壞色五條)가사 등을 수했다. 사미는 가사를 수하지 못하고 괴색만의를 입었으며 일.월과 천.왕수를 부착했다. 조선시대에는 홍색가사가 많이 쓰였으며 일제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는 태고종 등에서 홍가사를 수하고, 조계종에서 밤색가사를 수하고 있다.
조계종의 밤색가사는 비구승의 정체성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려중기의 승려인 불일보조국사가 수했던 괴색가사를 모델로 1950년대에 만든 것이다. 또 석문의범에 수록되어 있는 장엄염불에는 아미타불의 덕상을 설명하는 구절에 「녹라의상 홍가사(綠羅衣裳 紅袈裟)」라는 내용이 분명하게 수록되어 있다.
[출처] 스님들이 입는(수垂하는) 가사(袈裟) 이야기-법현스님 (불교사랑반야회) | 작성자 대명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