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길거리 지는 낙엽을 밟으며 어느 지인의 농가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문득 이맘때 어릴적 시골의 추억이 생각났지만, 무엇이든 전문가가 다된 사람들을 따라하는 일은 힘들기 마련이다.
먼지 뒤집어쓴 온몸을 씻어내고,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한 나른한 밤, 창밖의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웅웅거리는 도로변 차소리에 섞여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웬 조화일까? 평소엔 듣기드문 일이어서 싫지가 않았다. 공해라고 느껴지지 않는 또렸한 낮은 데시빌의 소리들...모두가 사람사는 소리이다.
나는 조용한 분위기이면, 뉴질랜드 출신 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글래디에이터' 를 생각한다.
로마의 전쟁영웅이었던 그는 황제의 후계자 제안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달려갔으나, 사랑하는 가족은 황제의 아들에 의하여 몰살당하고 폐허가된 고향들판엔 바람에 휘날리는 밀밭만이 펼쳐져 있는 모습... 뭐라고 표현할 수없는 마음아린 장면이었다. 나는 그장면을 볼때마다 멀어져버린 고향을 생각해보고, 잊혀져가는 그립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되새겨보았다.
노동으로 피곤해진 몸으로 읽다만 책을 펼쳤다. 중국의 '만리방화벽'이란 소제목에서는 제19차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온라인 검열과 통제가 한층 강화되었다고 쓰고 있다.
해외 SNS가 중국시장에 침투하지 못하게 되자, 위챗이나 웨이보와 같은 소셜미디어가 대중적으로 퍼졌다.
지난날 나의 휴대전화에 위챗으로 여겨지는 이상한 연결고리가 들어왔다. 위챗은 틱톡과 함께 중국사이트로 백도어(Back door)에 의한 정보유출이 있다기에 그것을 떨쳐내는데 공을 들인적이 있다.
채팅방 감시나 해외 웹서버차단은 조지 오웰의 소설〈1984〉에서 나온 개념인 '감시사회'에 버금가는 체제로 변해가는 것이라 느껴졌다.
나는 중국이 등소평의 개혁 개방노선을 통하여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작금은 날로 커지는 비리나 빈부격차 등으로 체제유지가 어려워지자 그 한계를 느끼고, 사회주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여 안타까운 생각마져 들었다.
세계역사의 교훈으로 볼때, 독재체제하에서는 그지배층의 권력과 부만 강화되고 축적될뿐, 평범한 국민들이 행복하게 잘살기 힘들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하동출신 고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 중에서 어느 일본인들끼리의 대화 한대목이 생각난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에서 패배하여 전국민이 피해를 입어도 군국주의를 동의한 국민들은 억울해할 이유가 못된다."
굳이 서툰 영어 한마디로 표현하자 면, 'deserve it!(당해도 싸다)'라는 의미이다.
아침에 서편 창문을 여니 옆산에 빨노랑 물들어 가는 단풍이 아름다웠다. 전문 단풍군은 아니어도 성숙해진 계절이 변해가는 풍광을 맛보았다. 바위는 침엽수를 머리에 이고, 활엽은 바위를 감쌌다. 그리고선 적당히 공간을 배분하여 각자의 모습을 드러낸 모습들이 조화로웠다.
그리고 무엇인가 움직임이 더해졌다. 바람이었다. 숲은 가을바람에 흥맞추어 가볍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들어 까치소리가 자주 들린다. 초봄엔 하루에도 몇번씩 집주변을 날으며 재잘거리더니 요즘은 뜸해졌다. 성숙이나 실증이 아닌 삶의 방편일 것이다. 그런가싶더니 어느새 까마귀 소리도 들려왔다. 작심한 듯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 같다. 이 밤에 웬일들일까? 생존을 위한 영역다툼이려니 생각했다.
우리 사는 세상도 삶의 현장이 급격하게 험악해졌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전반적인 경제가 어렵단다.
게다가 코로나마져 대문간을 빗장쳤고, 서민들의 생활물가가 오르고 있다니 걱정이다.
어제 낮 시내를 거닐다 길가 가계에서 순대와 꼬치를 샀더니, 지난날 같은 돈에 비하여 그양이 엄청 적어졌다.
흔히먹던 그런류의 음식들도 주머니 얕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기엔 마음의 부담이 됨직했다.
피치못해 돌보아 주는 찢어지게 가난한 이웃의 삶은 갈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낙담하고 한숨짖는 그들을 생각하니, 삶은 순전한 의무일뿐 축복이 못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가을은 결실로서 풍요로움의 상징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흩어졌던 생각들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모아지고, 달뜨는 언덕에선 보고픔을 실현했고, 그리움을 달랬다.
사람들은 자연에 동화되어 살았고 그에 순응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자연이 인간을 완전 지배하는 것은 폭풍우와 지진과 화산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밤엔 또 달이 뜰 것이다. 이름하여 늦가을 달이다. 사는게 희미해도 선긋지는 말아야지. 청명한 높은 하늘의 가을 달처럼 남은 세월을 보내야 하겠다. 하루 일을 두고 이틀을 생각하며, 머리는 날으고 몸은 빠져드는 나이다. 발버둥친들 제풀에 꺽어질걸 뭐하려 용을 쓰나?
오늘 멀리 있는 예전 친구에게서 소식이 왔다. 세상만사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우정이라 생각하니 이 아니 좋을손가. 마음 보태어 남은 여생에 포근함을 이어갈 것 같다.
모두에게 저무는 가을과 쌓이는 연륜에 결실의 무게가 더하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