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집에서 대구 EXCO학회장까지
신장학회가 지난 10월 9일 대구에서 열렸다. 대구쯤이야 당일로 갔다 올 수 있으니 편한 세상이 되었다. 7시 출발 KTX라 6시 45분에 만나기로 하고 집을 6시에 나서서 쉽게 오는 택시를 탔더니 불과 10여 분 만에 용산 전쟁기념관을 지난다. 언젠가 이곳을 찾아야지 하며 서울시내의 안보관광코스를 개발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국립묘지 참배, 부서졌던 한강인도교, 전쟁기념관과 납북인사들이 끌려 넘은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등등, 이참에 근처 부대에서 군대 밥도 한번 먹여보고. 혼자만의 생각이다.
오랜만에 날씨는 쾌청하다. 집합 시간이 남아 꽂혀 있는 여행 안내서를 본다. 일본 여행과 국내 여행, 더구나 기차로 하는 국내여행은 참으로 좋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고 길이 밀리지 않으니까. 철도회원인 내가 Korail lounge를 기웃거리니까 문이 잠겨있네. 이런 이른 시간일수록 문을 열어야지. Caffe Pascucci에 들어가 Caffe latte를 시킨다. 카페 안의 풍경은 어떤 사람은 아예 신발을 벗고 코를 골며 자고 있고, 연인들이 마주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한적한 풍경이다. 이들을 보니 옛날 내가 집사람과 연애할 때 생각이 난다. 점심을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움켜 안고 내려온 대둔산, 청량리역에서 밤 새 기차를 타고 간 설악산, 초롱불을 들고 반딧불이 흐르는 계곡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헤아리던 잊지 못할 하동 쌍계사 등.
출발 10분전에야 일행이 겨우 모두 모여 기차를 타고 보니 내가 아는 인물들도 학회 참석하느라 몇 명이 탄다. 먼저 모자란 잠을 청한다. 날씨는 바뀌어 옅은 연무가 끼고 구름의 높이는 여름 구름과 가을 구름사이이다. 기차를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에서 잠을 잘 자는 나는 잠 때문에 못 내릴 번한 경험이 있지요. 토요일 병원 일을 끝내고 오후 1시 새마을호를 타기로 하였는데, 서울역 부근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며 고량주 반병을 시켰더니 한 병을 따주면서 반만 마시고 남기라고 한다. 먹다보니 결국 한 병을 다 마시고는 기차를 타고 목이 말라 맥주까지 시켜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덜커덩하여 눈을 뜨니 기차가 동대구역에 진입하고 있었다. 무려 세 시간 반을 잠이 들어 왔다는 것. 요즈음은 반드시 내리기 10분전에 처한테 전화를 부탁한다.
다른 이야기는 의과대학 다녔던 질녀가 자다가 내려야 할 역, 동대구역을 놓치고 부산까지 가서 난리가 났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형 내외가 밤에 동대구역에 마중을 나갔다 떨애를 못 만나서. 밤중에 나에게 형이 전화를 해서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 그런데 웃기는 일은 자다가 못 내린 사람들이 여럿 있어 부산역에서 봉고차를 세내어 오다 경산쯤에서 전화가 왔다 한다. 몇 년 전 대구에서 열린 우리 신장학회의 평의원회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지요. 내가 잘아는 회원이 밀양에서 하차하여 돌아오느라 늦었다. 대전 을지대학에 근무하는 나의 제자도 우리대학에 초청하여 강의 끝나고 술을 사주었더니 대전을 지나 영동까지 갔다 밤늦은 시간에 대전에 돌아오느라 택시비로 강의료 다 날렸다고.
내가 잔 잠 가운데 가장 비싼 잠은 1990년 베를린에서 학회가 열렸는데 강변에 있는 아름다운 회의장 ICC(일명 White Elephant)에서 개회식이 끝나고,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라이프지히 게반트하우스의 베토벤 교향곡 5번 연주에서, 깜빡 졸고나면 한 악장이 끝나고, 또 졸고나면 한 악장이 끝나 이 훌륭한 지휘자의 오케스트라를 꿈속에서 들었으니 비행기 운임을 생각하면 원가가 많이 들었지요.
옆자리의 전임의 김선생과 통일이야기로 돌아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통일이 되면 그 비용 때문에 국민소득이 대폭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나는 실질소득이 반이 되더라도 나는 삶의 질을 변화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다고 자신. 그 이유는 차는 줄이고, 적은 차로 바꾸고, 전화도 줄인다. 주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보리밥을 먹으면 되고, 비싼 쇠고기대신 돼지고기, 그마저 비싸다면 닭고기를 먹으면 된다. 좋고 비싼 술 대신 슈퍼마켓에서 갤런으로 파는 35도짜리 소위 과일 담금 술을 마시면 되고, 외국여행 시에 비행기 급을 낮추어 타고, 횟수를 줄이고, 나의 취미생활이 돈이 들지 않는 등산이니 아쉬움이 없으나 신세대들은 이런 걸 견뎌낼까?
김선생이 자기가 아는 사람은 KTX로 대전까지 출퇴근한다고, 그러니 나의 예쁜 소아과 여선배가 생각이 난다. 왜 그 시절에는 전공의 시험 응시조건에 무의촌 근무 6개월을 하여야 했으니까. 73년 무의촌파견을 원주로 갔을 때 그 험악한 시절에 원주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 분이다. 요즈음은 양평부근에 사신 다 던데. 한번 안부 전화나 해봐야지.
대전이 가까워오니까 안개가 짙어진다. 언젠가 신장학회를 유성에서 연 적이 있었는데 안개가 너무 진하여 대구에서 온 회원들이 유성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놓쳐 신탄진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나는 다음날 그 안개 덕으로 유성 컨트리클럽에서 10년 골프를 치면서 처음으로 head up을 하지 않아 nine에 30대 후반을 쳐 보았는데, 물론 안개가 걷히고 나서는 40대를 훌쩍 넘었지만.
다시 잡지를 본다. 소박하게 느리게 그래서 더 행복한 사람들 코너에 돈 없는 사회 연두농장, 삶을 유랑하는 즐거움 생활여행가, 자연에 안겨 살다, 곡성 외얏골 등, 그러나 사회생활이 바쁜 나 같은 경우는 동경만 하여도 실현은 어려운 법. 다음 주 부산 BEXCO에서 열리는 IDF의 좌장을 맡았기 때문 동래구 맛집 소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가 국내에서 본 잡지 가운데 가장 읽을거리가 많고, 또 바로 이용할 수 있고 비싸지 않은 곳을 소개하니까 더욱 좋다.
대구의 염색특구를 지난다. 열병합발전소의 디자인한 굴뚝 들, 마치 올림픽대교처럼 만들어진 매천대교를 지나 50년대 부모님의 동네 계원들이 가을 야유회를 가는 지천 밤 숲, 여름철 대구 시민들의 모래찜질로 유명한 팔달교이다. 그러나 한동안 그 맑았던 물들이 시커멓고 더러운 물로 변하였더니 다시 백로가 노는 맑은 물로 바뀐 걸 보면 “산하는 가꾸는 것이다.”를 실감한다.
히말라야 시이다가 보이는 걸 보니 대구가 가까워진다.
벌써 쓴글인데 올리는 걸 잊어 버렸네요.
아래의 사진들은 학회 중 지루해서 살짝 밖으로 나오니까 광장에 먹자 판이 벌어졌습니다.
몇년전에 저 순대를 사와서 다음날 서울성곽 산행때 동동주랑 먹었지요.
신장학회보다 우선하는 음식박람회 현수막
이건 다꼬구이같은데.
대구의 납작만두는 유명.
점심으로 나 온 도시락이나 배는 부르고 맛은 별로.
아래의 사진은 전시장 안의 모습입니다.
홀에서 본 대구미녀들.
날도 더운데 좀 떨어져서 가지.
거리의 악사들.
구두쇠로 유명하고, 좋은 일로 유명한 인터불고 그룹이 지은 호텔.
나갈 때보니까 한판 벌리고 있습니다.
첫댓글 안보관광 코스는 좋은 아이디어 같아 보입니다.
사진이 많아 볼꺼리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