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위, 청암처럼 충직하게 살고 삶을 아름답게 회향한 고 청암 박태준 회장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강 선생님은 저와도 교사불자회 20년 지기입니다. 밝고 자애로운 분이지요.
법륜스님은 최근에 청암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고 포항공대에서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회도 하였습니다.
故 박태준 명예회장과 23년前 인연 강순남씨, 눈물의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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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지난 14일 오후 7시쯤 경북 포항시 남구 대도동 포항문화예술회관. 고(故) 박태준포스코 명예회장 분향소가 차려진 이곳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강순남(58)씨가 들어섰다. 합장한 채 눈을 감았다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회장님은 우리 가족이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도와줬던 햇살 같았던 분입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강씨는 1978년 포항종합제철에 근무하던 남편 이진욱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1988년 정부의 감사에 대비하며 감사 마지막 날인 12월 9일 포항의 한 여관에서 잠을 자다 돌연 숨을 거뒀다. 다섯 살과 초등학교 2·3학년인 딸 셋을 혼자 키워야 했던 그녀는 남편의 순직 처리를 요구했으나 "근무 중 회사에서 숨진 게 아니라 곤란하다"는 회사 측 답만 돌아왔다. 그달 30일 동네 은행에 가던 중 한 남성으로부터 "혹시 지금 박태준 회장님과 점심 먹을 생각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 응했다.
박 회장은 이날 제철소 노조 문제로 맘이 편치 않아 비서에게 "누가 내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누구든지 데려와라"고 지시했고, 우연히 강씨가 제의를 받았다. 밥과 국, 생선구이 등이 차려진 사택 식탁에서 박 회장은 과거 척박한 상황에서 제철소를 세웠던 경험담 등을 쏟아냈다. 얘기를 끝낸 박 회장은 "이제 부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강씨는 "내 남편을 포철에 바쳤으니 순직 처리해주세요. 광양제철남초등학교에서 교사를 채용하는데 제가 지원 자격을 갖췄으니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들을 키워야 합니다"하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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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제공
박 회장은 "서른여섯이면 내 딸이랑 동갑이다. 지금 얼굴이 말이 아니니 밥그릇을 다 비우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강씨는 오랜만에 밥그릇을 싹 비웠다. 박 회장은 "남편 부조금"이라며 100만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도 건넸다. 강씨가 거절하자 "큰딸 결혼 축의금 미리 주는 셈 치자"며 다시 권했다. 봉투 겉면엔 '꿋꿋하게 잘 살아가기 바랍니다'라는 글도 써 줬다.
만남 후 맞이한 새해 1월 남편은 순직 처리됐고 강씨도 제철남초등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포항제철서초등학교 등으로 근무지를 옮겼고 3년 전 명예퇴직했다. 강씨는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틀을 마련해 준 고인은 내 마음속 친정아버지"라고 말했다.
첫댓글인연(원인과 조건)이란 지금 현생의 한 생애만을 알고 지금 이것이 전부인줄 아는 중생의 좁은 견해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계합하는 희유한 인연입니다. 박회장님도 정광화 선생님도 참 아름답고 꿋꿋하신 분들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회향한 고인의 극락왕생을 빌고, 강순남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첫댓글 인연(원인과 조건)이란 지금 현생의 한 생애만을 알고 지금 이것이 전부인줄 아는 중생의 좁은 견해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계합하는 희유한 인연입니다. 박회장님도 정광화 선생님도 참 아름답고 꿋꿋하신 분들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회향한 고인의 극락왕생을 빌고, 강순남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살다보면 감사함을 넘어 감동적일 때가 있습니다. 고인은 강선생님을 더욱 강선생님답게 해 주셨고, 강선생님은 고인을 더욱 고인답게 해 드렸습니다. 강선생님 가정은 고인에게 지곡의 제철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