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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23-20 / 믿음의 결단
히브리서는 믿음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단순한 믿음에 의해서만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이시다. 이러한 것이 그의 관점이므로, 그것은 계속적으로 믿음으로 ... 믿음으로 ... 믿음으로라고 반복되어진다.
구약의 성도들은 즉, 아벨은 믿음을 좇아 사는 방법을,
에녹은 믿음을 좇아 행하는 방법을,
노아는 믿음을 좇아 사역하는 방법을,
아브라함은 믿음의 모범을,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죽음에 직면하여서의 믿음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믿음의 결단 는 선택을 모세에게까지 온 것이다.
모세는 참된 믿음이 내려야 하는 결단들에 대한 위대한 표준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1. 바른 결단을 내려야 하는 모든 기회들
인생은 많은 결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결단은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이며,
그 후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단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성숙된 한 가지 모습은 올바른 결단을 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계속적으로 올바른 결단들을 내리게 될 것이지만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이와는 반대가 될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거룩함은 바른 결단들을 하는 것이며,
육체의 욕심은 잘못된 결단들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1. 사단이 유혹할 때 당신은 ”아니오.!”나 혹은 ”예!”로 말하기로결단한다.
2. 전도할 기회가 생겼을 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할 시간을 가질 수도, 혹은 갖지 않을 수도 있다.
3. 당신이 약간의 여분의 시간들을 가지게 되며, 성경을 읽을 여분의 기회를 가지게 될 때, 당신은 그것을 읽기도 하며 혹은 읽지 않기도 한다.
4. 당신이 주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교제를 갖기도 하고, 혹은 갖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과 내가 내리는 결단들은 항상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전체 영역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태초로부터 하나님께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선택을 할 기회를 사람들에게 주셨다. 선택을 해야 했던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였고,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이 행동했던 것이다.
모든 인생의 전환점은 당신과 내가 내리는 결단들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모든 기회를 잡기도, 혹은 육체와 세상과 사단의 길을 선택함으로 그것들이 놓쳐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2. 바른 결단을 내리라고 하는 권고
사람들이 결단하는 방법은 그들의 순간적인 운명 뿐아니라
영원한 운명까지도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신다.
1) 신명기 30장 19절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 열왕기상 18장 21절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3. 바른 결단을 내린 사람들의 사례
1) 히브리서 11장
아벨 - 아벨은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여 더 나은 제사를 드렸으나 그의 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벨은 축복을 받았으나 그의 형은 저주를 받았다.
노아 - 노아는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여 그분께 순종하여 그분이 말씀하시는 바를 행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물에 빠져 죽었다.
2) 열왕기하 22장 2절
요시야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4. 올바른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의 적(適)
바른 선택들은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나오게 된다.
당신은 믿음의 방패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가? 그것은 믿는 것이다.
매 시간 당신이 하나님을 믿을 때 사단의 쏘는 것들이 그치게 된다. 사단이 와서 ”이것을 해!”라고 말하지만, 당신은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아 ...하나님께선 이것을 하라고 말씀하셨어!”라고 응수할 때 믿음의 방패가 들려지게 되며, 사단의 사나운 불길들은 꺼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죄를 짓는 매 시간은 당신이 하나님보다는 오히려 사단을 믿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죄에 대한 방패는 믿음이다.
모세는 믿음을 좇아 살았던 사람이었고, 그의 방패는 들려 있었다.
모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은 출애굽기 2장에서부터 신명기 34장까지의 다섯 권의 모세 오경 가운데 네 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구약의 인물들 중 가장 위대하고도 특출한 사람이었다. 그의 위대함은 율법주의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의 그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다.
믿음으로 거절한 것들(24-27절)
Ⅰ. 세상의 권세(24절)
”...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출애굽기 1장 22절-2장 10절 ...바로는 이스라엘에 새로 태어나는 모든 아들들을 죽이거나 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3개월 동안 그를 숨겨 키웠다. 그러나, 그들이 더 이상 그를 숨길 수 없게 되자 그를 상자에 담아 강에 띄웠다. 그는 강을 따라 흘러서 바로의 공주가 목욕을 하고 있는 곳으로 왔다. 그녀가 이 작은 상자를 보고 열었을 때, 그속에서 모세가 발견되었고, 그녀는 모세를 자기 아들로 삼았던 것이다.
모세는 당시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하며 진보된 문명을 가진 애굽에서 성장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었으므로 왕자였으며, 특별히 그는 언젠가는 그 땅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이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배자는 바로였는데, 모세가 그 반열에 있었기 때문이다.
1. 모세의 예비
출애굽기 2장 9절은 ”바로의 딸이 그(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라고 말하고 있다. 요게벳은 모세가 젖을 뗄 때까지 길렀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기간이 3-12년 정도까지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그는 유대인 가정의 모든 훈련을 받았으며 그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2) 애굽의 지식에 있어서
그의 부모의 훈련 기간이 끝난 후 그는 애굽의 왕자로서 왕궁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애굽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그의 설교 중에 이 점에 대하여 언급한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그 기간 동안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교육을 받았다. 그는 바로의 집안에 대하여 교육되는 최고 수준의 것들을 교육받았으며, 바로의 집안에 속한 자들에게만 가르치며 전할 수 있었던 것들을 배웠다.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자 그는 애굽의 지식 위에 뛰어나게 되었다.
애굽의 정규 교육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즉, 상형문자 읽고 쓰기, 성직자용의 서체, 책 베껴쓰기, 가나안의 모든 언어들을 배우는 것 등등이다.
그가 구약의 맨 처음 다섯 권의 책인 오경을 기록할 수 있게 하는 데 이러한 교육의 모두가 그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애굽에 있는 40년 동안, 하나님께선 그를 훈련시키셨으며 대단한 인물로 만드셨으며, 그 후에는 사막에서 그를 깨뜨려 보잘것 없는 자로 돌아가게 하시는 데에 40년을 쓰셨고, 그리고 난 후에야 하나님께선 그를 40년간 사용하셨던 것이다.
2. 결단에 있어서 모세의 관점
모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대단히 중대한 결단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완전한 애굽인이 되든가, 아니면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연합하든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었다.
그 40년의 기간 동안에 그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있어서 결코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40년 동안 그는 특권과 권세와 지위와 애굽의 왕자로서의 모든 영광을 누려 왔었다. 중대한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닥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오셔서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의 백성에게 돌아가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약속하신 땅에까지 인도하여 내기를 바라신다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모세는 그가 왕궁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노예들과 함께 살아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잊어 버리고 그가 가진 모든 혜택을 그대로 누리고 살아가느냐 중에서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2) 그의 선택-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에서 이것에 관하여 23-25절에서 말하고 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 자신을 구원할 자로 부르셨음을 알았으므로 그는 ”만일 내가 저기로 들어가 저 애굽인을 죽이면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의 편인지가 증명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구원할 자임을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았으며 적극적으로 그것에 응답했던 것이다.
- 왕궁의 영광을 거절함
히브리서 11장은 모세가 왕궁의 영광을 어떻게 취급했는가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는 그 모든 것을 던져버렸던 것이다! 24절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라고 말한다.
모세는 세상의 권세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더 나은 나라와 상급을 가지고 계심을 알았다. 권세와 영광과 명예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얻게 되기를 꿈꾸며 자신들의 전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모세는 그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무엇이 위대한 것인가? 세상의 표준 : 하나님의 표준....세상의 표준
세상은 그 자체의 평가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은 어떻게 영광을 얻는가?
대개는 다음의 네 가지 방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해서일 것이다.
출신 가문 - 만일 당신이 권세있는 가문에서 태어난다면 당신은 영광을 받게 되며, 자동적으로 어느 정도 위대함을 지닌 것으로 대중의 눈에 비치게 된다. 그런데 당신은 조금도 그 위대함을 갖추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돈 - 세상이 권세와 영광을 평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또다른 하나는 돈이다. 만일 당신이 많은 금은 보석들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세상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항상 참된 영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몰두하고 있다.교육 - 만일 당신이 당신의 이름 뒤에 상당한 학위명들을 지니게 된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위대함의 특성이며 존중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위 - 세상이 영광을 주며 위대하다고 평가해 주는 마지막 이유는 당신이 우연히 특별한 지위에 있게 되거나 아니면 당신이 하고 있는 일, 즉 그것이 체육이든 오락이든 재정이든 사업이든 기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으로 유명한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도 위대함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존중히 여기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을 근거로 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어느 가문 출신인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가,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나, 혹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지위에 있는가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그분은 위대함이라는 것에 있어서 이러한 것들을 조금치도 상관하지 않으신다. 나는 이것을 모세, 다윗, 아브라함, 엘리야, 혹은 다른 어떤 구약의 성도들보다 위대했던 한 사람을 당신에게 소개함으로써 증명해 보려고 한다.
하나님의 표준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한 표준이 어떠한 것인가는 세례(침례)요한이라는 인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까지 살았던 모든 자들 중 가장 위대한 자로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로 위대하게 하였는가?
우리는 그것이 그의 가문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평범한 제사장의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돈도 아니었다. 그는 사막에 살고 있었으며 낙타의 가죽으로 만든 흡사 타잔의 옷과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교육도 아니었다. 그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지위도 아니었다. 그는 광야에 살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돈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초라한 옷을 입고 굶주리며 사막을 유리하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11 상반절에서 ”...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느니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위대하게 만들었는가?
누가복음 1장 15-16절에는 세 가지 사실이 나타나 있다.
1. 그는 순종했다.
2. 그는 성령으로 충만했다.
3.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많은 심령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세상과는 전적으로 다르게 위대함을 평가하신다는 사실이다. 세상 것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겠는가?
요한일서 2장 15-17절에서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로 모세는 세상이 줄 수 있었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Ⅱ. 세상의 즐거움(25절)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죄는 재미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즉, 죄란 즐길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라는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선택, 아니 결단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바를 행하거나 아니면 불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불순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왕궁에서 살게 될 것이며 내가 원하는 모든 좋은 것과, 여인들과 돈과 권세와 영예를 누리게 될 것이며, 그것은 대단히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노예 상태로 있는 저 사람들에게로 내려가 저들을 위하여 헌신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선택이다. 만일 내가 현실에 안주한다면 죄가 될 것이며 저들에게로 간다면 순종하는 것이 될 것이다.\그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의 백성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는 죄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애굽 궁전에서의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했었더라면 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른 장소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는 그가 애굽의 궁전에 있는 것이 죄가 아니었으나, 그 이후에는 죄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당신은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가?
즉, 어떤 것을 소유한다거나 돈을 소유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도록 요구하시는 바를 무시하기로 하지 않는 한, 세상이 주는 어떤 영광들을 소유하는 것으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죄다.
죄는 잠시 동안은 재미있는 것일 수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일 뿐이다.
1. 욥기 20장 5절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
2. 욥기 21장 7-13절
욥은 하나님께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한지”를 원망한다. 당신은 왜 탐욕스러운 모든 자들이 당신보다 훨씬 나은가를 하나님께 여쭈어 본 적이 있는가 ?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그들은 소를 기르는 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뜻임)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그들에게는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이 있다는 뜻임)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인가! 죄는 잠시 동안은 정말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있다가는 사라져 버린다.
3. 시편 73편 12-19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4. 야고보서 5장 5절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당신은 도살되기 위하여 살찌워가는 돼지나 소를 본 적이 있는가? 야고보는 ”너희가 너희 자신을 살찌웠으며 너희가 원했던 바를 행하여서 도살의 날에 살찌고 염치없이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갑작스럽고 재빨리 임할 것이다.
모세는 ”죄는 재미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잠시뿐 ...너무도 잠시뿐”이라고 말했다.
가장 지고(至高)하고 오래 지속되는 기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행하는 것에 있다.
당신도 알고 있는 바지만, 나는 다윗이 밧세바와 함께 많은 즐거움을 누렸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후반기에 그는 죄 가운데서 ”...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자녀들이 자기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가 밧세바와 불륜을 행함으로 낳은 아이는 죽었으며 그의 아들 압살롬은 그에게 반역하여 죽음으로 끝을 맺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의 인생에 나타나는 처참한 일들을 목격했던 것이다. 죄는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윗에게 그것을 되풀이하라고 했다면, 그는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主)께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시는 것은 영원한 기쁨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모세는 자발적으로 잠시 동안의 향락을 즐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택했으며 이것이 바로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