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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태풍 (1)
게이조와 나쓰에는 일요일 아침 여섯 시에 떠날 예정이었으나, 나쓰에가 여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게이조는 토요일 오후에 떠나기로 했다. 삿포로에 있는 다카기를 만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오후였으므로 도오루와 요코가 나쓰에와 함께 역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처음이군, 모두 같이 배웅하러 나온 건.”
기차 안에까지 들어온 가족들을 둘러보면서 게이조는 만족스럽게 말햇다.
“그래요. 온 식구가 배울할 만한 여행은 전에는 떠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나쓰에는 쾌활하게 맞장구를 쳤다.
“아빠, 선물은 뭐든지 좋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주문할까봐요.”
도오루가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게 좋아. 뭘 살까 하고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그래, 뭐가 좋겠니?”
“전 가능하면 여러 곳의 그림 엽서하고 지도가 좋겠어요.”
“그거 아주 쉬운 부탁이로구나.”
“그리고 가시는 곳마다 흙을 조금씩 퍼다 주세요. 치가사키의 할아버지댁 흙도 갖다 주세요. 봉투에 넣어 어디 흙이라고 써서 말이에요.”
“허, 흙을 공부할 거냐?”
“네, 전 의사가 되지 않고 과학자가 될 거예요.”
“지질학자 말이냐? 뭐든지 좋지만 아빠는 도오루가 아빠의 병원을 맡아줬으면 하는데.”
나쓰에와 요코는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듣고 잇었다.
“병원은 아빠 대에서 끝이에요. 전 싫어요. 병원에서 사람이 죽는다는지 하는 걸 보는 게 싫어요.”
“그래? 병원은 아빠 대에서 끝장이야?”
게이조는 약간 쓸쓸하게 웃었다.
“여보, 15호 태풍이 온다는데 괜찮을가요?”
“뭐가?”
“연락선 말이에요.”
“괜찮겠지. 위험하면 아예 출발하지 않을 테니까.”
“아빠, 연락선은 몇 시에 타는 거예요?”
도오루가 물었다.
“내일 아침 여덟 시에 삿포로를 떠나게 되니까 아마도 오후 두 시 사십 분일 거야.”
“여보,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전해 주세요.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나쓰에가 약간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발차 벨 소리가 울렸다. 나쓰에가 허둥지둥 홈에 내리는 모습을 게이조는 카메라에 담았다. 그로고는 그는 차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이조는 차창 밖으로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었다.
“이제 아빠는 보이지 않아.”
나쓰에가 말해도 요코는 기차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즐거운 일요일인데 비가 오네.”
창가에서 오후의 하늘을 쳐다보던 도오루가 나쓰에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그렇구나.”
오늘 저녁에 찾아오겠다는 무라이의 전화를 받고 나쓰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빠는 오늘 아침에 삿포로를 떠나겠네요. 지금은 어디 계실까요?”
도오루는 나쓰에 곁에 와서 앉았다.
“글쎄다. 두 시 사십 분에 배가 떠난다고 했으니까 지금쯤 하코다테를 떠날 거야.”
나쓰에는 게이조의 일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보다는 무라이의 방문을 도오루에게 뭐라고 설명할까 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도오루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나쓰에의 키만큼 자란 도오루는 중학교 1학년이지만 모든 면에 민감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아빠의 배가 혹시 태풍을 만나지 않을까요? 태풍이 홋카이도에 상륙한다고 아까 라디오 뉴스에서 말햇는데.”
“아빠는 도오루와 마찬가지로 조심성이 있으니까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배를 타지 않을 거야.”
“그러시겠죠. 그런데 이번 태풍은 아사히가와에도 상륙할까요?”
“아사히가와 기상대에서는 아무 말도 없잖니? 걱정 마.”
“네, 아무 경보도 없긴 하지만.”
“아사히가와엔 태풍다운 태풍은 지금까지 불어온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그런 걱정할 것 없어. 그런데 그보다 곤란한 일이 있어.”
“곤란한 일이라니, 뭔데요?”
도오루가 어른다운 표정으로 엄마의 의논에 응할 어조로 물었다.
“오늘 저녁에 무라이 선생이 찾아오신댔어.”
“무라이?……..아, 그 도야에서 돌아온 선생 말이에요?”
“응, 그래.”
“뭣하러 와요?”
“무슨 중대한 얘기가 있나 봐.”
나쓰에는 도오루에게 미리 연막을 쳤다.
“중대한 얘기라면 아빠한테 하면 될 텐데요. 만나기 곤란하면 거절해 버리죠, 뭐.”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곤란하지.”
“엄마는 모르는 얘기예요?”
“아니, 엄마도 아는 얘기야.”
“뭐 그럼 와도 괜찮지 않아요?”
도오루는 딱 잘라서 말했다.
“하긴 그렇구나.”
나쓰에는 도오루가 아직 어린애라는 것에 안심하고 씽긋 웃었다.
도오루는 게이조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남자가 찾아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무라이가 찾아올 무렵이면 게이조는 혼슈에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쓰에는 해방감으로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저녁때 찾아오기로 되어 있는 무라이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내도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을 기다리는 초조한 감미로움을 나쓰에는 몇 해 만에 처음 맛보았다.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시키고 무라이의 발소리를 기다렸다. 자갈 밟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 어느 집 개가 슬쩍 지나가는 것이 대문의 불빛 아래로 보였다. 나쓰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오지 않을지도 몰라.’
시계 바늘은 일곱 시 반을 지나 있었다.
“엄마, 병원 선생님 안 오시려나 봐요.”
도오루와 요코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글쎄 말이다.”
“약속해 놓고 오지 않는 건 실례예요.”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있나 보지.”
변호하는 듯한 나쓰에의 말에,
“그럼 전화라도 걸어 줘야지요. 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싫어.”
하고 도오루는 쌀쌀하게 말했다. 요코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코미디를 들으며 킥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고 말하려는 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쓰에는 허겁지겁 일어났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렇게까지 허둥거릴 건 없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쓰지구치 집인데요.”
“아, 저 무라이에요. 오늘 찾아뵈려고 했는데 급한 환자가 생겼어요.”
나쓰에는 몸 속에서 나사가 풀린 것처럼 힘이 빠졌다.
“여보세요, 녹내장 환자예요. 급한 환자여서 전화로 길게 얘기할 수도 없군요. 미안합니다.”
“네.”
“내일 저녁엔 틀림없이 찾아뵈려고 하는데요.”
무라이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내일까지의 하루가 지금의 나쓰에에게는 무척 길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녹내장이 보통 병이 아니라는 것은 나쓰에도 알고 있었다. 황급한 전화였긴 하지만 전화를 해준 것만으로도 무라이가 성실하게 생각되었다.
나쓰에는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아 보통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 속에 눕자 내일 무라이의 방문이 더욱 간절히 기다려졌다. 의논할 것이 있다는 말도 다닞 만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나쓰에는 남편을 배신할 심산이었다. 무라이를 통해 남편을 괴롭혀 주고 싶었다. 그러나 요코를 키우게 한 원한은 그것만으로는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대로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무리이와 맺어진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복수의 명분으로 혹은 단순히 정사를 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것은 나쓰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쓰에는 깊은 잠에 빠졌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누가 세차게 유리문을 흔드는 소리에 나쓰에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누구일까?’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나쓰에는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시켰다. 다시 유리문을 세차게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온 집안의 유리문이라는 유리문은 모두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바람이었다. 바람이 적은 아사히가와에서 살다왔으므로 나쓰에는 태풍을 잊고 있었다. 태풍은 나쓰에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숲이 울부짖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탁류 소리와 같은 울부짖음이었다. 문을 흔든 게 바람이었다는 것을 아게 된 지금도 나쓰에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폭풍에 편승해서 누가 들어올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복도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금세 방안에 성큼 무서운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집이 흔들렸다. 거대한 바람의 무더기가 미쳐 날뛰듯이 집으로 부딪쳐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쓰에는 태풍보다는 사람이 무서웠다. 아무래도 누가 집안에 숨어 있는 거처럼 생각되었다. 뚝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바람에 지워지는가 싶으면 다시 집이 크게 흔들렸다. 나쓰에는 어둠의 공포에 견딜 수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머리맡에 있는 전기 스탠드에 손을 뻗쳤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어둠을 찢는듯한 날카로운 빛이 번쩍 나쓰에의 손을 비쳤다 번개였다. 다시 어둠이 깃들자 넓은 집안이 더욱 음산하게 느껴졌다.
지붕 함석이 두세 장 연달아 바람에 벗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쓰에는 회중 전등을 가지러 가려고 몸을 일으켯다 순간 미닫이가 쓱 열렸다.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 순간,
“엄마!”
하는 도오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도오루구나.”
잔뜩 긴장해 있던 몸과 마음이 일시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무서운 바람이죠, 엄마?”
“그러게 말이다. 어두운데 용케 내려왔구나.”
“우리 집인데, 뭘. 손으로 더듬으면서 내려왔어요. 이층은 바람에 막 흔들려요. 금세 집이 날아갈 것 같아요.”
나쓰에는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와 회중 전등을 갖고 왔다. 먼데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바람이 삼켜 버렸는지 금세 사라졌다. 나쓰에는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나서 도오루의 손을 잡고 요코의 방으로 갔다. 요코는 깊이 잠들었는지 바람 소리에도 깨지 않았다. 나쓰에는 꽤 무거워진 요코를 들쳐 안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 지금 몇 시예요?”
“벌써 한 시야. 도오루도 여기서 자거라.”
“네. 하지만 라디오로 태풍의 진로를 들어야 하는데.”
“정전이라 라디오도 들을 수 없어.”
“아, 그렇지…..하지만 트랜지스터가 있어요. 제가 이층에서 갖고 올게요.”
“요코가 잠들었으니 이어폰으로 들어.”
도오루의 이불을 깔아 주고 나쓰에는 요코 옆에 드러누웠다. 도오루는 머리맡에 회중 전등을 켜 둔 채 라디오 스위치를 눌렀다.
숲이 울부짖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쿵 하고 땅이 울렸다.
“나무가 쓰러졌나?”
나쓰에가 중얼거렸을 때 도오루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큰일났어요. 연락선이 뒤집혔대요.”
“어머.”
이어폰을 빼자 다급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왓다.
“…….태풍 때문에 배가 옆으로 기울자 여자와 아이들은 미처 갑판으로 나오기도 전에 배애 물이 찬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생명은 절망 상태에 있습니다. 27일 새벽 1시, 일백수십 명이 가미이스마치 나가에가하마 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거친 물결에 휩쓸려 익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쓰에와 도오루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설마 아빠가 탄 배는 아니겠죠?”
“아빠는 두 시 사십 분에 하코다테를 떠나게 되어 있어. 지금쯤은 내지의 기차 속에 있을 거야.”
두 사람은 다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22시 26분 좌초했다는 연락이 있었고, 22시 39분 SOS를 알리는 무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22시 42분에는 통신이 끊겨 버렸습니다.”
“어째서 이런 때도 배를 출발시킨다지?”
도오루가 성난 듯이 말햇다.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몰랐겠지.”
“하지만 작은 배가 아니에요. 웬만한 바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을 태우고도 왜 조심하지 않는 거죠.”
도오루는 소년답게 타협을 용서하지 않는 태도로 분개했다.
“그러게 말이다. 죽은 사람들이 가엾구나. 그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니.”
“가엾은 정도가 아니에요. 죽은 사람은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으니까 말이에요.”
방송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침몰한 연락선, 제4편 도야마루는 26일 14시 40분에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도오루가 큰소리로 말햇다.
“14시 40분? 엄마!”
순간 나쓰에는 숨을 죽였다.
“14시 40분이라면 오후 두 시 사십 분을 말하는 거죠, 엄마?”
도오루는 나쓰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아빠가 예정대로 배에 탔는지는 모르잖아?”
나쓰에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어닥쳤으나 나쓰에의 귀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두 시 사십 분에 배를 탄다고 했죠, 그렇죠, 엄마?”
“……….”
“에잇, 빌어먹을!”
도오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빠는 조심성이 있는 분이니까 폭풍이 불어닥칠 때 배를 탔을 리가 없어.”
나쓰에는 게이조라면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개어 있어도 구름이 끼어 있으면 우산을 가지고 출근하는 게이조였다.
“하지만 탔을지도 몰라요.”
“아냐, 절대로 타지 않았을 거야.”
“탔어요. 분명히 탔을 거예요.”
도오루가 이렇게 우기자, 나쓰에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26일 아침 여덟 시에 삿포로에서 출발했다면 당연히 게이조는 도야마루에 탔을 것이다.
‘만일 내가 여행을 취소하지 않았더라면 아사히가와에서 26일 아침 여덟 시에 떠났을 테지. 따라서 절대 도야마루를 타지 않았을 텐데.’
게이조를 배신하기 위해 여행을 취소한 나쓰에였다. 무라이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취소한 나쓰에였다.
“도야마루에 탄 승객들의 명단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나쓰에와 도오루는 가슴이 철렁했다. 목이 탔으나 침을 삼킬 수도 없었다.
“아사히가와 시 슌코쵸(春光町)…..”
제일 먼저 하사히가와가 들려와 나쓰에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아나운서는 연이어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1초도 되지 않아 다음 사람을 부르는데도 그 사이가 무척 길게 생각되었다.
나쓰에는 무엇엔가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에 매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승객들의 명단은 계속되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게이조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아아.”
나쓰에는 어느새 기도하듯이 양손을 꼭 마주 잡고 있었다 .남편을 배신하려고 한 자기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렇게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지금은 원한도 미움도 없었다. 나쓰에는 오직 지금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게이조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살아 있기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사히가와 시…..”
이렇게 말하고 나서 아나운서는 기침을 했다. 다음 이름을 부를 때까지 나쓰에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귀를 막고 싶었다. 도오루와 요코를 데리고 혼자 살아갈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사히가와 시 미야시타도 오리……”
게이조는 아니었다.
나쓰에의 손에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언제 게이조의 이름을 부를까 하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더 괴로웠다. 그렇다고 해서 라디오에서 귀를 뗄 수도 없었다. 끊임없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괴로움이었다.
‘그렇게 신중한 남편이 배를 탔을 리가 없어.’
문득 그렇게 생각되었다. 뜻밖에도 지금쯤 하코다테의 어느 여관에서 잠들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건너는 게이조가 폭룽이 불어닥치는데 배를 탔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도오루야 걱정할 것 없어, 아빠는.”
나쓰에가 이렇게 말했을 때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가구라 읍 쓰지구치 게이조.”
하고 읽는 소리가 전류처럼 나쓰에의 몸을 꿰뚫었다.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요?”
도오루가 외쳤다.
‘거짓말이야! 뭔가 잘못된 거야.’
나쓰에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지 않으려 했다. 자신이 무라이 생각을 하면서 자고 있는 사이에 게이조가 바닷불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여행을 취소했기 때문에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실을 절대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떡해요? 아빠가 죽었어요!”
도오루는 나쓰에의 무릎을 흔들었다.
나쓰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쓰코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화기를 들었으나 발신음이 들리지 않앗다. 전화도 이미 끊겨 있었다. 나쓰에는 외부와의 차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의 도움이 제일 필요한 지금 전화는 아무 쓸모도 없었다. 나쓰에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승객 명단에 이름이 들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죽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배가 막 떠나려고 할 때 내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요코가 이불 위에 앉아 있다가 나쓰에를 보고 말했다.
“아빠가 죽었다고? 거짓말이야.”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도오루가 소리쳤다.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던 남편의 모습이 이상하게 뚜렷이 나쓰에의 눈앞에 떠올랐다.
현관문이 흔들렸다. 바람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이일지도 몰라.’
나쓰에는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사람은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사모님, 사모님.”
사무장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사무장 뒤로 외과의 마쓰다와 무라이의 긴장한 얼굴이 보였다. 나쓰에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어두운 파도 사이로 사라져 가는 남편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다음 순간 나쓰에는 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