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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에 실린 황미나의 최초의 작품 ‘이오니아의 푸른별’(1980년) |
순정만화가 우리나라에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였다.
황미나, 그녀가 순정만화 붐에 편승해서 만화계에 처음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1980년 소녀시대라는 잡지에 ‘이오니아의 푸른별’을 연재하면서이다. 만화 수업이라곤 전혀 받아보지도 않았던 신인이 잡지 연재물을 맡는다는 것은 웬만한 운 가지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동안 독자적으로 그려왔던 작품을 들고 무작정 잡지사의 문을 두드렸던 것인데, 그당시 편집장이었던 강영숙씨는 ‘여학생’지 편집부 출신으로 만화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개성적인 화법과 스토리 전개에 마음이 끌린 편집자는 선뜻 지면을 할애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서서히 순정만화 팬들을 확보해 가기 시작한 그녀는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신인으로선 드물게도 인기 여류만화가 대열에 서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신인만화가 거의 모두가 원로만화가들 밑에서 수년씩 사사 받은 뒤에 데뷔하게 되는 게 보통인데, 그녀는 그런 절차를 밟는 일도 없이 독학으로 만화를 배워 데뷔했으니 그야말로 혜성과 같은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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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지 ‘소녀시대(1980)이후 본격 순정만화 전문지들 등장. 순서대로 소녀생활, 르네상스, 댕기, 로망스 |
그녀 역시 중고교 시절 그림과 만화와 독서를 좋아했던 소녀였다고 한다. 고1 때 부친이 사망한 후 3남3녀의 생계를 도맡아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이 그녀를 더욱 더 그림 쪽에 빠지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황미나 씨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 중 흥미 깊은 것은 그녀가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동시에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일 게다. 즉 어떻게 하면 프로만화가로 진출할 수 있을까에 대해 늘 생각해 오고 있었다 한다. 이것은 주변의 친구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타산적인 면으로, 적지 않은 위화감까지 느끼게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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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나 작가의 대표작중 하나인 ‘레드문’ | |
어쨌든 생각 외로 아주 손쉽게 잡지 연재물을 맡게 되면서 성큼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녀는 1982년 ‘유랑의 별’ 단행본으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된다. 순정만화의 세계는 다소 연예계와 비슷한 데가 있다.
팬들의 기질이 공통되어 있다고나 할까? 독자의 앙케트에 의한 인기투표라는 것이 있어 이것이 작품의 연재 기준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순정만화라는 이름 자체에는 불만이라고 했다. 자신의 작품은 남녀가 모두 볼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연구되어 있다는 것이다.
황미나 씨는 초창기 순정만화가 ‘나인(9)’의 한 멤버로서도 활약했었다. 이 ‘나인’은 여류만화가들 최초의 모임으로서, 외국에서는 만화가 사진 다음인 아홉 번째 예술로 부상하고 있는 데서 힌트를 얻어 붙여진 이름이다.
김진, 신일숙, 김혜린, 서정희, 황선나, 이정애, 이명신, 유승희, 황미나의 아홉명으로 구성되어 있던 ‘나인’은 동인지 ‘아홉번째 신화’를 발간하는 등 순정만화의 발전을 알리는 기틀을 마련했다.
- 1984년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TV 드라마로 제작 방영.
- 1997년 ‘레드문’ 대장편 발행, 온라인 게임으로 제작.
- 1998년 ‘윤희’ ‘이씨네 집 이야기’ 일본잡지 주간 ‘모닝’ 연재 후 단행본으로 발행.
- 2005년 고바우만화상 수상.
- 2006년 사단법인 한국만화가 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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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작가들과의 교류에 열성적인 황미나, 김진, 이현세. 일본 여류만화가 사토나가 마치코 방한 | |
이상의 활발한 활약상으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의 한 사람인 그녀가, 그의 뜻대로 여자들만이 아닌 남녀 모두를 애독자로 가질 수 있는 전천후 만화가가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