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발걸음과 함께 하시는 주님
김선영 데레사 청주 구세주의 모친 Re. 서기
저의 친정 집안은 무교이다. 남편을 만나 처음 예비시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어머니께서 “우리집안은 천주교 집안이니,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네” 하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청주에 있는 사천동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성당을 처음 가본 나로서는 ‘성당이 무척 우아한 곳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결혼식을 했던 성당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신혼살림을 하며, 교리를 배워 2004년 4월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신앙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감동은 없었다. 주일미사를 빠지면 안 된다고 배워서 주일미사에 성실히 참례를 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그런 종교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얼마 후 2004년 10월 건강이 안 좋으신 시어머니를 위해 시댁으로 이사를 하였고 오창성당으로 교적을 옮기게 되었다. 시댁은 지게바위라고 불리는 곳인데 10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공소가 있다. 명절에는 오창성당 신부님께서 오셔서 미사를 드려주시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아이들도 무척 재미있어 하였다.
주일에는 오창성당으로 미사 참례를 하러 갔다. 성당 유아실에 딸아이와 함께 들어가면 신자 분들이 “우리 목청 큰 아기 왔구나.”라며 반겨주셨다. 지금은 이사를 하여 이웃성당인 구룡성당으로 다니지만 가끔 시어머니와 함께 오창성당을 갈 때면 이제는 다 커서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이 아이가 그때 목청이 컸던 그 딸이냐”며 알아봐 주신다.
둘째 딸을 등에 업고 회합에 참석, 늘 토닥여준 형님들
“대모님 어디가세요?”
“응, 레지오 하러 가지”
작은딸을 등에 업고 대모님 손에 끌려 입단하게 된 ‘하늘의 문 Pr.’. 조용히 기도문이 울려 퍼지는 교리실에 “응애~응애” 배고프다고 울고, 심심하다고 우는 딸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다들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계시는 형님들이 아니었다면 레지오를 13년 동안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아기를 데리고 레지오 회합을 하러 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시던 단장님 얼굴에서 성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이 또한 하느님께서 나의 뒤에서 함께 걸어주신 덕분이리라.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산업단지로 15년 전에 큰 공장들도 세워지고, 아파트도 많이 생겨서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그래서 성당에도 젊은 자모들이 많다. 대모님과 레지오를 시작하고 몇 달 후 젊은 아기엄마들로만 구성된 쁘레시디움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만
들어진 ‘성실하신 동정녀 Pr.’으로 옮기게 되었다.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레지오가 더욱 재미있어졌다.
여기저기서 아기울음소리가 들려서 그 당시에 단장님, 부단장님께서 무척 당혹스러우셨을 텐데도 단장님께서는 항상 인자하게 웃으시며 “회합참석만으로도 어려울 텐데 아기를 데리고 오느라 수고가 많다”라며 등을 토닥여주셨다.
두 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레지오를 하러 성당으로 출발하는 발걸음은 항상 즐거웠다. 어떤 날은 미혼모 보호센터인 ‘자모원’으로, 어떤 날은 복지관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위해 복지관식당으로 봉사를 가고, 단장님께서 활동배당으로 주신 냉담교우 방문활동을 하며 ‘그래, 이런 것이 신앙생활이지’라며 스스로를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레지오 단원의 덕목인 ‘순명’을 늘 마음에 새기며
2014년에는 취직을 하여 저녁반인 ‘자비의 모후 Pr.’으로 옮겨 서기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
에서인지 한 분 한 분 레지오를 그만두시더니 어느 날은 단장님마저 회합을 나오지 않으셨다. 단장님께서는 자기 때문에 단원들이 모두 그만두었다며 자기도 이제 레지오를 그만두겠다고 하셨다. 회합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회합을 마친 후 ‘성모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였다.
꾸리아 단장님과 함께 지도신부님께 가서 쁘레시디움을 해체해야 할 것 같다고 사정을 말씀드리니 신부님께서는 해체하지 말고 단원을 새로 모집하여 잘 이끌어가라는 말씀만을 하셨다. 참담한 심정으로 다음날! 예전에 같이 레지오 활동을 하였지만 직장생활로 레지오를 쉬고 있는 자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모님의 도움으로 그 자매가 흔쾌히 회합에 나왔고, 그렇게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어 지금은 단원 10명으로 굳건한 성모님의 군대가 되었다.
13년 동안 레지오 활동을 하며,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남편이다. 협조단원으로 내 옆에서 기도도 같이하고, 특히 은총의 모후 Co. 회계 직책을 맡아 피정이나 교육에 참석해야 할 때면 항상 모든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천사을 말을 듣고 “주님의 종이오니”라고 하신 성모님을 생각하며 레지오 단원의 덕목인 ‘순명’을 늘 마음에 새긴다.
“데레사! 오늘 전례가 비는데” “네, 제가 하겠습니다.”
“데레사! 나랑 성가대 할래?” “네. 좋아요.”
“데레사! 오늘 시간되면 미사 후에 봉사같이 할까?” “네. 함께해요.”
쁘레시디움 회계부터 시작하여 꾸리아 회계, 꼬미씨움 회계, 레지아 서기로 봉사하는 동안 늘 나의 걸음걸음과 함께하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