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문과 탕춘대성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으로, 조선 숙종 41년(1715)에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21년 홍수로 오간대 수문과 같이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한북문 이라고도 부른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탕춘대성은 숙종 44년(1718)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한 것으로, 명칭은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에서 따왔다고 한다.

다섯칸의 수문은 1921년 8월의 홍수로 붕괴된 것을 1977년 5칸의 무지개모양의 다리인
홍예교로 복원되었다.

홍지문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의 성문이다.
이 문은 조선 숙종 45년 (1719년) 에 세워진 것으로 숙종이 친필로 '홍지문' 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한성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 이라고도 하였다.
홍지문 현판은 원래 조선 숙종대왕의 친필이었으나 현재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북악터널에서 홍제동쪽으로 바라본 홍지문

기와 위의 잡상
왼쪽 추녀마루 위에 잡상이 앉혀져 있다.
잡귀들을 물리치고 건물을 지키는 잡상은 궁궐에만 쓸 수 있었던 귀한 상이다.

이 문의 문루는 1921년 1월에 내려앉았는데 1977년 성곽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되었다. 화강석으로 중앙부에 아치를 꾸미고, 그 위에 단층인 우진각 지붕의
문루를 세웠다.

탕춘대성
탕춘대성은 전체 길이가 약 4km이며,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세검정의 동쪽 약 100여m 거리에 있는 산봉우리에 탕춘대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홍지문은 숙종 41년(1715)에 건축되었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1977년 서울시가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한 바 있다.

옥천암
천년 관음기도 도량으로 1868년 조선 고종5년 명성황후 명으로 정관스님이 관음전을 건립하고 천일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1942년 동봉스님이 관음전을 중수하고 보타전을 중건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수덕전, 보도각, 종각, 요사체가 있다.

옥천암 입구

옥천암 보도각 백불
유형문화재 제17호
보도각 백불의 정확한 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좌상(弘恩洞 普渡閣 磨崖菩薩坐像)'이다. 흰색의 호분(胡粉)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불(白佛) 또는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불상에 호분을 칠하여 백불로 부르고 있는 예로는 이 불상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울 안암동 보타사 마애보살좌상과 안성 굴암사 약사여래좌상 등이 있는데 특히 보타사 마애보살좌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보도각백불은 홍지문아래 홍제천 개울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신라시대 절인 장의사(藏義寺)의 경내로 추정되나 현재는 옥천암이라는 작은 암자만 남아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불상 앞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조선 후기에는 흥선대원군의 부대부인 민씨가 고종의 천복을 빌었다고 하는 왕실과 관련된 관음보살 도량으로 유명하다. 현재 마애불상은 근래에 세워진 정면 1칸, 측면 2칸의 보도각이란 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보도각백불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대체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된다.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구제하는 매우 대중적인 보살로 관음보살의 보살행에 대해서《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그 내용은 무고한 형벌을 받을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맹수에 쫓길 때, 화재를 만났을 때 등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관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도움을 주는 자비의 보살행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관음보살은 민간에서 많은 신앙을 받고 예배되었던 불상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이 조성되었다.

마애보살상은 커다란 사각 형태의 바위면에 저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바위의 남면은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내곡(內曲)된 구조로 되어 있다. 바위의 왼쪽 편과 뒷면에는 소원을 빌면서 바위를 갈았던 붙임바위가 남아 있어 민간 신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마애보살상은 바위의 크기에 맞게 양 무릎을 넓게 벌리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에 쓴 원통형의 보관(寶冠)이나 목걸이 장식, 그리고 대의(大衣) 안쪽으로 보이는 대각선으로 입혀진 내의(內衣)의 표현에는 금색을 칠하여 장식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또한 관의 좌우에 뻗어 있는 관대(冠帶)에도 타원형의 금판(金板)이 달려있어 화려함을 잘 보여주고 있으나 조각기법에서 정교하지 못하고 투박하며 관 밑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서 팔꿈치까지 내려와 있다. 이 불상은 머리에 쓴 보관으로 보아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으로 짐작되지만 대부분의 관음보살이 보관에 화불(化佛)을 새기는 것과 달리 이 보살상의 보관은 세 칸으로 나뉘어 각각 그 중심과 모서리에 연꽃을 장식하였다.

행사때 사용된 보도각백불 모형

옥천암 일주문

옥천암 법당으로 오르는 문

옥천암 수덕전 현판

옥천암 수덕전
석가모니불을 모셔놓은 전각으로서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내부에 신중단, 칠성단, 산신단, 독성단, 영단이
좌우에 배치되어있다.

수덕전앞에 자리한 석탑

옥천암 전경

옥천암 요사체

옥천암 범종각

옥천암 범종
첫댓글 보도각 백불이 인상 적입니다...^^
탕춘대성 저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은데... 백불 지난달이던가 하여간 이달의 문화재로 지정된곳이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