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려진 서산대사의 시
서산대사(1520∼1604)는 속성이 최씨(崔氏)로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이름은 여신(汝信)인데, 어릴 때 이름은 운학(雲鶴)이요, 호는 청허(淸虛)다. 그리고 법명은 휴정(休靜)이며, 별호가 서산대사(西山大師)다. 서산은 묘향산의 딴 이름이다. 묘향산이 서북지방의 명산이라 하여 서산으로 불리었는데, 대사가 여기서 오래 기거했기로 서산대사라 일컬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그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끈 이름난 승군장(僧軍將)이다. 그런데 지금 세간에 서산대사의 작으로 전해지고 있는 시 중에는 사실과 다른 작품이 더러 있다. 서산대사의 작품이 아닌데, 그의 작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유명한 승군장으로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까닭에, 후세 사람들이 그의 유명세를 빌리고자 하여 생긴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예 중에 대표적인 시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시작되는 시다. 일반 사람들이 거의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 특히 대구에는 어느 교육감이 이 시를 애송하며 각종 연수회 때 널리 인용한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또 서산대사의 작이라 적힌 족자가 지금도 각급 교육기관에 많이 걸려 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마침내 뒷사람의 걷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시는 서산 대사의 작이 아니라, 순조 때의 학자 이양연(李亮淵)이 지은 것이다. 그의 문집 임연당집(臨淵堂集)에 야설(野雪)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리고 1917년에 장지연이 펴낸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양연(1771~1853)은 정조 때 태어나 순조, 헌종, 철종의 세 임금을 거치면서 벼슬한 성리학자다. 서산 대사의 문집인 청허당집(淸虛堂集)에는 이 작품이 아예 실려 있지 않다. 그런데 임연당집에 실려 있는 시는 지금 서산대사의 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과는 두어 글자가 다르다.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눈을 헤치고 들길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라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오늘 아침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마침내 뒷사람의 걷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둘째 구의 호란(胡亂)이란 말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경우가 있어, 이에 대해 사족을 붙인다.
호란(胡亂)의 ‘호(胡)’는 ‘오랑캐 호’로 읽는 것이 아니고, ‘엉터리 호’로 읽어야 하고, ‘란(亂)’은 ‘어지러울 란’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란’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니 ‘호란’은 ‘병자호란’이라 할 때의 그런 뜻이 아니라, ‘함부로 아무렇게나’의 뜻이다.
그리고 서산대사의 해탈시라고 알려져 있는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로 시작되는 시도 사실은 그의 작이 아니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생겨나는 것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흩어지는 것과 같 다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이와 같다오
이 시는 세속에서 뿐만 아니라, 유명한 사찰에도 서산대사의 작이라고 적어 게시하고 있는 데가 많다. 대흥사나 실상사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 중국불교 의례문 가운데 다비작법문이 있는데 여기의 체발(剃髮)편에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이 우리나라 예문(禮文)에도 그대로 유통되고 있는바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삶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죽음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생겨나는 것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흩어지는 것과 같 다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이와 같더라
獨有一物常獨露(독유일물상독로) 한 물건이 있어 항상 홀로 드러나 있으니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담담하게 생사에 따르지 않는다
여기서 ‘한 물건’이란 생사에 얽매이지 않는 깨달음의 세계다. 열반이요, 적멸(寂滅)이요, 공(空)의 경지다.
예문(禮文)이란 불교의식 때 읽는 글이다. 지금 전하는 우리나라의 예문은 1896년 혜명(慧溟)이 서사한 불교의식문집이 유명하다. 이 책은 그가 경상남도 고성군 안정사(安靜寺) 가섭암(迦葉庵)에서 서사한 2권 1책 필사본으로, 불가에서 사용하는 예참문(禮懺文)을 모은 것이다.
상권에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약사유리광여래불, 아미타불 등 여러 여래에 대한 예참문과, 화엄예참문(華嚴禮懺文), 법보예참문(法寶禮懺文)이 실려 있다. 하권에는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등에 대한 예참문(禮懺文)과 조사예참문(祖師禮懺文) 등이 포함되어 있다. 책머리에 나옹화상의 발원문이 실려 있으며, 지금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서산대사가 입적하기 직전 읊은 해탈시라고 하여 다음과 같은 시가 온라인에 떠돌고 있으나, 이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 서산대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허무맹랑한 가짜다.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 없는 사람 누구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 소리 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 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라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요
폭풍이 아무리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이하 생략)
서산대사는 묘향산 보현사에 오래 주석하였기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사는 그 유명한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지은바, 그는 이 책에서 ‘말 없이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이 선(禪)이고, 말로써 말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교(敎)’라는 진리의 명언을 남겼다. 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구절을 써서 뒷사람들이 이 말을 널리 알게끔 하였다.
대사는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문득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우쳤는데, 그때의 처지를 이렇게 읊었다.
백발이 돼도 마음은 희어지지 않는다고
옛사람이 일찍이 말했었지
내 지금 대낮에 닭 우는 소리 한 번 듣고서
장부의 할 일 다 끝내었네
홀연히 나를 발견하니
모든 것이 다 이러하도다
이제 보니 천언만어의 경전들이
원래는 하나의 빈 종이 조각이었네
그는 또 수많은 선시(禪詩)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 삶과 깨달음에 대한 시 몇 편을 더듬어 본다.
그럼 먼저 세인의 입에 으뜸으로 회자되는 삼몽사(三夢詞)를 보자. 세 가지 꿈 이야기란 뜻인데, 사(詞)는 문체의 한 갈래 이름이다.
主人夢說客 주인은 꿈 이야기를 나그네에게 말하고
客夢說主人 나그네는 꿈 이야기를 주인에게 말하네
今說二夢客 지금 꿈 이야기하는 두 사람도
亦是夢中人 이 역시 꿈속의 사람들이지
삶은 하나의 허황된 꿈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그게 꿈인 줄 모른다. 생사가 무엇인가? 우리는 허덕이는 일상 속에서,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가끔은 그것을 사유해야 할 것이다.
대사는 85세 되던 해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70여 명의 제자들 앞에서 문득 거울을 꺼내어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는 빙긋이 웃으면서,
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나였는데
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라는 게(偈)를 남기고는 바로 입적하였다.
지금 거울에 비친 쭈글쭈글하게 늙은 나의 얼굴 그것이 바로 나다. 젊은 모습을 회상하며 후회할 것도, 한탄할 것도 없다. 자연의 이법을 따르면 그만이다. 서산은 열반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설했다.
千計萬思量 천 가지 만 가지 생각 모두가
紅爐一點雪 숯불 위에 내리는 한 점 눈송이네
泥牛水上行 진흙 소가 물 위로 가니
天地皆空裂 천지가 모두 허공에 찢어지네
진흙 소가 물 위로 가니 천지가 허공 속에 찢어지는 경지를 우리 속인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으로 벌이고 있는 모든 것이 불꽃 위에 떨어지는 한 점 눈일 뿐이라는 말에는 다소 이해가 간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우리 속인은 오늘도 부질없는 한 바탕 소꿉장난을 벌이고 있다.
첫댓글 작년 친구들과 성철 스님을 모신 겁외사와 기념관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생가터 겁외사의 마당에 법어를 새겨 놓은 와비를 읽어보며, 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서산대사의 게송을 보니 거의 같은 뜻의 가르침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팔공산 파계사 아래에 있는 서촌초등을 다녔습니다. 그 당시 아주 대단한 스님이 파계사 성전암에 계신다고 듣기는 했어도 그분이 성철스님인 줄은 몰랐습니다. 해인사로 떠나실 때, 책을 두 트럭이나 싣고 가셨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서촌골 안에 퍼지곤 했습니다.
군입대하여 부산 1203건공단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거기서 성철스님의 상좌로 있다가 입대하신 원심스님을 만나 3년 내내 아주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분 덕분에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되었죠. 지금 거창군 웅양면에 정법사를 세워 열심히 공부하고 계시는데, 내자와 함께 가끔 다녀오기도 합니다. 늘 정진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듣고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