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 연꽃님 글...유통기한의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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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의 그날까지
담마다사 이병욱 2024. 2. 8. 10:37
유통기한의 그날까지
오늘 아침도 영하의 날씨이다. 매일 걸어서 백권당에 가는데 추위를 온몸으로 느낀다. 모자가 달린 두꺼운 외투를 입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머리가 시렵기 때문에 외투모자를 써야 한다. 마스크까지 하면 중무장하는 것이 된다.
이제 겨울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입춘도 지나고 설을 앞두고 있다. 이럴 때 몸의 변화를 느낀다. 몸이 추위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침 1.3키로 거리를 걸을 때 시원했다. 겨울 초입과 비교했을 때 추위에 완전히 적응한 것이다.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열대의 밤에 괴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추위가 시작되자 깨끗이 잊혀졌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피부로 느끼는 추위로 인하여 끈적끈적하고 타는 듯한 더위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라오스에서 150만원만 있으면
더위를 피해서 먼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팔자 좋은 사람들이다. 겨울이 되면 예외 없이 따뜻한 나라를 찾아 나선다. 여름과 겨울을 피해서 먼 나라에서 사는 것이다. 봄과 가을이 되면 돌아 온다. 마치 철새 같다. 이 생에서 호사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너도나도 치앙마이 가는 것 같다. 페이스북과 같은 에스엔에스를 보면 치앙마이 등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 한 철 보내는 것을 자랑하는 듯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차가운 나라에서 보내고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서 보내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여름은 여름답게 살아야 한다. 겨울은 겨울답게 살아야 한다. 여름에 땀을 흘리고 나면 적응이 된다. 겨울에 떨고 나면 적응이 된다. 그렇다면 여름과 겨울 과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면역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유튜브에서 어떤 노인은 라오스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라오스에서 대감처럼 살기 위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나이가 칠십인 독거노인은 라오스에서 평생을 보내기 위해서 계획을 짜 놓았다.
한국사람들은 동남아시아가 만만한 것 같다. 우리보다 더 못사는 것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 독거노인에 따르면 라오스에서 150만원만 있으면 정승처럼 살 수 있다고 했다. 가정부를 세 명 데리고 산다는 것이다. 승용차라도 하나 장만하면 월 50만원이 추가 되어서 월 200만원이면 최상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겨울철에 한달살이, 두달살이, 세달살이 등 겨울철 한철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 여유 계층이라 말할 수 있다. 연금이 풍족하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보다 못 사는 나라로 달려가서 천인(天人)처럼 살 것이다.
동남아에서 겨울 한철 보내는 사람들 중에는 스님들도 있다. 어느 스님은 번역하는데 있어서 겨울철만 되면 태국으로 간다고 한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다고 한다. 태국 깊은 숲속에서 홀로 지내며 집중하기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추운 겨울철에 따뜻한 나라에서 보내고자 하는 욕구도 작용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열대야의 여름에 몽골과 같은 서늘한 나라에서 살 수도 있다. 영하의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살 수 있다. 풍족한 연금이 있다면 상류층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재산이 있다면 그곳에서 다 쓰고 죽고자 할 것이다. 누구나 바라는 삶이다.
여름은 여름답게 살아야 하고 겨울은 겨울답게 살아야 한다. 지금과 같이 추운 겨울철에 남쪽나라가 좋다고 하지만 한두달일 것이다. 결국 돌아 와야 한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돌아간다. 독거노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까? 따뜻한 나라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돈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죽을 때까지 받는 연금이 있고 부동산이 있으면 안심되는 것일까? 그러나 앞날은 알 수 없다. 세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지금 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착각을 말한다. 지금 젊은 사람은 이 젊음이 영원히 유지될 것 같고, 지금 건강한 사람은 이 건강이 계속 유지될 것 같은 착각에 살아 간다.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시시각각 변한다. 풍족한 연금도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젊은 세대가 분노하면 대폭 삭감될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부동산도 병원비로 다 써버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따뜻한 나라에서 신선처럼 보내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네 가지 루틴이 돌고 있는데
오늘도 백권당 사무실에 앉았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아침에는 일체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유튜브이다. 총선이 다가 옴에 따라 정치에 너무 가까이 가는 것 같다. 정치에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걸으면서 생각해 놓은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3키로 20여분 걷는 것은 산책이나 다름 없다.
현재 네 가지 루틴이 돌아가고 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서브루틴 같은 것이다. 셋톱박스 원칩마이콤 프로그램으로도 설명된다.
원칩마이콤 설계자로부터 들은 것 있다. 프로그램에는 메인루틴과 서브루틴이 있다고 한다. 메인루틴은 원환적이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인터럽트가 걸리면 서브루틴을 수행한다.
TV를 시청할 때 리모콘을 누른다. 리모콘으로 채널을 선택하는 행위는 프로그램에서는 인터럽트 건다고 말한다. 이럴 경우 메인루틴은 치고 들어 오는 것부터 먼저 해결한다. 서브루틴을 돌리는 것이다.
일상은 메인루틴 같은 것이다. 때 되면 밥 먹고 때 되면 자는 것은 메인루틴 같은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고 좌선을 하고 빠알리 공부를 하고 경전을 읽는 행위는 서브루틴 같은 것이다.
서브루틴이 실행되고 나면 메인루틴이 다시 실행된다.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듯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밥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 어떤 창조적인 행위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공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즐기는 데 있어서는 부지런하다. TV를 본다든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에 있어서는 적극적이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대게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 어떤 열정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해 하는 것 같다. 나이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즐기는 것에만 열중한다면 잉여인간(剩餘人間)이 된다.
잉여라는 말이 있다. 남아 돈다는 말이다. 영어로는 서플러스(Surplus)라 하여 과잉을 의미한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상태를 말한다. 잉여인간이 되었을 때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된다.
세상에는 잉여인간들이 너무 많다. 인류가 너무 많은 것은 잉여인간도 너무 많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래서일까 인류는 개체 조정기에 들어간 것 같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것도 인간이라는 개체수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
노인이 되었을 때 잉여인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힘이 없어서 매사에 의욕이 없다.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해질 때 움직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집에만 있게 될 것이다.
어제 유튜브에서 본 것이 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에 대한 것을 보았다. 그 중에 하나는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매사에 흥미가 없어서 재미가 없음을 말한다. 삶의 낙이 없는 것이다.
독거노인이 사는 방법
동남아에서 정승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비참하게 살아도 월 150만원만 쓰면 가정부 세 명을 데리고 사는 라오스가 있다고 독거노인은 말한다. 이런 열정이 있기에 독거노인은 식자재 배달업을 하여 돈을 모으고 있다. 이번 설이 지나면 라오스에서 정주할 것이라고 한다. 라오스에서 주식을 하며 용돈도 벌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것도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거노인은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다. 그의 유튜브 채널을 보면 인생은 재미로 사는 것이다. 사는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한다. 그래서 배달업을 하며 열심히 산다. 연금도 없기 때문에 육체노동을 해서 노후 자금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여기에다 주식으로 살고자 한다. 주식공부를 했는데 자신만의 노후하우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아마 욕망을 제어하는 공부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거노인은 외로운 사람이다. 그는 유튜브 채널에서 늘 외로움을 말한다. 홀로 사는 것이 외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오스에서 가정부를 세 명이나 데리고 살고자 한다. 월 15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독거노인은 어쩌면 지혜로운 사람인지 모른다. 그것은 유통기한을 말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자신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건강할 때까지는 재미나게 살겠다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그런데 죽음보다 더 피하고 싶은 것인 질병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장기가 하나 둘 망가져 갈 때 슬픔을 느낄 것이다. 특히 한평생 재미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낙이 없게 되는 것이다.
방일한 자는 이미 죽은 목숨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아무 하는 일 없이 밥 만 먹고 산다면 잉여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유튜브만 보며 산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다. 왜 그런가?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Dhp.21)라고 했기 때문이다.
방일한 자는 게으른 자를 말한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사는 자를 말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TV를 보거나 유튜브 시청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남이 해 놓은 것을 즐기는 자도 방일한 자에 해당된다. 남이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면서 즐기는 자, 정치 유튜브를 보면서 웃고 화내는 자 역시 방일한 자에 해당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식사가 대사가 되는 삶을 살았을 때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덩어리를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오온은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여겨서 즐거우면 거머쥐려 하고, 싫으면 밀쳐 내려 하는 삶을 산다면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탐욕과 성냄으로 살아간다. 자아개념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더욱 더 심하다. 노년에 힘 빠질 때까지, 유통기한이 끝날 때까지 즐기며 살고자 하는 것이다.
독거노인은 라오스에서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그러나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알거지가 되어서 돌아 올지 모른다.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재미를 추구하는 삶,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은 늙어 나이 들어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기 쉽다.
나의 유통기한은 언제일까?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전생에 무수하고 가 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생에서는 늙음이라는 처음 가는 길을 가고 있다. 유통기한이 끝날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할까?
나의 유통기한은 언제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라는 죽음의 게송에 따른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업대로 사는 존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오늘이 그날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아직 해 놓은 것도 없는데 죽음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오늘도 한편의 글을 쓴다. 오전에는 한시간 좌선을 한다. 오후에는 빠알리어 공부를 한다. 저녁에는 경전과 논서를 읽는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이다. 컴퓨터에서 서부루틴이 도는 것과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러나 어느 하루도 똑 같은 일상은 없다. 하는 일은 같을지 몰라도 매번 다르다. 매번 새로운 것이다. 매일 매번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삶은 아름답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 아라한이 되기 전까지는 모두 학인(學人)이다. 이는 빠알리어 세카(seka)를 학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설령 성자의 흐름에 들어섰다고 할지라도 남아 있는 번뇌가 있다면 소멸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새로운 것을 배워서 익히는 것도 공부이고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오염원을 소멸시키는 것도 공부이다. 유통기한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다음 생도 있기 때문이다.
한번뿐인 인생이라고 하지만
어떤 이는 한번뿐인 인생이라고 말한다. 오로지 한번뿐인 인생은 재미있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자고 말한다. 대게 감각적 쾌락에 따른 행복이기 쉽다. 그래서일까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산다. 마치 한여름의 배짱이처럼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탐, 진, 치로 살아간다. 자아개념이 있어어서 오온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며 살기 때문에 즐거우면 거머쥐는 탐욕으로 살고, 싫으면 밀쳐내려는 성냄으로 살아간다. 이런 삶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한다. 세상사람들의 흐름과는 반대로 사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흐름대로 감각을 즐기며 탐, 진, 치로 살아간다면 이를 거스르는 삶을 살고자 한다. 무탐, 무진, 무치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오로지 한번뿐인 인생이다. 그러나 생은 죽어서도 계속된다. 어떤 이는 “윤회가 참이라고 할지라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업식에 따라 다음 생도 계속 된다. 불방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불방일은 압빠마다(appamāda)를 번역한 말이다. 이는 늘 새김(sati)과 알아차림(sampajāna)이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내 몸의 유통기한의 그날까지 새김과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 내가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쓰고, 좌선을 하고, 빠알리공부를 하고, 경전을 읽고, 책을 만드는 이유에 해당된다.
2024-02-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