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까지 한국의 국방은 전적으로 미국의 지원에 의존 했다.
유럽 같이 자체적으로 개발 할 수 있는 경제적, 기술적 능력이 되는 선진국들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친미국가들은 미군에서 퇴역한 무기들을 도입해 쓰는 형편 이었다.
한국해군도 70년대 미해군에선 2차 세계대전 때 주력함으로 쓰던 퇴역함인
기어링급과 알렌M섬너급에 약간의 개량을 가해 도입해 쓰던 형편 이었다.
- 70년대 도입해 90년대 말 까지 현역에 있다가 퇴역한 기어링급 구축함. -
그러나 모택동이 죽고 중국공산당의 새 실권자가 된 등소평이 개혁, 개방정책으로 서방세계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자
그 때 까지 동서 양진영, 딱 두편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세계 냉전의 역학구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그러한 국제정세 변화는 우리나라의 안보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카터정부가 여태 미국에게 안보를 의존하고 있던 세계각국에 이제 자국의 안보는 각자 알아서 하라고 선언 하고
대한민국 에서도 7사단, 2사단, 2개 사단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던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독자적인 국방살림을 꾸려 나가기엔 역부족 이었던 한국에겐 청천벽력 이었다.
한국정부의 끈질긴 설득 끝에 7사단만 철수 하고 2사단은 한국에 계속 주둔하는 쪽으로 주한미군 철군계획은 변경 되었지만
이는 한국으로 하여금 소위 율곡사업 이라 불린 자주국방 전력증강사업을 시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한국해군이 70년대 도입한 기어립급과 알렌M섬너급 구축함은 도입시 약간의 개량을 하긴 했지만
근본인 2차 세계대전 때 까지 운영하고 퇴역한지 오래인 노후화된 함이라 현대전에 걸맞지 않는 구형함 이었다.
이에 박정희대통령은 노후화된 미제 구축함을 대체할 한국형 구축함의 개발을 지시한다.
이를 위해 박대통령에 불려온 이가 박대통령이 가장 신임하고 있던 기업인인 현대의 정주영회장 이었다.
박대통령이 구축함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묻자 정회장은 "문제 없습니다." 하고 호탕하게 대답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회장의 이러한 큰소리와 달리 당시 한국 조선업계의 현실은 달랐다.
한국 조선업계는 고속정 이상 크기의 군함은 건조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대통령도 한국 조선업계의 수준에 구축함 정도 크기의 군함을 건조 하는게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기에
정회장의 큰소리를 듣고 "도대체 구축함이 몇톤 정도의 함이냐?" 라고 물어 봤다는건 잘 알려진 일화 중 하나이다.
여하튼 그리하여 노후화된 미제 구축함을 대체하기 위한 한국형구축함의 개발이 시작 되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고속정 이상의 함은 만들어본 적이 없었던 한국 조선업계가 구축함을 만든다는건 불가능 했다.
그래서 소위 호위함 이라 불리는 정도의 크기인 함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개발을 지시한 박대통령은 79년 10.26 사건으로 최초의 한국형군함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당시 한국해군은 소형함정들을 건조해 연안에 배치 함으로서 해안선을 방어한다는 연안해군 정책을 결정한다.
바로 전두환정권 때인 81년에 최초로 진수된 한국형군함인 울산급호위함의 등장이었다.
건조하고 보니 몸체의 균형이 맞지 않아 콘트리트를 부어 넣어 균형을 맞췄다는건
울산급호위함 개발에 얽힌 또하나의 유명한 에피소드다.
하지만 한국으로선 그정도 크기의 함은 처음 건조해 본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한 것이었다.
- 81년에 1번함이 진수된 최초의 한국형군함인 울산급호위함. 바로 포항급 초계함의 모태가 된 함이다. -
그러나 당시 한국의 경제력은 만재배수량 2180톤 밖에 안되는 소형함인 울산급 호위함 조차 당초 계획대로 양산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울산급호위함 보다 더 싸게 건조할 수 있는 울산급호위함을 간략화 한 함을 만들기로 한다.
이에 한국해군은 울산급호위함은 총 9척을 건조, 도입 하고 보다 간략화 한 초계함의 개발에 착수한다.
이것이 바로 만재배수량 1076톤인 포항급초계함의 개발이다.
한국해군은 포항급초계함을 건조하기 전에 시험 삼아 과도기 적인 함을 만들어보기로 하는데 이게 4척이 도입된 동해급초계함 이다.
동해급초계함 건조로 본격적인 초계함 건조에 자신감을 갖게 된 한국 조선업계는 포항급 초계함의 양산에 들어간다.
바로 1984년 1번함 포항함을 시작으로 1993년 공주함 까지 총 24척이 건조, 도입 되면서
울산급호위함과 함께 연안해군인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으로 자리잡게 된 포항급초계함의 탄생 이었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천안함은 1989년에 도입된 포항급초계함 후기형 10척 중 한척이다.
- 포항급초계함은 울산급호위함을 간략화한 저가 양산형 함이다.
위 사진은 3함대 사령부에 입항하는 PCC-781 남원함. -
80년대 도입된 울산급호위함과 포항급초계함은 KDX(한국형구축함 계획)에 따라 건조된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대양형 함정인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1번함 광개토대왕함이 1998년 취역 할 때 까지 대한민국 해군의 숫적, 질적 주력으로의 역활을 수행해 왔다.
현재 대한민국 해군은 이들 울산급호위함과 포항급초계함을 대체하기 위한 FFX(차기 호위함 계획)를 진행 중이다.
FFX 계획도 오랜기간의 우여곡절 끝에 최초의 계획 보다 건조 댓수도 줄고 요구성능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하튼 이미 1번함의 건조가 진행 중이며, 몇년 후면 울산급과 포항급을 대체해 우리나라 연안방어 뿐만 아니라
대양항로 방어를 위한 기동함대의 일원으로서도 활약하게 될 것이다.
- 최종 확정된 FFX(차기 호위함)의 CG. 울산급호위함과 포항급초계함을 대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