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살다가... 예기치 못한 졸지의
사건 하나는 삶을 바꾸고 가족 일상도
변하게 만든다. 무공훈장을 받으실
정도로 열심히 활달하게 장교로 군대
생활을 하셨던 이춘남님께서 아내이며
교회 권사이셨던 고 신창자님에 대한
추모 글을 문화일보에 게재하셨는데
(2023.08.24.), 지고한 사랑과 헌신의
스토리를 여기에 재소개를 해본다.
=====================
‘생명 나눔’하고 떠난 아내 [그립습니다]
지금도 나와 가족, 환자들의 버팀목
■ 그립습니다 - 신창자(1944∼2012)
여름이 되면 습하고 더웠던 옛집이 떠오른다.
장마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물이 차올라
쑥대밭이 되었던 반지하 방. 그곳에서 15년간
생활하면서도 불평 없이 묵묵히 가족의 곁을
지켰던 아내의 얼굴도 함께 생각난다.
우리는 40년을 함께 살았다. 아이들도
어렸던 때, 나는 철없이 안정적인 군 생활을
제 발로 정리하고 나와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옮기는 회사마다 부도가 났고, 결국
우리 가족은 하루아침에 신림동 반지하 방에
나앉았다. 아내와 나, 두 아이까지 네 식구가
하루 세끼 먹을 형편이 안 돼 점심은 수돗물로,
저녁은 밀가루죽으로 때워야 할 정도로 빈곤한
삶을 살았다. 특히 요즘같이 비가 잦을 때는
여름 내내 곰팡이에 시달려야 했다.
결혼 전 양호교사로 일하며 궂은일 한 번
해본 적 없던 아내는 밤낮으로 가정부 일과
식당 일을 해가며 가장의 무게를 나누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악착같이 공부해 큰딸은
사서직 공무원이, 작은아들은 외교관이 되었고,
우리 가족은 지하 방을 면할 수 있었다.
길었던 고난의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아내의 희생과 기도였으리라.
가족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었을 때, 우리 부부는 오랜 꿈이었던
전원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전라남도 해남에
뿌리를 내렸다. 100평 남짓한 땅에 복숭아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등 온갖 유실수를
심고, 자급자족할 채소도 갖가지로 심었다.
하루라도 잡풀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된
농사일이었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내의 찬송가를 노동요 삼아 열심히
땅을 일구는 삶은 보람됐다.
아내가 쓰러졌던 그 여름날도 파종과 수확을
하느라 바쁜 시기였다. 뜨거운 뙤약볕에 온종일
바깥일을 한 아내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여느
때처럼 철야예배에 나섰다. 그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아내는 이내 살아날 가망이 없는 뇌사를
판정받았다. 나는 생전 입버릇처럼 장기기증을
소망해 왔던 아내의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고심 끝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당시 예순
여덟이었던 아내는 신장과 간, 각막을 기증하며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리고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아내가 떠나고 한 달 후 나는 담배를 끊었다.
아내의 생명 나눔을 목도한 남편으로서 건강을
경시하는 행동을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나의 금연을 소원했던 아내였는데, 이렇게
단박에 끊어버릴 것을 괜히 아내 마음만
애태우게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일뿐이라 사별 후
몇 년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픔이 북받쳤다.
시시때때로 쏟아지는 눈물에 힘들어하던 나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며 작은
위안을 얻었다. 그곳에서 장기를 이식받아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이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을 볼 때마다 생전 부모처럼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내가 이제는
환자들의 삶에 단단한 생명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에는 아내의 기일을 맞아 가족이 한데
모여 추모 공원에 들렀다. 마침 인도네시아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잠시 들른 아들네도
함께했다. 생김새며 성품까지 아내를 꼭 빼닮은
아들과 아내가 생전 그토록 예뻐하던 손자가
사랑이 많았던 어머니이자 할머니를 추억했다.
나 역시 아내의 사랑을 먹고 자란 자녀들을
바라보며 지난 40년간의 기억을 되짚었다.
힘든 순간이나 기쁜 순간에 늘 함께했던
아내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족과
수많은 환자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
비록 머무는 곳은 이 땅에서 하늘로 옮겨졌지만,
곳곳에 남겨진 아내의 아름다운 흔적을
발견하며 나도 언젠가 세상을 떠나는 날,
아내를 따라 사랑과 나눔의 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 남편 이춘남 -
* 지금도 무공훈장동지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이춘남님께 언제나 건강.
평안,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유가족모임
(도너패밀리)을 위하여 예우사업과
심리지원상담 등을 후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