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의 뛰어난 형세山川形勢>
龍淵雲氣曉凄凄 구룡연(九龍淵)의 구름 기운
(용연운기효처처) 새벽되니 서늘한데,
鶻岫摩空白日低 송골산(松鶻山)은 하늘을 찔러
(골수마공백일저) 밝은 해도 낮게 보이네.
坐待山城門欲閉 앉아서 산성의 문이
(좌대산성문욕폐) 닫히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角聲吹度大江西 호각 부는 소리 퍼져나가고 있다네
(각성취도대강서) 큰 강의 서쪽으로.
*용연(龍淵): 의주 북쪽 8지 지점에 있는 구룡연(九龍淵)을 말함.
*효처처曉凄凄:당나라 한유의 〈남쪽 궁권에서 조회하고 경하를 드린 뒤 돌아오면서南内朝賀歸〉: “남쪽 궁궐에서 경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서늘한 느낌이 드는 쓸쓸한 새벽罷賀南内衙, 歸凉曉凄凄”
*골수(鶻岫):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송골산(松鶻山)을 말함.
*마공摩空: 당나라 이하李賀 〈높은 수레 탄분들이 들리셨구나高軒過〉: “궁전 앞에서 부 지으니 명성이 하늘에 닿고, 필력은 조화 도우니 하늘도 공이 없어라殿前作賦聲, 筆補造化天無功”
*백일저白日低: 당나라 잠삼岑參 〈괵주의 군 자사 집무실虢州郡齋〉: “붉은 깃발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흰 태양 지는 때 술을 마시네相看紅旗下, 飲酒白日低”
* 문욕폐: 당나라 조업曺鄴의 〈여도남을 송별하며〉: “말이 끝나자 술자능 마르려 하는데, 열두 성문은 닫치려 하네言畢尊未乾, 十二門欲閉”
*각성(角聲): ≪고증≫ 「≪통례의찬≫ 황제가 치우와 싸울 때 황제는 피리를 불어 용이 우는 소리를 내게 해서 그를 막았다. 군영 안에다 그것을 설치하여 밝고 어두운 것을 알렸다.」(通禮儀纂. 黃帝與蚩尤戰, 帝命吹角作龍鳴以御之. 軍中製之以司昏曉) ≪통례의찬≫이란 책은 미상임. ≪신당서․모든 관원들에 관한 기록(百官志)≫ 「【절도사】
경계로 들어서면 주와 현에서는 절도사의 누대를 축조하여 북과 피리를 불어서 맞아들였다. 관청의 병장기를 앞에 두고, 각종 기는 중간에 설치하며, 대장은 구슬 장식을 울리고 쇠로 만든 악기와 징, 북, 나팔 등은 뒤에다 설치하며 주와 현에서는 길 왼쪽에서 도장을 주어 맞이한다.」(入境, 州縣築節樓, 迎以鼓角, 衙仗居前, 旌幢居中, 大將鳴가, 金鉦鼓角居後, 州縣齎印迎于道左)
*취도: 원나라 양유정楊維楨 〈운남 땅의 과거시험 관리자로 나가는 진도사를 전송하며送陳都事雲南銓選〉: “그대를 운남 땅의 과거 시험관으로 나감을 송별하노니, 여러 오랑캐 족속들저절로 등급이 판정될 걸세. 달 밝으면 꿈속에 옛날 기자국 북쪽 지역이 감돌 것이요, 긴 바람은 불어 야랑 땅 서쪽으로 넘어갈 것일세送君銓選使滇池, 部落諸夷自品題. 明月夢囬䕫子北, 長風吹度夜郎西”
[해설]
이 시는 퇴계선생이 41세 때, 국경 지역인 의주까지 나아가서. 중국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우리나라 사절 일행이 지닌 중국과의 외교관계 문서[咨文]와 외교사절들이 사용하는 마필(馬匹)을 점검하는 자문점마(咨文點馬)라는 임시직책을 띠고, 평양을 거쳐 의주에 도착하여 한 달 동안이나 머물면서 지은 〈의주에서 본 이것 저것을 노래함義州雜詠〉이라는 연작시 12 수 가운데 한 수이다.
이 걸음이 이 퇴계선생의 일생 중에서는 제일 먼 여행길이었지만, 그 때 선생께서는 신진 관료들 중에는 가장 우수한 사람들만 뽑아서 훈련시키는 사가독서의 특전까지도 누리고 있었을 때이므로, 일생 중에서도 문인 관료로서 가장 빛을 발휘하고 희망에 찬, 행복한 시절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때 쓴 그 연작시 중에 처음 나타나는 〈압록강이란 천연요새지鴨綠天塹〉이란 시와 더불어, 이 시는 선생이 남긴 2,200 여 수가 넘는 많은 시 중에서도 가장 잘 된 시 중에 넣을 만한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있다.-자세한 것은 졸저 《퇴계시 이야기》(서울, 서정시학사, 2014) 참조 요망.
국경 지방에 나가서 쓴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중국 서북 변경의 분위기를 읊은 이태백의 시 한 수를 먼저 소개하고자한다.
〈關山月〉
밝은 달 천산에서 나와서 明月出天山,
구름바다 사이에 창망하게 떠 있네. 蒼茫雲海間.
긴 바람 몇 만 리나 불어 가는가? 長風幾萬里,
불어서 옥문관을 넘어가는 구나. 吹度玉門關.
한족 군사는 백등도를 따라서 내려오고, 漢下白登道,
호족 군대는 청해만을 옅보고 있구나. 胡窺青海灣.
옛날부터 정벌나간 싸움터에서는 由來征戰地,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 보지 못하였다네. 不見有人還.
수자리 사는 사람 변방의 기색을 살펴보니, 戍客望邉色,
살아서 돌아갈지 얼굴이 자꾸 찌푸려지네. 思歸多苦顔.
이 좋은 누각에서 이 밤을 맞으니, 髙樓當此夜,
탄식만 겉잡을 수 없이 쏟아지네. 歎息未應閑.
제목에 나온 “관산”이라는 말은, 관애(關隘)와 산령(山嶺)으로, 같은 시대의 시인인 두보(杜甫)의 〈세병마행(洗兵馬行)〉이란 시에 “삼 년 동안 강적(羌笛) 소리에 관산의 달 보았고, 만국의 군대 앞에 초목이 바람에 흔들리네三年笛裏關山月, 萬國兵前草木風”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 이태백의 〈관산월〉 시에서는 “긴 바람 몇 만 리나 불어 가는가? 불어서 옥문관을 넘어가는 구나長風幾萬里, 吹度玉門關” 이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이 시의 제목을 “산천형세”라고 하였는데, 이 〈의주잡영〉의 뒤쪽에 나오는 시들의 제목을 보면, 대개 건물이름이나, 사건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는데, 앞쪽에 나온 시의 제목은 〈압록천참鴨綠天塹〉이니 〈주성지리州城地理〉니 하며, 좀 포괄적인 제목을 붙였으니, 이 시도 역시 좀 포괄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한 것 같이 보인다. 이 시에서는 산천으로는 용연이란 못이 나오고, 골수란 산이 나오며, [의주]산성에서 바라본 큰 강(압록강) 서쪽 요동지역이 나오며, 시간으로는 새벽, 낮, 저녁이 바뀌고,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는 봄날이지만 아직도 북쪽 국경 지대의 구룡연 위에 서린 구름 기운이의 서늘하고도 서늘함-觸感的, 눈부신 해보다도 더 높이 솟아서 하늘을 찌르고 있는 산과 저녁에 닫치려는 성문-視覺的, 한없이 넓은 강물을 넘어서 서쪽으로 멀리멀리 퍼져 나가고 있는 국경 산성 수비대의 애처로운 호각소리-聽覺的 등등 이런 것이 차례차례 펼쳐져 나가고 있다.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은 정태적인인 묘사라면, 아래 두 구는 한편으로는 닫치어 가는데, 또 한편으로 널리널리 펼쳐져 나가고 있으니, “정중동靜中動”의 반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소리를 따라서 시각도 움직이고, 그 여운은 한없이 이어지는 것 같으니, 이른바 “말은 끝나도 뜻은 끝남이 없다言有盡而意有餘”고 할 것이다.
중국의 서북 경계인 사막지대를 바라보고 읊은 이태백의 기운찬 시풍이, 퇴계선생이 요동 땅을 바라보고서 쓴 이 시에도 틀림없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도학자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시인의 솜씨를 잘 보여준 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