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白馬山] 716m 경북 김천 / 성주
산줄기 : 금오기맥
들머리 : 농소면 봉곡리에서 성주군 벽진면 용암리를 잇는 별미령

위 치 경북 김천시 / 성주군
높 이 716m
#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김천-성주 백마산(715.5m)
*고당산~별미령~삼거리봉~백마산~고방사~봉곡2리
백마산 들머리는 김천시와 성주군의 경계를 이룬 별미령이다. 성주군 벽진면 청년회에서 1996년 4월에 세운 경계 빗돌에는 '벽진의 다짐' 이란 제목의 글을 새겨 벽진가야(옛 성주가야를 뜻함)를 상기시키고, 뒷면에는 '고향' 이란 제목의 시를 새겨 고개를 지나는 나그네를 향수에 젖게 한다.
산행에는 서울 사당동에서 출발하는 우정산악회(02-525-5690)의 회원들이 버스 가득 동행했다. 그들 중 몇몇 산꾼은 백마산 산행이 너무 짧다고 하며 고당산(597m) 왕복을 위하여 반대편 서쪽 능선을 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행들은 동쪽으로 난 수레길을 이어 지능선에 올라선다. 사계절 중 산이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있으리료만 연초록의 오월은 유난히도 아름다워 산꾼들의 가슴을 마냥 설레게 한다.
모처럼 빡빡하지 않은 일정이라 여기저기 돋아나는 산나물을 뜯거나 정담을 나누며 여유있는 산행길이 이어진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솔숲길에는 송화가 한창인지라 불어오는 봄바람에 솔내음 꽃향기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능선길 왼쪽의 나뭇가지 사이로 백마산 정수리를 바라보며 느긋이 걸어도 한시간이 못되어 능선 삼거리 670m봉에 올라선다.
연초록 새잎이 유난히도 아름다운 참나무 거목 미에 여러 회원들이 배낭을 벗어두고 땀을 닦는다. 수령 수백년의 고목에서 이렇듯 여리고 고운 새잎이 돋아나는 것은 언제 보아도 신비롭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참나무를 수목도감에서 찾아보면 밤나무, 너도밤나무, 구실잣밤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등으로 나뉜다. 나무와 꽃의 이름을 알고, 살펴가며 산을 오르면 산행의 기쁨이 몇 곱 몇 십곱으로 늘어나리라.
능선길은 직각으로 꺾여 정북녘으로 이어진다. 서쪽의 감천면을 굽어보는 느긋한 산길을 이어가면 정수리를 저만치 두고 제법 너른 억새지대에 도달한다. 한 그루 나무도 보이지 않는 이 억새밭. 늦가을이면 하얀 억새꽃이 불어오는 산바람에 말갈기처럼 나부끼리라. 백마산이란 산이름의 유래를 알지 못하여 몹시도 궁금했던 필자는 유래가 이곳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억새숲을 헤치고 헤쳐 드디어 정수리에 올라선다. 진달래꽃이 유난히도 피어난 정수리에는 빗돌은 커녕 팻말이나 산악회의 리본 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김천 27 1981 재설' 이라고 새겨진 삼각점 주위에 일행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북녘으로는 김천시가지가 아득하고 북동으로 구미시의 금오산이, 동녘으로는 칠곡의 영암산이, 남쪽으로는 염표봉산 염속산과 그 너머로합천의 가야산이 눈부시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황악산이 하늘 마루금을 그으며 힘차게 달려간다. 시원한 정수리의 조망과 찬란한 봄볕을 만끽하며 삼삼오오 둘러앉아 간식을 나누노라니 산꾼들의 우정이 마냥 무르익어 간다.
이윽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정북녘 능선길을 내려가면 뒤이어 산불지대를 지난다. 금년에는 유난히도 산불이 잦아 피해가 막심했다. 양양의 그 유명한 낙산사의 법당과 범종도 불에 타버리는 비극이 발생하였으니, 비록 올해는 아니지만 산불지대를 지나가는 산꾼의 가슴은 군데군데 남아있는 그을린 그루터기의 숯덩이를 닮아 시커멓게 물이 들었다. 인간의 하찮은 방심과 실수가 수십년 수백년 공들여 자란 귀중한 나무를 깡그리 불태우는 오늘의 현실. 오염된 공기의 정화, 모자라는 물의 갈무리에 나무의 공이 지대하거늘...계속되는 산불지대에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진다.
능선 삼거리에서 서쪽 지능선을 이어내리면 서녘 자락의 고방사에 닿는다. 아담한 법당들이 첫눈에도 범상을 벗어난 고방사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고방사는 서기 418년 신라 눌지왕 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사중에 전래하는 현판기문에 명기되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주지스님을 찾아뵈었다. 성현 스님에게 종각에 쓴 걸수산의 사연과 백마산 이름의 유래를 여쭈었다. 전설에 의하면 산의 형세가 백마의 엉덩이를 닮아 백마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걸수산은 예부터 이 자락에 물이 귀하여 붙여진 또 다른 옛이름이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보광명전 앞에 세워진 삼층탑을 우러르며 두손을 모아 고개를 숙여 고 안경호 선배의 극락왕생을 엄숙히 기원한다. '한국의 100명산', '200명산', '실전 호남정맥 낙동정맥 종주산행' 등의 여러 산서적을 남긴 요산회 안경호 회장을 모시고 필자는 참으로 많은 산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참으로 아쉽게도 70세를 일기로 지난 4월 유명을 달리 하셨으니...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며 절길을 따라 산을 내린다.
서녘 자락 농소면 봉곡2리는 아름다운 꽃대궐이 펼쳐진다. 과수원의 울타리로 심은 탱자고목에도 새하얀 꽃이 새콤달콤하게 피었고, 수백 수천 그루의 자두나무 사과나무 꽃이 한창인 너른 과수원은 꽃향기 그득하였으니.
날머리인 봉곡2리 삼거리에는 백련사가 자리하고 그 옆에는 마음씨 좋은 송영택씨 부부가 살고 있다. 개울가의 280년 왕버드나무를 보호수로 지정 받으려고 노력한다는 송영택씨는 처음 보는 우리 일행을 안방문 활짝 열어 방안으로 영접했다. 둘러앉아 나눈 몇 잔 술로 거나해진 손과 객, 문득 밖을 내다보면 두어 아름 왕버들 가지 사이로 한 폭의 그림으로 솟구치는 오오 백마산이여, 내 조국의 청산이여!
*산행길잡이
고당산-(90분)-별미령-(50분)-삼거리봉(670봉)-(50분)-백마산-(60분)-고방사-(20분)-봉곡2리
백마산은 경북 김천시 농소면과 성주군 초전면의 경계에 자리하는 해발 716m의 산이다. 백두대간의 황악산(1111m)이 지나가는 김천땅에는 뜻밖에도 산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청산이 수두룩한 산의 고장이기도 하다.
호초당산(893m), 덕대산(811m), 월매산(1023m), 삼방산(850m)을 비롯하여 초점산(1250m)-국사봉(875m), 염속산(870m)-동대산-불두산, 염표봉산(784m)-고당산을 잇는 종주능선길도 여럿이다.
산행들머리는 김천시 농소면과 성주군 벽진면의 경계인 별미령이다. 성주군에서 세운 빗돌이 자리한 고개마루에서 동쪽으로 오르는 수레길이 뚜렷하고 뒤이어 능선길이 이어진다. 솔향기 진동하는 동녘 산길을 느긋이 올라가면 벽진면 초전면의 경계를 이룬 삼거리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정북녘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르면 밀양박씨묘와 억새지대를 지나 1981년에 세운 삼각점이 자리한 백마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하산은 다시 북녘 능선을 이어야 한다. 산불지대를 지나 590m봉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지능선을 내려가면 고방사에 내려선다. 고방사에서 봉곡2리 버스정류소까지는 다시 20분이 소요된다. 별미령~삼거리봉~백마산 정수리~고방사~봉곡2리를 잇는 산행은 4시간이면 넉넉하다. 산행이 짧다고 생각되는 준족들은 별미령에서 서쪽의 고당산(597m)을 오르내린 후 다시 별미령~백마산~고방사 코스를 산행해도 어려움이 없다.
*교통
서울고속버스터미널(02-535-4151~2, 4374~5, 4628, 2082)에서 김천까지 1일 11회(07:10~18:20) 운행한다. 서울역(02-1544-7788)에서 김천까지 1일 34회(05:50~23:00) 운행한다. 김천시내에서는 봉곡리로 1일 8회 시내버스가 운행한다(대한교통 054-432-7601). 들머리인 별미령까지는 대중교통이 없으니 도보로 약 30분 걸어가거나 김천 시내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2만원 정도 운임이 나온다(제일택시 054-430-7070, 운불련택시 437-4800).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와 날머리에 숙박시설이 전혀 없으니 김천시내의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프라자장여관(054-437-7779), 파크장여관(430-1212), 산장식당(436-6055), 산채경북식당(436-2455).
*볼거리
황악산 직지사 황악산 동쪽 산쪽에 자리한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에 아도화상이 창건했고 문화재로는 보물 319호인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보물 606호인 삼층석탑 등 국가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특징없이 완만한 편이나 온 산에 수림이 울창하고 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은 곳곳에 폭포와 소를 이뤄 그윽한 계곡미를 이루고 있다.
고방사 백마산에 있는 고방사의 창건에 대해서 절에 전래하는 현판기문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직지사와 함께 418년에 창건했다고 하나 다른 기록은 없다.
기문에 의하면 1636년 옥청산인이 적묵당을, 현철상인이 설선당을 그리고 1656년에는 학능선인이 청원로 5칸을 창건하였고 지금의 절은 1719년에 계현 수천대사가 중창했다. 유물로는 1.8m의 지름의 홍고가 있었으나 파손되고 경판 52장이 관음전에 보관되고 있다.
원래 고방사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골짜기에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약수가 유명하여 약수터라고도 불린다.
글쓴이: 김은남 1943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을 지냈으며 92년 계간 <시세계>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시조집 <산음가 1,2,3>, <시조시인산행기>, <일천산의 시탑>을 펴냈다. 이메일 주소는 simsanmunhak@yahoo.co.kr
참고:월간<사람과산> 200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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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벗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