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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다른 사랑(민14장24)
성경본문:민수기14:24
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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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제목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요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은혜’의 측면에서 우리 중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큰 곳에 더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입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어느 공동체든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제외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은혜와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우리의 인격이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많은 은혜라는 것이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고 있지만,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지, 계속된 하나님의 은혜와 관대함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랑’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계속된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계속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이 필요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인내하시는 사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다름’ 때문에 하나님의 ‘다른 사랑’을 입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축복은 바로 다른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다음은 안미경 씨가 쓴 [다시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결혼 전에는 서로 끌리는 느낌만으로 사랑을 한다. 아름다운 외모, 화끈한 성격,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말솜씨, 바라보기만 해도 떨리는 매력에 끌려 사랑에 빠져든다.
그 사랑은 낭만적이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에 매 순간 황홀한 기쁨을 준다. 하지만 느낌은 연기처럼 쉽게 사라진다. 변덕스럽고 이기적이어서 쉽게 찾아왔다가 쉽게 돌아간다. 미칠 듯이 타오르던 사랑이 얼마나 변덕스럽게 변하는지는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결혼 후의 사랑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 어려움도 함께 이기고 고난도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사랑. 바로 다짐하는 사랑을 해야 가다.
이때의 사랑은 내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다.
‘다짐하는 사랑’은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능력이라 하겠다.
들판에 핀 들꽃을 감상할 때는 아무 노력이 필요 없다. 그저 아름다움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꽃을 자기 집 정원에서 보려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때를 맞춰 물과 비료를 주어야 하고 뜨거운 여름 햇살이 비칠 때는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겨울에는 얼어 죽지 않게 짚으로 감싸 가꿔야 한다. 다짐하는 사랑도 이와 같다.
‘다짐하는 사랑’ 이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림을 받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다짐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주는 신앙적 도전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 갈렙이 받았던, 그 특별한 사랑을 여러분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서…
본문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갈렙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근본적인 이유를 “마음이 달라서”라고 기록합니다. 과연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Living Bible에서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a different kind of man' 즉,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일까요? 'he has obeyed me fully'
그러나 다른 영어 성경에서는 ‘마음’을 'spirit'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것이 원문과 훨씬 가까운 표현입니다. 히브리어의 ‘루아흐’라는 말이 ‘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다른 사람, 즉 다른 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서 다른 영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 즉 온전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는 마음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또한, ‘identity’의 문제입니다. 순종하는 사람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다음은 지금 건국대학에서 사역하는 김형민 선교사의 [사도행전 29장]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 샌프란시스코의 그림 같은 집에서 파출부로 일할 때였답니다. 늘 재산 목록 1호인 플라스틱 양동이와 그 속에 담겨있는 변기 닦는 솔과 세제를 들고 현관에 서서,옷은 구세군 가게에서 채 1불도 되지 않는 촌스런 옷을 입었지만,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IDENTITY는 파출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였기 때문이랍니다.
삶의 자기 원칙이 없는 사람은 행동에 일관성이 없고 때로는 변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결정하는 일에 주저함과 어려움이 따르며 결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칭기즈칸은 싸움을 하면 ‘왜 내가 이 싸움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타인을 설득시킬 수 있는 명분과 자기 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 원칙이 있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자신감이다”라고 했던 카네기의 말처럼, 비록 파출부로 수년을 일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자신감으로 두려울 것도 불안할 것도 없었습니다.
즉, 그의 마음속에 품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그가 어떤 영을 소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은 ‘머리’가 아니고 ‘마음’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나오는 황금률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져야하는 그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따랐은즉…
오늘 본문에 보면,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마음의 영이 ‘온전히 따랐은즉’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이 Living Bible에는 'he has obeyed me fully'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를 주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는 그의 순종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계속된 일’이었다는 것, ☞또 하나는 ‘온전히’라는 것입니다. 본래 원어의 뜻은 ‘충만하다’ ‘만족시키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차원의 신앙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 대부분이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아갈 때, 갈렙의 순종하는 영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지속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순종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벗어나면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시험’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떠나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불순종’이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불순종이란 하나님을 향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자꾸 내 생각대로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교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가고 내 삶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거부하는 모든 행위는 교만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내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움직이는 운전대에 내가 앉아 있는 한 우리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내 속에 꿈과 나의 관점이 무너져 내릴 때 느끼는 기쁨과 감사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 오히려 내 생각이 깨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능력을 간구하는 마음이야말로 믿음과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잠시 소개했던 김형민 선교사가 파출부 생활을 하면서도 누구 앞에서나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이며, 꿈의 크기라는 원칙과 나의 꿈과 생각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류태영 박사라는 분의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새마을 운동>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어려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분은 사전을 보고 주소를 찾아서는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썼답니다.
“덴마크 국왕 폐하, 제가 당신의 나라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유학 기회를 주소서.”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진짜 그 나라에서 장학금으로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답장이 온 것입니다. 주변 친구들도 얘기를 듣고, 똑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꽝이었습니다.
류태영 박사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게 그냥 되는 건 줄 아느냐? 나는 이를 위해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려왔다.”
그렇습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입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오는 의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순종의 마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이제 그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순종의 훈련은 이렇게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하는 마음이 그냥 생겼을까요? 영어 성경에 보면 시제가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has obeyed" 순종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에게 특별하게 다른 ‘하나님의 영’을 지니게 된 것은 그의 삶에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땅을 탐지했지만, 순종의 훈련이 되어 있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순종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fully’ 전적인 순종의 눈으로 말입니다.
순종하는 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틀립니다.
이제 두 가지 관점에서 순종의 훈련을 생각해보겠습니다.
1) 다급함 앞에서 "time-out!"을 외치라!
우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이끄는 유혹의 첨병이 무엇입니까? ‘다급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급함’이란 우리 눈앞에 보이는 환경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커 보이기 시작하면, 그 순간 우리의 신앙이 오그라듭니다.
문제의 크기와 반비례하여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작게 생각되면 필연적으로 드는 생각이, 눈에 보이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도움의 손길이 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역인지 아닌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손을 덥석 잡게 됩니다.
그런 손길들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런 실수를 해보지 않았습니까?
다급한 가운데서 행한 여러분의 결정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 하거나, 잘못된 경험들은 없었습니까?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신앙의 훈련을 말씀드립니다. 바로 이 순간에 “time out!"을 외쳐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갈렙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주 다급한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1년여를 넘게 광야를 방황하며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이제 조금만 가면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땅을 탐지하고 와서 보고하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자신들이 처한 문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민수기 13장 32-3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 이야기를 듣고 백성이 우왕좌왕합니다.
민수기 14장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습니다. 다급해지면 인간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이 누구 때문에 나빠졌는지를 찾으려 합니다.
그 순간에 모든 은혜는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급기야는 비책을 만들어 냅니다.
민수가 14장 4절입니다.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렇습니다.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영역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리더도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 갈렙의 모습을 보십시오.
민수기 14장 6-8절입니다.
6-“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렘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혼란 가운데서 분연히 일어나서 외친 것이 무엇입니까?"time out!"
지금 저희의 눈에 보이는 그 문제의 크기를 가지고 보지 말고,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자는 제안입니다. 그 땅에 거인들이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우리가 차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이 보는 문제의 시각입니다.
그 땅의 아름다움을 보십시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기회의 땅입니다. 분명히 우리 자신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나의 마음속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잠시 "time out!"을 외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홍해 앞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심으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출애굽한 일을 후회하였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출14:10)
다급함 가운데서 이들이 보았던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을 이끌어 주시고, 장래에 위대한 계획을 새우고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 군대’를 보았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온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time out!"을 외친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14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순종의 삶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가장 다급한 순간에 잠시 멈춰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대하며 지켜보십시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2) 관심을 하나님께 두라!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으로부터 우리를 멀리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품는 관심과 생각의 문제입니다. 갈렙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영’,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시험은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와서 그가 맞닥뜨리는 상황이 그에게 얼마나 큰 시험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험은 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부터 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자꾸 이기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 중의 하나가 ‘생각을 없애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잠을 잘 못 자니까 오늘 푹 자야지 하고 결심하는 순간, 잠을 잘 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집니다. 그래서 딴 생각하지 말고 양 백 마리를 뒤에서부터 세어 보라고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누군가 옆에서 기침을 하거나 하품을 하면 괜히 따라 하게 되는 것도 경험합니다. 다이어트를 실패하는 많은 경우도, 과식하면 안 돼! 라고 생각하는 순간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이것이 실패로 만들게 됩니다.
‘담배를 끊어야 해!’ ‘정욕을 이겨야 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실패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시험에 맞서거나 대적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서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은 있어도 말입니다.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러분이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의 시험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과 좋은 생각들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위기와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문제를 자꾸 생각하면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생각하면 ‘묵상’이 됩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갈렙이 특별하게 다른 사랑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땅을 차지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날 12명의 사람이 그 땅을 밟고 왔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두에게 그 땅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으나, 그 은혜를 축복으로 소유한 사람은 그들과 다른 마음, 순종의 마음,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이 축복이 미래 완료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가 받은 축복과 약속은 현재의 문제 가운데서 미래의 축복으로 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반역의 사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던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징벌의 대상을 ‘20세’로 규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20세를 성인으로 판단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판단할 능력으로 불신앙을 선택한 모든 세대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오로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20세 이상 된 사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특별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랑을 경험합니다. 남다르게 신앙생활을 하면, 남다르게 사랑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환경이나, 재능, 배경이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특별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히 11:8),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팔 때마다 사람들이 빼앗았지만, 다른 곳에 가서 또 팠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르호봇’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6장 22절입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마태복음 8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하인의 병이 낫겠노라고 믿음을 고백했던 백부장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10,13절)
마태복음 15장에는 귀신들린 딸을 위하여 개 취급을 받으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께 기도했던 여인의 이야기가, 누가복음 8장에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는 믿음으로고 예수님의 옷을 만져 12년 동안 앓았던 혈루 증에서 고침을 받은 여인의 이야기 등등.
그렇습니다.
이런 독특한 사람들이 독특한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에 어떤 집사님이 새벽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려나 봐요.”
세 번씩이나 암 수술을 받고,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절에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끝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투병생활을 하며 새벽 예배를 드리던 기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시댁 식구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오게 된 것입니다.그러나 예배시간에 들어오지는 못했어요. 절에서 입는 승복을 입고 왔기 때문에요.
정말 힘들고 어렵게 신앙생활을 한 그 집사님에게,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교부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라, 다음에는 자기를 사랑하며, 그 다음에는 세상을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세상 역시 우리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질서 있는 사랑을, 그리고 특별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여 있으나, 다른 사람이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을 묵상해 보십시오. 성경은 ‘너’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물건을 살 때 할부로 내는 것 같은 신뢰, 부분적 믿음을 원치 않으십니다.
전적인 신뢰, 전적인 신앙을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랑을 입는다는 것이 오늘 여러분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