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정서는 한방이다. 대박나는 것이다. 평소는 잘못하다가 한방에 인생역전을 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신앙에도 이런 세상 풍조가 흘러와 솔로몬 처럼 일천번제를 드리고 인생을 역전해 보고 싶어하는 신자들도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하늘도 우리의 일천번제를 기쁘하시고, 하늘 축복의 문을 열고 우리 일생 감당치도 못할 하늘의 복을 쏟아 부어주실까?
일천번제의 사건이 제일 먼저 기록되어 있는 열왕기상 3장으로 달려가 보자.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4-5)
마치 성경을 보면 일천번제를 드렸드니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하라. 내가 당장 축복해 주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복을 받아보겠다고 1천원짜리 헌금을 1천번 드리는 사람도 있고, 새벽 기도를 천번 나가 보겠다고 작정하는 사람도 있다. 물런 뜻은 가상하나 성경의 원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격적인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먼저 살펴볼 것은 1천번제하면, 1천번의 번제를 드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아니다. 1천마리의 번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이다. 이같은 사건을 역대하1장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 1:6)
두번째는 솔로몬 혼자서 1천마리의 번제를 드렸는가 하는 것이다. 번제를 드리는 방법을 레위기 1장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레 1:4-7)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봉헌자가 번제물의 머리에 (죄의 전가를 위하여) 안수한다(레1:2-4;민8:6-12)
(2) 봉헌자가 번제물을 잡는다(레1:5,11)
(3) 제사장은 번제물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린다(레1:5,9:12)
(4) 봉헌자가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레1:6;왕상18:33)
(5) 제사장은 각과 머리, 기름을 제단 위에서 불사른다(레1:8,9:13;왕상18:33)
(6) 봉헌자가 내장, 정강이는 물에 씻는다(레1:9,13,9:14)
(7) 제사장은 내장과 정강이를 단 위에 불사른다(레1:9,13,9:14).
(8) 제사장은 번제물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태웠다(레1:9,13)
봉헌자가 안수하고, 양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고, 내장과 정강이를 물에 씻는다. 이런 엄청 복잡하고 힘든 일을 1천번 하려면 기력이 쇠하여 지쳐 죽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좀더 자세히 읽어보면 본문에서 그 답을 제시한다.
“[5]...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 [6]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 1:5-6)
그 회중이란 누구를 말하는지 앞절에서 설명한다.
“[2]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재판관들과 온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족장들에게 명령하여 [3] 솔로몬이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에 있음이라”(대하 1:2-3)
솔로몬 개인이 1천번제를 드린 게 아니라, 모든 문무대신들과 함께 하나님앞에 나아가 솔로몬 왕의 이름으로 번제를 드린 것이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다짐한 것이다.
세번째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하나님이 정말 우리의 1천번제를 기뻐하실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미 분명하게 하나님의 심중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1천번제가 아닌 천이 천번 더해지는 백만번제를 기뻐하실까?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을 3가지로 말합니다.
① 오직 정의를 행하며
② 인자를 사랑하며
③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오직 정의를 행하는 것은 공의는 단순히 '법대로 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정의로움과 정직함, 공평함을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생활에서, 직장생활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드러내는가?
인자를 사랑하는 삶이란?
히브리어 '헤세드(חֶסֶד)'로 표현되며, 이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 자비, 신실한 언약적 사랑을 의미한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웃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삶을 말하다. 이 삶이 우리의 삶이라면 얼마나 향기롭고 축복된 삶이 될까?
용서와 관용: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나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입니다. 미움을 품기보다 사랑으로 대하며,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긍휼과 자비: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나눔뿐만 아니라,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 경청하고 위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친절과 온유: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온유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작은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신실한 관계: 가족, 친구, 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실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어려울 때 곁을 지키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관계를 돈독히 합니다.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의 동력이 내게 있지 않음을 알기에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고, 그 은혜와 자비, 은혜로운 성품을 공급받고 실천하는 삶이다.
네번째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할 곳은 번제의 참된 의미이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의 제사이지만, 더 나아가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려주신 헌신의 제사이다.
그 예표적 사건이 창세기 22장 모리아산의 번제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번제의 의미를 아는 아브라함에게 이것은 정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사실은 아브라함이 자식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드려주신 그 마음, 그 고통, 그 아픔을 아브라함은 잠시 흉내내 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온전히 불사르셨다.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십자가에서 쏟으셨다.
우리를 위해 그분의 심장이 터지시는 고통을 당하셨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터 버림을 받는 아픔을 당하셨다.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히 10:4-7)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제를 통하여 모든 것을 다 받았다. 우리가 구하며 더 요구할 축복이 무엇이 남아있는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일천번제를 드리고 받은 솔로몬의 축복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솔로몬이 구한 것은 무엇이었나?
옛날 개정한글번역은 “지혜로운 마음”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개정개역은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개역)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개정)
히브리어 원어는 분명히 “샤마 shama”이며 듣다 hear, 경청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참된 지혜는 들음에서 오는 것이다. 내 주장, 내 견해, 내 사상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늘의 음성을 들어야 살고, 이웃의 음성을 들어야 그들의 고통과 문제를 알고 바른 소통으로 형통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 3:10)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3)
듣는 마음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고, 그로 인하여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 장수의 복까지 더해주신다. 모든 축복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들으면 살아나리라. 매일 우리의 귀를 하늘에 귀울여 생명의 말씀을 듣자. 성령께서 우리안에 들려주시는 하늘의 음성을 듣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그리고 만일 너희가 바른길에서 벗어나 방황하면 너희는 `바른 길이 여기 있다. 이 길을 걸어라.' 하고 너희 뒤에서 말씀하시는 그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사 30:21, 현대인)
https://youtu.be/cCWyrD0-61k?list=RDcCWyrD0-61k
https://youtu.be/tW8puvqPVAM
https://youtu.be/5-0U9-pxj_g?list=PLghoOxePMNT6_YxaOlyeXi127SLrDAjgN
이게 뭔지 아세요? 참외입니다.
참외를 먹고 씨를 심었는데, 세상에 싹이 났어요!
너무 신기하고 놀랍지 않으세요.
모종을 사다 심은 게 아니고, 그냥 마트에서 산 참외를 먹고 씨를 심었는데 싹이 났어요.
밭에 심었는데 이렇게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네요.
과학법치과도 같은 것이 생명의 성장같습니다.
하늘은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애쓰고 있네요.
하늘은 한날도 쉬지 않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네요.
햇빛으로, 바람으로,
그리고 빗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