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이야기입니다. 모두 8회에 걸쳐 써 두었던 것, 나누고 싶은 마음에 어설픈 손놀림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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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해안을 따라가다
1. 길
극히 필요한 외출만 하고 며칠째 집안에 틀어 박혀 있었다. 그저 더듬이로 먹이를 감지하는 곤충처럼 온도로만 가을을 감지하다 가을 바다를 만나고 싶어 길을 나섰다. 어쩔까. 계양 IC 사거리이다. 처음 출발할 때 마음은 인천공항로. 멀거니 신호등을 기다리다 김포/강화 방향의 신호등이 먼저 바뀐다. ‘그래, 이 방법도 괜찮을거야. 어딘들 어떠랴.’ 차를 강화로 돌렸다.
자주 갔던 길, 변함없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괜스레 반갑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듯 가슴 설레는 일일까.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란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즐거워진다. 자동차 카셑트의 볼륨을 높였다. 늘 틀어 놓고 다니는 테잎. 주로 올드 팝과 영화 음악, 명곡인데 마침 ‘아들리느를 위한 발라드’가 경쾌하게 흘러나온다. 마치 나를 위한 발라드인 것처럼.
경쾌한 음악에 맞춰 나의 마음도 상쾌해졌다. 자동차 속도에 밀리는 가로수 이파리 하나하나에 잊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이 촘촘히 눈길을 주며 달렸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과 들, 바다가 있어, 맘만 먹으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 정오의 길은 한가롭다. 햇살은 따갑다 못해 뜨겁다.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를 않는다. 소나기 피하듯 모두들 더위를 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통진」 방향으로 달렸다. 행락객들을 상대로 특산물을 파는 길거리 상점들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 양쪽엔 알곡 익어가는 소리 튼실하게 들리는 들녘이 보인다. 개발이다 태풍이다 한시도 맘 놓을 수 없는 때 아직도 안녕한 것에 고마운 생각이 든다. 초지대교가 보인다. 초지대교 아래 바다는 텅텅 비어 있었다. 바닷물을 내 보낸 초지대교는 왠지 허전해 보였다. 나도 갑자기 맥이 풀린다. 풍만하게 일렁이는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바다는 기다림에 목마른 것인가. 기다림은 즐거움보다 애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기까지 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초지대교를 건넜다. 길은 삼거리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렸다. 의과대학 방향의 길은 한가롭기도 하려니와 달리는 한편으로 바다를 볼 수 있고 정겨운 가을 들판도 만날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2. 열음
정오의 가을 햇살이 그 경계를 넘어 이울어 가면 갈수록 심술 사납게 더욱 세차게 내리꽂고 있어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에어컨 바람이 싫어 차창을 내리고 달린다. 따가운 기운이 그대로 내 얼굴로 운전하는 손 위로 가감없이 쏟아져 들어와 내 얼굴도 손등도 팔도 모두 보기 좋게 익히고 있다. 사람살이도 너 나할 것 없이 한 해 한 해, 그렇게 한 번씩 무르익어 가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마음익기 하기보다는 설익은 심보만 가득히 부풀리는 것 같다.
길은 구불구불 돌아 터덜터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그 율동미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누구라도 나와 함께 간 사람이 있었더라면 우스갯말깨나 했을 것 같다. 비포장도로라고는 하나 새롭게 도로를 내기 위해 다듬어 놓은 길로 천혜의 자연도로는 아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신주단지 모시듯 굴리는데 나는 도무지 그런 게 없다. 이런 비포장도로 일수록 더 재미있고, 더 정겹고, 더 달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달리는 중간중간 갯벌이 보인다. 깊은 숨을 몰아쉬며 행여 갯내를 맡으려나 하는데 바다는 냉정하다. 더위에 바람이 제 몸을 사리는지 바다가 숨쉬기를 멈춘 것인지 무정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 기별이 없다. 어쩌랴. 기다리게 한 것은 나인데... 달리 달래줄 방법도 없고 바닷물, 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내 오늘 늦도록 여기 있다가 너를 만나고 갈 수밖에.
바다를 향해 찡긋 눈인사를 하고 두 세 구비를 돌았나. 꽤 넓은 들녘을 끼고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산세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들어앉아 있는 집들은 비교적 깨끗한 양옥들이었다. 사진으로 본 지중해의 어느 마을을 연상하기도 해 분위기 있어 보였다. 그런데 나의 시야에 들어 온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 아래 조그만 평상은 더없이 정겨워 보였다.
어쩜! 나는 차를 세우고 나무 곁으로 가까이 가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한 뼘의 차이도 없이 붙어 있었다. 아담한 이 나무가 다소 이국적인 풍경인 이 동네에 오갈 데 없는 우리네 농촌마을의 한 점을 찍는 듯 했다. 그리고 담장을 나란히 하고 있는 두 채의 파란 대문집. 두 집 사이 조그만 텃밭엔 없는 것이 없이 심어 있었다.
쪽파는 가늘게 새 움이 올라오고, 호박넝쿨엔 호박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고, 동부콩은 꼬투리를 열심히 여물어 가고 있다가 낯선 방문객에게 들킨 것이 수줍은 듯 껌벅껌벅 거린다. 들깻잎 몇 이파리 왱왱 날아드는 벌한테 때늦었다고 눈 흘기고, 아직 덜 여문 수수 한 그루 그 꼴을 보고 헤죽헤죽 웃어넘기는데 내 눈에 확 뜨인 나무가 있었다.
처음엔 그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자잘한 열매가 다닥다닥 촘촘하게 나 있어 꼭 아기 홍역하고 있는 얼굴 같았다. 남오미자 나무였다. 아! 실물을 이렇게 보다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도대체 주인이 뉘시기에 이렇게 알뜰살뜰 갖가지 나무를 심어 가을걷이를 풍성하게 하는 걸까. 괜스레 주인이 고마웠다.
오른쪽 파란대문 집은 대문이 닫혀 있었다. 담장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주 정갈하게 마당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깔끔한 주인의 성품을 닮아 한 뼘 텃밭에도 갖가지 열음들이 그다지 정겨운 것일까. 왼쪽 파란대문 집은 열려 있는데 대문 밖에서부터 안마당까지 수수가 가득 널려 있었다. 가득히 널려있는 수수 알곡만큼 빈 수숫대가 정갈하게 다듬어져 하얀색 담 아래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수숫대 잔물기 거두어지면 아마도 이 댁 농부님의 손을 거쳐 고운 수수 빗자루로 김포장날, 강화장날 기다리겠지.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큰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데 우리는 청소기로 화학재료 개량빗자루로 서걱서걱 자연을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자연과 점점 멀어져 가는 나의 공간을 생각하고 수숫대에 준 눈길이 얼른 거둬지지가 않았다.
이런 내게 대문 밖 국화꽃이 수북이 자라 멍울 부푼채 내 시선을 가만히 끌어당겼다. 그래 너도 곧 피겠구나. 꽃집에는 사람들이 욕심껏 키운 국화들이 많이 나와 있던데...너가 피기 전에 다시 한 번 오도록 할게. 나는 국화꽃에게 가만히 속삭이고 눈길을 거두려니 박태기나무가 샐쭉 토라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 그래 너도 이른 봄에 수고했어. 꽃샘바람 속에서도 누구보다 먼저 진분홍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화사하게 봄을 알려주더니 꼬투리도 주렁주렁 보기 좋구나. 겨울 잘 보내고 내년 봄에 보자꾸나. 박태기나무 웃는 얼굴로 나뭇잎 한 장 가만히 떨어뜨려 준다.
아!ㅡ 이 조그만 텃밭에 가을이 이토록 가득하다니. 뜻 모를 감사가 마음 가득 넘쳐 마을 앞 넓은 벌판에 대고 “애들아, 모두모두 고맙다. 모두모두 수고했어!” 목청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계속)
첫댓글 얼굴도 모르지만 자연과 속삭이는 바위나리님을 상상해 봅니다. 정감있고 깔끔한 글을 감상하노라니 어느새 제 마음도 자연을 찾아 헤멥니다. 함께 동행했더라면..하는 욕심이 막 생김니다. 좋은글 또 기대 하겠습니다.
고영예님, 안녕하세요... 거칠은 글에 힘을 실어 주시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저도 언젠가 동행하실 날을 소망해 봅니다.^^
아~~~ 풍성한 말밭이네요. 생생한 여행기에 온 몸이 들썩입니다. 덕분에 갈증 풀고 갑니다, 바위나리님.
김정숙선생님 , 과찬의 말씀... 부끄럽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