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팔아서라도 건축하자고 하는 것에 교인들이 당황되어 그런지 동의를 해주지 않아서 후임에게 맡기고 나는 임지도 결정하지 않고 처가살이 신세를 3개월 동안 했다. 아내는 처형이 하는 미용실을 도왔다. 사실 아내는 실력을 인정받는 일급 미용사였다. 결혼전엔 신부 올림머리를 한 시간에 두세명씩을 해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꿈을 꿨는데 시커먼 먹장구름 속에서 거대한 뱀이 날름거리며 나를 삼키려고 해서 무서워 도망을 치려는데 앞쪽에 교회당이 있는데 십자가가 반쯤 쓸어져 있었지만 난 그리로 피할 수밖에 없어서 들어가 보니 여 성도들이 잠을 자고 있는데 그 중 몇분이 깨어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뒤 내 신학 동기인 황인규란 친구가 '야, 너 우리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우리 모교회로 오면 어떠냐?' 그러길래 꿈 생각도 나서 '그러지' 하고 정읍군 감곡면에 있는 유정교회로 부임을 했다.
유정교회, 시골 마을에 교회당 두개가 서 있는 곳이 상당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친구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그 교회도 싸움하다갈라진 그런 교회였다. 같은 유정리 마을였지만 앞멀이라는 윗 동네에 유정교회는 합동측 전도사가 큰 동네에 있는 통합측 교회는 내가 맡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합동측 전도사에게 우리 합하는 것이 어떻냐? 그랬더니 두말하지 않고 OK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철닥소니 없기는 나 보다는 그 전도사가 더 했다고 생각된다. 교회를 합친다고? 노회나 총회가 알면 제명당할 일은 우리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순진한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내가 갔던 유정교회는 교세로 보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데도 피아노가 없고 풍금만 있었다. 가지 잎이 없고 나무 몸통만 있는 그런 교회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만 엉퉁한 일을 저지렀던 것이다.
아내가 시집올 때 다른 것 대신 피아노를 사 가지고 온 것인데 사모와는 일언반구 상의도 하지 않고 덜컥 헌납한 것이었다. 집사람이 심정이 어떻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모지리, 그런 엉퉁이와 살아준 집사람이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집사람과 결혼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련다. 그런 아내를 설득한 것은 장모님이었다. 장모님께서 '니 전도사가 하는 말 아브라함이 언제 아내 사라에게 말하고 이삭을 바치러 갔느냐' 란 말이 옳은 말이니 니가 니 전도사를 이해하라고 해서 한 달여 냉전에서 벗어났다.
고맙고 보고 싶은 장모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겠지요. 저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 가서 찾아 뵙겠습니다. 엉퉁이를 넘어 모지리였던 저를 생각해 따님을 설득했던 장모님 정말로 보고 싶어지네요. |
첫댓글 목사님의 순수한 젊은시절을 보는 것 같아 즐겁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저는 요즘 제가 알고있던 복음이 전부 가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하나님은 너가 오해했도다 하시는듯이요
가르치는 자와 전하는 자가 올바로 알아야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웃으면 안되는데, 웃음이 나옵니다
이 글을 읽으니, 30여년 전, 한 자매님이 떠오릅니다 ㅎㅎ
완전 열심당원 시몬 같은 기질의 이 자매님... 이 자매님의 달란트는 전도였습니다
길거리에서 예수님 믿으세요 하고 접근해서 그 상대가 머뭇머뭇 거리면서
" 저 있잖아요 예전에 저도 교회 다녔는데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서요 "
하면,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렇게 저렇게 세상것을 즐길수록 우리의 영혼은
그만큼 구원에서 불리해 질 수 있지 않겠냐고 덕스럽게 대화할텐데, 이 자매님은
다짜고짜 ㅋㅋ " 아유 이 자매님 보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세상것 실컷
즐기로 하나님께 흠씬 두들겨 맞고 오라" 고 하면서 되려 얼른 가보시라고 ...
먹을것 같은 거, 생활용품 같은거 싸들고 가서 전도해도 될까말까 한 전도인데
이렇게 자기가 판단해서 교회 오라마라 했던...
이 자매의 얘기는 교인들에게 화제꺼리가 되어 얼마나 웃으면서 흉? 봤었던지요 ㅎㅎ
첫사랑 때의 용감무쌍한 필자의 모습들을 잼나게 써 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모두 색깔은 다르지만, 이렇게 주님과의 첫사랑의 뜨거움이 있었지요
순수한 믿음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선명하게 우리의 심령에 남아
기쁨을 줍니다
할렐루야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