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고 야구시합 응원가에 대하여 ㆍ권경희 ]7/5 “가야지 가야지 안타 치고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나는 이 응원가에서 어떤 악의도 찾을 수 없다. 이 말에 어떻게 상처가 되고, 이 말이 어떻게 징계 사유가 되며, 이 말이 어떻게 학교가 사과해야 할 일이 되는가. 배재고 팀을 향해 안타 치고, 이기고, 경기 끝나면 스타벅스 가자는 말이 도대체 누구를 위협하고 누구를 모욕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땅에서는 김일성 만세 같은 극단적 구호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감싸려는 사람들이 있고, 파주에서는 김일성·김정일 동상까지 전시되는 기막힌 세상이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이 자기 팀을 향해 부른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은 상대 눈치를 보며 사과는 물론 징계까지 받아야 한단 말인가. 더 기가 막힌 것은 선택적 분노다. 어떤 연예인의 과거 소년범 논란에는 “청춘의 일탈”이라며 용서와 이해를 말하던 사람들이, 아직 어린 고등학생들의 응원 한마디에는 마치 죽으라는 듯 근조화환까지 보내며 몰아붙인다. 이것이 정상인가. 아이들이 부른 말은 “스타벅스 가야지”였다. 폭언도 아니고, 협박도 아니고, 혐오 표현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탱크와 연결하고, 폭력성으로 몰아가고, 사과와 징계의 이유로 삼는 것이야말로 상식의 선을 넘은 과대 해석이다. “소년원 근처 안 가 본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저쪽 진영 논리도 황당하다. 국민 대다수는 소년원이라는 단어조차 자기 삶과 무관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소년원과 소년범 논란이 그렇게 가볍게 농담처럼 넘어갈 수 있는 말이 되었나. 반대로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응원가 한 줄은 왜 이렇게 가혹하게 재판받아야 하나. 이것이야말로 내로남불이고, 선택적 분노다. 내 편의 잘못은 청춘이고, 상대 편 아이들의 말은 징계 사유가 되는 사회. 이런 이중잣대가 아이들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죽이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도 결국 논리 비약이고 과잉 비유일 뿐이다. 커피 마시러 가자는 말에서 탱크를 떠올리고, 응원가에서 폭력을 읽어내는 어른들의 상상력이야말로 핵폭탄급으로 위험하다. 응원은 응원으로 보면 된다. 없는 악의를 만들어내고, 없는 폭력성을 덧씌우고, 아이들의 말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끌고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이 경계해야 할 진짜 위험이다. 개그콘서트가 풍자하던 세상도, 지금 이 현실보다 과하지 않았다.
출처: 憂國衷情(우국충정) 원문보기 글쓴이: 마당쇠(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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