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이 글을 읽고 새삼 이천수 선수를 다시 보게 된거 같습니다..
찢어질듯한 가난이 뭔지 모르는 저로서는 이천수 선수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축구에 대한 불타는 의지는 두 눈 감고도 느낄 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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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셨나요?”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20·고려대).그러나 신세대 스타 이천수에게 견디기 힘든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이천수에게 숨겨진 특별한 얘기들을 들어본다.
■가난이 죽도록 싫었어요
이천수는 축구와 가난을 동시에 알았다.가난의 굴레는 축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 다가왔다.아버지가 20년간 다니던 회사가 부도 났고 어머니는 뇌종양에 걸린 할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보험회사를 그만뒀다.어린 이천수는 아파트에서 단칸 셋방으로 이사하면서 가난을 피부로 느꼈다.이후 항상 친구들보다 잘 입지도,잘 먹지도 못했다.더욱이 중학교 때부터는 축구부 비용은커녕 등록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찢어지는 가난을 경험해야 했다.하지만 이천수는 가난이 지독해질수록 축구에 더욱 몰두했다.그라운드 안에서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고,그 누구도 자신을 깔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달리고,또 달리면서 시름을 잊었단다.
■아버지,우리 아버지?
이천수의 아버지 이준만씨(46)는 노동운동에 청춘을 바쳤다.이씨가 주방기기를 만드는 H회사의 노동조합에 몸을 담은 것은 이천수를 낳을 즈음.이후 10여년간 노조 간부로 일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그러나 90년대 들어 회사가 갑자기 부도 나면서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부도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이씨는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이후 동료들의 체불 임금을 받아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게 4∼5년.그 사이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업친 데 덥친 격으로 임금 문제가 해결됐을 무렵엔 난데없는 폐병까지 생겼다.이씨는 아프다는 말을 꺼낼 수도,병원에 갈수도 없었다.돈이 없었던 이유보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형만한 아우 없다잖아요
이천수는 형 이천식씨(22·공익근무요원)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장남인 천식씨는 아버지의 실직으로 일찌감치 가족의 생계를 떠맡았다.때문에 인천수산고를 졸업한 약관의 나이에 ‘선박 왕’의 꿈을 미루고 인천 연안부두 짐꾼으로 일해야 했다.이후 천식씨가 번 돈으로 이천수 가족이 생활을 꾸려 갔으며 이천수의 등록금 및 축구부 합숙비,유니폼비 등 각종 제반 비용을 간신히 댈 수 있었다.하지만 하늘은 무심했다.이천수가 고교를 졸업할 무렵,형 이씨는 2년간 무거운 물건을 날랐던 탓에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고 결국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하나뿐인 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형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천수도 없었을 것이다.
■(최)태욱이는 우상이었죠
이천수는 초·중교 시절 최태욱의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전국구 스타였던 최태욱은 중학시절에도 항상 이천수를 초라하게 만드는 넘볼 수 없는 ‘산’이었다.이천수가 최태욱의 명성을 부러워하며 보낸 세월이 6년.최태욱과 같은 부평고에 입학해서 보니 155㎝의 단신이던 이천수에 비해 최태욱의 체격이 훨씬 조숙해 벤치신세를 져야만 했다.그러나 죽어도 지기를 싫어하던 이천수는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낮에는 최태욱보다 한 발짝이라도 더 뛰려고 이를 악물었고 밤에는 잠을 설쳐가며 최태욱의 장단점을 되뇌었다.그 결과 이천수는 부평고 2학년 때 임종헌 신임코치(현 부평고 감독)가 준 기회를 단번에 낚아채며 최태욱과 주전경쟁을 벌이는 라이벌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고)종수형이 튄다고요?
이천수의 튀는 기질은 고종수(수원)를 능가한다.지난 99년 여름,이천수는 첫 태극마크를 달자마자 고종수와 한판 ‘기 싸움’을 벌어야 했다.당시 대표팀 숙소였던 타워호텔에 도착한 이천수는 룸 메이트가 고종수로 결정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니나 다를까 이천수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고종수는 축구화의 끈을 매어 놓으라는 특명을 내렸고 이천수는 꾹 참고 축구화 끈을 묶었다.그러나 결코 그냥 넘어갈 이천수가 아니었다.이튿날 아침 이천수는 자명종 시계로 통쾌한 복수극을 펼쳤다.당시 선후배가 한 방을 쓰던 대표팀에서는 아침 자명종은 후배가 끄는 게 상례.그러나 이천수는 자명종 소리를 듣고도 이를 가만히 내버려뒀고 결국 고종수는 일그러진 얼굴로 일어나 자는 척하는 이천수의 등에 도끼눈을 흘겨야 했다.이 사건을 계기로 고종수와 이천수는 둘도 없는 사이로 발전했다고.
■프로필
▲생년월일=81년 7월9일 ▲체격=172㎝ 62㎏ ▲출신교=부평초-부평동중-부평고-고려대 ▲통산 A매치기록=15출전 3골 ▲가족사항=부모 이준만(46) 박희야(44),형 이천식(22) ▲수상경력=98년 추계고교연맹전 득점왕,99년 백운기 득점왕,KBS배 득점왕,2001 춘계대학연맹전 득점왕 및 MVP,추계대학연맹전 득점상 및 우수상,2000년 국가대표 나이지리아전 MVP,2001년 국가대표 세네갈전 MV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