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감독김성수출연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개봉2023.11.22.
봄은 희망이다.
추운 겨울이 물러나고 만물이 푸른 잎을 내는 계절!
그러나 서울의 겨울은 예상보다 너무 길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더불어 경제 성장을 내세우며 영구 집권을 시도했던 유신 체제가 무너졌다.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꽃 피울 시절, 서울의 봄을 기대했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에 의해 진압되고, 민주주의의 봄을 갈망하던 시민의 소망은 황무지 한복판의 말라 비틀어진 나무 가지처럼 툭~ 부러지고 말았다. 봄을 군홧발로 짓밟은 자들에 맞서 저항하던 자들은 끌려 가고, 고문과 죽임을 당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대학생들의 데모에 당황하던 신군부는 이듬 해 5월,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발포 명령을 내려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 87년, 직선제를 외치며 캠퍼스를 벗어나 광장으로 나선 대학생, 시민들의 저항에 전두환은 물러나고 직선제를 도입했으나 전두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90년,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봄은 언제 오는가?
겨울이 이토록 긴데, 온 나라가 꽁꽁 얼어 붙은 채 수 십 년이 흘렀으니, 겨울은 참으로 길고 봄은 시리도록 짧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두 사람은 고도(Godot)를 기다리지만,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고도는 언제 오는 것일까? 황무지 한복판 말라비틀어진 나무 아래 앉아 곧 온다는 고도를 기다린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언제쯤 푸른 잎이 돋아나고 꽃이 필까.
누가복음 2장의 성전에 두 늙은이가 등장한다. 시므온과 안나. 두 사람은 평생을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어느 시점에서 성전에 태어난 지 40일 된 아기 예수를 보자 “이제 주님께서는 …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눅2:29)라고 고백했다. 평생을 기다렸다. 외경에 따르면 시므온의 나이가 백세가 넘었다. 말라 비틀어진 나무 신세, 생기가 사그라지는 나이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어린 생명이 나타났다.
에스트라공은 좀처럼 벗어지지 않던 구두를 벗었고, 시므온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으면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라도 고백했다.
황무지 한복판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자살 뿐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자실을 생각했지만, 고도를 기다리기를 선택했다. 서울의 겨울은 영속화될 것처럼 보였지만, 서울의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 의해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죽음을 앞둔 늙은이에게, 연한 생명의 잎이 돋아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보상을 받는 일도 드물 것이다. 대다수는 개또라이 같은 놈에게 투표용지를 던지고,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봄을, 그래도 고도를, 그래도 메시아를 기다려야지. 그게 나다움, 사람다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참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