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은 성경에 관한 10항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8-10항을 살펴보겠습니다.
8항. 히브리어(하나님의 옛 백성의 모국어)로 된 구약과 헬라어(신약 기록 당시에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언어)로 된 신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하셨고 비상한 보호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하셨기 때문에 진정하다. 그래서 종교의 모든 논쟁에서 교회는 구약과 신약에 최종적으로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권리와 흥미를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성경을 읽고 공부할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 성경 원어를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그들이 속한 각 민족의 대중어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여서 그들은 하나님을 합당한 방식으로 예배하고, 또 인내와 성경의 위로를 통하여 소망을 가질 것이다.
9항. 성경을 해석하는 정확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경 구절의 참되고 완전한 의미(여럿이 아니고 하나이다)에 대하여 의문이 있다면, 보다 더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을 가지고 살피고 깨달아야 한다.
10항. 종교의 모든 논쟁을 결정하고, 교회회의의 모든 결의, 고대 저자들의 견해, 사람의 교리와 사사로운 영들을 분별하고 우리가 그 판결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심판자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뿐이시다.
해설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7항은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믿고 준행해야 하는 구원은 어떤 성도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고 명료하게 계시되어 있다고 성경의 명료성을 말했습니다. 이어지는 8항은 이를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섭리에 의해 순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성경의 원문은 각 나라의 자국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번역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2. 구약 성경은 일부 아람어(갈대아어)로 기록된 부분(렘 10:11, 단 2:4-7:28, 스 4-6장의 일부) 외에는 본래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류가 없으며 신앙과 행위의 규범으로서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고 말할 때는 바로 히브리어 또는 그리스어의 원어로 기록된 이 원본을 가리킵니다. 원본 성경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고 현재는 원본을 베껴 놓은 사본들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원본의 소실이 원문의 소실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보호와 섭리를 통해 원본 성경의 원문을 순전하게 보존해 주셨기에 온전히 믿을 만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 현재 사본들을 통해 구성이 된 성경의 내용이 원본의 원문과 전체적이며 일반적으로 일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순수성은 오늘날 히브리어 성경이 초기의 번역본, 특히 70인 역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확인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그릇된 교리를 전했다고 책망하신 적은 있어도 성경을 오염시켰다고 책망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구약성경의 순수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신약성경이 오염되었을 가능성은 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약 사본들의 수가 원문의 내용을 밝히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으며, 사본의 기록 시기가 원본과 멀리 떨어지지 않다는 점은 원본과 원문의 일치와 통일성에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다른 고대 문헌의 사본은 열 개를 넘어가는 것이 드뭅니다. 유명한 호머의 ‘일리어드’(원본 BC 800년 경)의 경우도 650개의 사본이 있지만 대부분 AD 2, 3세기에 된 것으로 원본과 사본의 기록 시기의 차이가 무려 천년이 넘습니다. 반면에 신약성경의 사본들은 중요한 것들만 헤아려도 2,300여 개에 이르며 전체적으로 5,500여 개에 달하는 사본들이 대부분 원본 이후 2-3세대 안에 기록되었습니다. 아울러 신약성경에서 동일한 구절에서 표기가 다른 표현을 가리키는 이문(異文)은 약 40만 개에 달하며, 콥트어와 라틴어와 같은 고대 언어로 번역된 매우 오래된 신약성경 역본들도 많습니다. 초기 라틴어와 콥트어 역본은 그리스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번역했기에 원본을 추적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뿐만 아니라 고대 언어로 번역된 사본들과 더불어, 교부의 글들도 신약성경의 원본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 모든 내용을 요약해서 신앙고백서는 하나님께서 성경의 원본을 사본들의 원문들 안에 잘 보존해 주셨고 순전한 상태로 전달해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 나아가 신앙고백서 제1장 8항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된 원문들이 각 나라와 민족들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교훈을 살펴야 하며, 말씀의 풍요로움 가운데 성경의 교훈에 합당한 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요 4:24; 5:39; 행 17:11).
5. 당시 로마교회는 성도들이 성경을 읽으면 교만해져서 권한 밖의 일들에 호기심과 의문을 갖게 되고 교회의 교도권을 가벼이 여기며 스스로 더 지혜롭다고 여길 것이라는 이유로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은 이처럼 성경의 번역을 금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한 로마교회의 입장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6. 성경의 원문을 번역해서 따로 원어의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성경을 읽고 성경의 교훈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 1장 8항은 교리를 확정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논의들은 물론 모든 종교적 논의들은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7. 신앙고백서 1장 9항은 “명확하게 말씀하는 본문을 통하여 모호한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라고 해석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개혁신학은 신앙고백서가 명시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성경해석의 이러한 규칙을 ‘성경의 유비’(analogia Scripturae)라는 용어로 표현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어려운 구절을 만났을 때 성경 이외의 다른 문헌이나 전통 또는 사상을 끌어들여 해석하지 않고, 이미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난 구절들을 근거로 하여 성경 전체의 복음과 신앙의 교훈에 비추어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려운 구절의 의미를 설명해가야 합니다.
8. 한편, 신앙고백서는 성경의 구절들은 다중적 의미를 갖지 않고 오직 하나의 의미만을 전달한다고 덧붙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복합적 의미의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성령이 의도하신 전체적인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갖거나 하나의 의미가 또 다른 의미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의미가 명료한 성경 구절을 기초로 하여 의미가 불분명한 구절들을 해석해 가는 일반적인 노력을 ‘성경의 유비’라고 한다면, 지금 말하는 그 명료한 의미들의 해석적 결과에 기초하여 신학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불분명한 구절들의 의미를 해석해 가는 노력을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라고 일컫습니다. ‘성경의 유비’는 성경해석의 형식적 측면의 표현이고, ‘신앙의 유비’는 성경해석의 내용적 측면을 반영합니다.
9.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경해석의 권리를 독점하지 말고 성도에게 성경을 스스로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성경해석의 기초 원칙을 가르쳐서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실천적 영역으로까지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성경해석은 억지로 자의적으로 하지 않아야 하며(벧후 3:16),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이라는 원칙에 입각해야 합니다.
10. 1장 10항은 모든 논쟁의 최종적 권위를 가진 최고의 심판자이신 성령님을 고백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논쟁과 각종 신조와 교부와 신학자들의 견해들, 또는 누구의 가르침이나 사상들 모두가 다 성경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하며 성경의 해석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고백서는 신앙 논쟁과 신조와 교리의 최종적인 판결자를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고 성령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11.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님이 성경으로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자신이 유기적이고 축자적이며 내용과 형식 모두를 통전적으로 영감시킨 성경과 더불어 일하십니다. WLC 155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하시는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참고. 대하 34:14 이하; 느 8:8; 사 6:9).
문: 말씀이 어떻게 구원에 효력이 있게 합니까?
답: 하나님의 영은 말씀을 읽는 것과 특히 말씀의 설교를 효력 있는 방편으로 삼아 죄인들을 깨닫게 하고 책망하며 겸손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자신들로부터 나오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며,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게 하시며, 유혹과 부패에 대항하여 그들을 강하게 하시고, 은혜 안에 자라게 하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그들의 마음을 거룩함과 위로로 견고하게 세워 가십니다.
성령의 조명 혹은 성령의 증거는 성경 주석, 과학적 탐구 그리고 철학적 분석과 상관없는 신비로운 경험이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은 오성(悟性)을 조명하고 우리가 사물을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내용과 더 명백하게 연관시키도록 하는 심령을 정화하고 사고를 집중시키는 활동입니다.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진리를 더 분명하게 알도록 인도하시고, 그 진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녹아들도록 도우시며, 거듭난 이성과 성경적 세계관으로 만유(인간, 자연, 역사, 예술, 문학, 과학기술 등)의 목적과 가치를 이해하도록 인도하십니다.
12. 둘째는 교회의 결정이 이루어질 때, 그것이 성경의 객관적 교훈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동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단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여서만이 아니라, 성령님의 내적인 설득에 의하여 이루졌기 때문입니다.
13. 이처럼 모든 신앙의 논쟁을 종결짓는 최상의 재판관이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이라는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은 교회가 모든 논쟁의 최종 재판관이라는 로마교회의 교황 주의를 논박합니다. 교황도, 교회의 회의도 신앙의 논쟁을 판단하는 최종의 재판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종종 서로를 질시하며 모순된 주장을 재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직자들은 성경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고 교리를 설명하고 강화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들의 권위는 사역을 위한 권위일 뿐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으면 그들의 해석과 권위는 인간의 양심에 아무런 구속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따라서 교회 회의의 결정과 고대 저술가의 견해, 인간의 교리들은 모두 이 규칙으로 검증되어야 하며 모든 신앙의 논쟁도 이 규칙을 통해서 결정되어야 합니다(사 8:20, 마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