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인 승부를 가른 3국은 알파고가 바둑의 원리를 완벽하게 터득했음을 보여준 한 판이었습니다. 반면 이세돌 9단은 승부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쉬운데요. 이제 4, 5국은 승부에 대한 중압감이 없으니 이세돌 9단이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딥마인드 쪽에서는 알파고가 분명 약점이 있다고 하니 여러분도 한 번 그 약점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_김찬우 프로6단”
▶대국 일시: 2016년 3월 12일 오후 1시
▶대국 장소: 대한민국 서울 포시즌스호텔
▶대국자 : 알파고(백○) vs 이세돌 9단(흑●)
●흑 13수:
2국에서 다소 불안한 부분은 있지만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알파고. 알파고는 기보 수십만 판을 바탕으로 딥러닝 기법을 통해 바둑의 원리를 깨우친 것으로 보입니다. 바둑의 원리 중 하나는 강한 돌에 가까이 가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돌은 넓게 펼쳐야 한다는 것인데요. 흑 13수에 알파고가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알파고가 얼마나 바둑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백 14수:
이 수는 필자가 정확하게 예측한 한 수였습니다. 수많은 기사들이 대국하고 연구하면서 다양한 수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일부 프로 기사들은 흑 13수 다음으로 백이 한 칸 걸친 돌에서 입구자 수를 둘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알파고는 바둑의 원리, ‘강한 돌 가까이 가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돌을 넓게 펼쳐야 한다’는 것에 충실했습니다.
단단한 좌상귀 흑 두 점으로 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둔 것이지요. 자신이 학습한 바둑의 원리에 따라 이 수가 다른 수보다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보여집니다.
●흑 15수:
이세돌 9단이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지만 성급한 한 수였습니다. 상대의 가벼운 돌에 붙여서 끊으려고 시도하는 바람에 자신의 모양에 약점이 생기는 것을 간과한 것이죠. 2패를 당한 이세돌 9단의 조급함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흑 27수:
흑을 중앙으로 내몰며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였지만 이세돌 9단의 방향착오로 보입니다. 바둑의 기본 원리를 생각하면 이 수가 아니라 중앙 방향으로 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싸움에 대비하면서 자신의 주변 돌에도 힘을 실어줄 수 있었습니다. 최종국이고 꼭 이겨야 된다는 부담감이 바둑의 원리에 벗어난 수를 두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백 30수:
백이 이렇게 머리를 내밀고보니 흑 석 점이 약해졌습니다. 게다가 백은 중앙으로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돌을 보강하면서 동시에 흑을 공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백이 이렇게 좋은 수를 두도록 만들어 준 흑의 선택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흑 31수:
흑 31수(왼쪽). 31수는 이 곳이 아니라 오른쪽의 참고도처럼 뒀어야 했다. - 바둑의 제왕 제공
이 수는 부분적으로 모양이 좋은 수지만 강한 흑 넉 점과 위치가 가깝습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강한 돌 가까이에 두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말이 생각나실 겁니다. 바둑의 원리와는 상반된 수라는 것을 독자분들도 눈치채셨겠지요? 지금은 좌변을 날일 자(참고도 참조)로 지킬 자리였습니다.
○백 32수:
흑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상변을 키우는 사이 터진 알파고의 이 한 수는 승부를 가른 결정타입니다. 이세돌 9단은 초반에 때이르게 이런 수를 허용해버렸습니다. 이기려고 하는 중압감이 행마를 굳어 버리게 만든 겁니다. 바둑 격언 중 최고의 격언에 ‘반전무인 반상무석(盤前無人 盤上無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바둑판 앞에 사람 없고 바둑판 위에 돌이 없다는 것으로, 마음을 비우고 바둑을 두라는 뜻입니다.
○백 48수:
결국 좌변에 흑진은 모두 백의 수중에 떨어지고, 흑은 약한 돌만 남았습니다. 불리하다고 버티다가 상황만 악화시키고 말았지요. 아까도 말씀드린 바둑 격언 중 ‘반상무석’은 형세 유불리와 관계 없이 원리에 충실한 바둑을 두라는 뜻인데요. 이세돌 9단이 상대 진영을 계속 의식하면서 이기려고 하는 의지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말았습니다.
●흑 125수:
알파고를 이길 가능성을 보여준 한 수입니다. 알파고는 이미 프로기사와 마찬가지 바둑의 원리를 터득한 상태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사람은 연산력에서 월등한 컴퓨터를 결코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상대, 그러니까 알파고에게 큰 모양을 주면서 동시에 자기 모양을 착실하게 지켜나가는 겁니다. 그 뒤, 알파고의 모양에 침입해 돌의 사활을 다투는 수입니다. 이 방식으로 승부를 하게 되면 알파고의 막강한 계산력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사활만 놓고 승부를 겨루게 되지요.
흑 125수의 경우 바둑이 상당히 진행된 뒤라, 승패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형세가 역전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양을 넓게 잡을 수 있는 바둑 초반에 이런 포석을 사용하면 예측해야 하는 수가 지나치게 많고, 변화 가능성이 커서 알파고도 모든 경우의 수를 읽을 수는 없게 됩니다.
○백 126수:
실제로도 이세돌 9단의 125수와 알파고가 둔 126수 이후를 보면 알파고의 약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양은 흑이 수를 낼 수 있는 모양이 아닙니다. 그런데 알파고는 여기서 수를 내주고 말았지요. 과감하게 백의 모양에 침투해간 125수에서부터 변화가능성이 늘어나 알파고의 실수가 나오기도 한 것입니다.
즉 공간이 더 넓을 경우에는 흑이 침투해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클 것입니다. 그래서 알파고와의 대결에서는 집 수를 세서 미세하게 이기는 바둑으로 승부를 볼 게 아니라, 살고 죽는 방향으로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그 수읽기 싸움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백 176수:
흑이 하변에서 패를 만들기는 했지만 팻감이 없는 이세돌 9단 결국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0:3으로 인간 최고수가 패배했지만 인공지능 학자들이 바둑의 원리를 컴퓨터에 적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바둑계 또한 바둑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인공지능 관련 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더욱 정진하여 이제는 컴퓨터에게 인간이 도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김찬우. 프로6단이자 ㈜에이아이바둑 대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바둑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현재는 바둑 대중화를 위해 노력 중. 누구나 쉽게 바둑을 배울 수 있도록 즐기며 바둑을 배울 수 있는 ‘☞바둑의 제왕’ 앱을 개발해서 서비스하고 있다.
※ 편집자주 3월 9일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겁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력에 도전하는데 있어, 오랫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승리를 거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고 알려진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말이지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 팀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지도 모릅니다. 데미스 하사미스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를) 달에 착륙시켰다(We landed it on the moon).”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대체 알파고는 어떻게 이세돌 9단을 공략한 걸까요? 북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은별’을 우리나라에 보급하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는 김찬우 프로 6단이 이번 대국을 설명해 드립니다.
김찬우 프로6단 rabad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