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울화가 치밀었다.
삼십여 년 전 앓았던 위장병이 다시 속을 썩이고 있었다. 속이 갑갑하게 차 오르기 시작하면 선하품이 쌕쌕 거리고 나왔고 하품을 하고 나면 시원한 것 같다가도 좀 있으면 속이 갑갑했다. 심호흡을 해 보아도 하품한 것 만큼 시원하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밥먹고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한 것이 나의 생활을 힘들게 했다.
동네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먹고 견디려 해 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아주 죽을 병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지 집에서는 아침과 저녁시간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먹어보긴 하지만 점심에 먹을 약봉지를 깜빡 잊고 다니기 십상이었다.
“이 놈의 위장병은 언제 낫나? 아버지, 왜 저를 위장이 약한 놈으로 낳아 놓으셨나요.”
“위장이 약한 사람은 약이 따로 없어. 항상 배고프게 살아야 해.”
나의 아버지가 위장이 약하여 날마다 꺽꺽 거렸다. 위장 뿐 아니라 폐가 약하여 늘 약을 달고 살았다.
“낮에 강변에서 방송국에서 촬영한대. 구경가자.”
전국 노래 자랑, 지금도 왕성하게 노익장을 과시하는 송해 선생님이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삼십 여 년 전에도 있었다. 같이 자취하던 친구 녀석이 함께 구경가자고 잡아 끌었다. 고교 3년생이었던 이들은 방송국 촬영을 웬만 해서는 볼 기회가 없었고 흑백TV에서 칼라TV로 바뀐 지 얼마 안되는 그 시절에 전국노래자랑은 마을 사람들이 벼 타작을 팽개치게 하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언제나 시작하려나?”
12시에 녹화한다고 해서 학교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마자 뛰어 왔지만 사람들은 많이 모였는데도 시작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좀 더 기다려 보자.”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들은 끝내 노래자랑을 시작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나는 뛰어 집에 가서 밥 한술 먹고 보니 수업시작 5분전이었다. 급히 뛰어 수업시작 전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게 급체를 불러왔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만성 위염으로 이어졌다.
고교 3학년과 졸업 후 1년 시절을 인제종합병원에 다녀 보았지만 만성위염 증세를 근치할 수 없었다. 그 후 사회에 나와 위장병에 좋다는 옻순을 꺾어 먹고 혼나기도 했고 옻닭을 먹어 위장병을 호전시켜 보긴 했으나 과식에 의한 소화불량은 꾼을 계속 따라 다니며 못 살게 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소식하며 배고프게 살았으면 문제없을 것이나, 다른 곳이 아픈 환자들이 맛나게 먹던 음식들을 보면 나는 식탐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 빵이 먹고 싶었고, 마른 오징어가 먹고 싶었다. 그런 것들을 먹지 못하는 나는 밥이라도 실컷 먹고 싶었다.
담배는 위장병과 함께 붙어다니면서 나를 괴롭히면서 끊으려고 해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던 악연이었다. 직장생활 육개월 만에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스물 한 살부터였으니 직장에 정을 못 붙여 괴로워하던 나에게 위안거리라고 던져 주었던 그들이 지금은 정년으로 나갔던 선배들이었다. 계장님에게 꾸중을 당한 날에 의기소침해 있었다.
단돈 천원에 오징어와 소주를 나눌 수 있었다. 술이 올랐을 때 나는 잘 울었다. 선배는 그걸 권했다.
“이거 한번 피워 봐.”
띠요옹.
그게 처음 맛본 첫 담배맛이었다. 하늘이 노래지고 하늘과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뱃속이 뒤틀리는 맛이라고나 할까? 나는 너무 어지럽고 메슥거려서 누웠던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시름이 생길 때면 그 선배들과 함께 뻐끔담배를 피웠고 언젠가부터는 뻐끔담배에서 어느 정도 들이 마시더니 담배가 떨어지면 쪼르르 가게에 달려가는 골초가 되어갔다. 담배를 매일 한 갑씩 피면서도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더니 나 나이 마흔 다섯이 꺾어지더니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속 갑갑증이었다. 장가들었다고 처가에서 해준 보약을 먹고는 위장병을 진정시켰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담배를 피우면 급히 먹은 밥에 체했을 때처럼 하품하던 버릇이 나온 것이다.
<담배만 끊으면 이런 증세는 금방 없어질 텐데.>
흡연은 일종의 정신병이었다. 담배가 위장을 약하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흡연행위를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날벌레가 제몸 타는 것을 알면서도 모닥불 가에 겁없이 날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담배 피울때는 당장이라도 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면 그 의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무심결에 담배를 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빠 냄새 때문에 죽겠어요.”
딸래미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아내까지 합세하는 날에는 부부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담배를 끊고 싶지만 의지가 부족한 나에게 날아오는 금연 강요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금연이 정당한 요구임에도 가족들은 눈치를 보다가도 감정에 솔직한 둘째 딸년이 곧잘 불평을 잘 터뜨렸다.
“과장님, 담배 피우시면 밖에서 한 시간 있다 들어오세요.”
사무실 여직원이 코를 싸쥐었다. 참, 세상 많이 변했다. 나가 일배우던 시절 과장님 책상에는 유리 재떨이가 거만스럽게 놓여져서 사무실을 찾는 손님과 과장님의 담배를 피면서 나누는 대화가 이어지곤 했었다. 여자들이 수다스럽다고 했지만 담배피는 분들의 수다도 보통은 아니었다. 마누라 흉부터 시시콜콜한 정치 이야기까지 그들이 이야기를 끝낼 즈음에는 깨끗했던 유리 재떨이에 꽁초 대 여섯 개는 되었다. 하지만 나가 과장으로 등극했을 때 세상은 변해 있었다.
나가 과장으로 등극할 찰나에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담배 재떨이를 치우기 시작했다.
거리의 재떨이가 없어지고 공공기관에서는 흡연자들을 골방으로 내쫓았으며 학교와 군부대에서는 꼴보기 싫다며 흡연하려면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언젠가 자녀 상담하러 가서 뒤틀린 심사를 달래려고 무심코 담배를 빼어 물었다.
“아저씨, 학교 안에서 담배피면 안돼요.”
초등 4학년은 되었을까? 아이가 꽤 당돌하다.
“교실 밖에서 피우는데 어떠니? 다른 곳에서는 밖에서 문제 없던데.”
“학교안에서 어디서든 담배피다 신고하면 벌금 문대요.”
그것은 어줍잖은 어른이 맹랑한 녀석으로부터 엄중한 경고였다. 어린 아이의 경고를 듣고 보니 담배피울 맛이 확 달아났다.
“이렇게 흡연자들을 푸대접할 거면 왜 담배를 만드는 거야.”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담배가 정말 몸에 해로워서 흡연자들의 숫자를 줄이려면 애초에 담배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흡연자들에게 담배 값만큼이나 되는 담배세를 붙여서 판매하고는 흡연자들의 자유로운 권리를 빼앗고 있었다. 나라는 지정한 곳에서 피우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흡연구역을 이탈한 흡연자들에게 정말로 과태료를 물렸는지 모르지만 정말로 물렸다면 나라는 담배세로 거두어 들이고 다시 과태료로 수탈해 가겠다는 음모가 아니고 뭣이겠냐 말이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식의 장삿속이란 생각에 이가 갈렸다.
흡연자는 정말 처량하다. 정답게 발붙일 곳이 없다.
나라가 돌보지 않는 흡연자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차갑게 대한다. 좋아하는 담배를 그들만의 공간인 골방에서 피웠다 해도 나라에서 버린 그들은 다른 곳에서도 영원한 왕따였다. 흡연자라는 꼬리표를 달면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직장에서 싫어하고 아이가 싫어하며 심지어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아내까지 왕따를 놓았다.
담배 연기 때문에 간접흡연의 피해가 더 크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흡연자는 필터를 통과한 안전한 연기를 빨아 들이지만 비흡연자는 생연기를 빨아들이기에 더 위험하다는 논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밖에서 피우고 온 그들이 생연기를 담아 가지고 들어올 리 없는데 왕따를 놓는 것은 너무하다.
짜증난다. 배알이 뒤틀린다. 담배 한 개비 꼬나물었다.
연기를 두어 모금 뱉아보니 가슴이 후련한 것 같다. 하지만 뒤따르는 고통이 있었다. 그 놈의 속갑갑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담배와 속갑갑증은 쌍둥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잇, 이 참에 끊어 버리자. 속갑갑증까지 날 괴롭히는구나. 담배만 끊으면 소화불량증세도 저절로 떨어져 나가겠지.>
마침 나가 물었던 담배는 마지막 담배였다. 꽁초가 뜨거워질 정도로 신나게 피우고는 호기롭게 던져버렸다.
예전 같으면 마지막 담배가 남기 전에 한 갑을 사지 않으면 불안했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위장병과 여러 군데서 들려오는 구박들이 흡연의지를 금연 쪽으로 바꾸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금연하는거야.>
“과장님 또 담배 피셨어요.”
“그만해요. 이제부터 끊었음을 선포합니다. 담배 피다 걸리면 벌금 십만원 내지.”
“과장님 십만 원은 너무 많아요. 한번에 삼만 원만 받으게요. 호호.”
갑작스런 금연선포에 잔소리 하던 미스 박이 가장 얼굴이 활짝 피었다. 말한 김에 나도 이 사무실 저 사무실 다니며 금연을 선포했다.
본격적인 결심 탓이었는지 점심까지도 담배 생각이 나지 않다가 점심식사 끝난 후부터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왼쪽 가슴을 만지는 것이다. 담배를 항상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흠흠”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헛기침을 해 보지만 흡연충동을 어쩔 수 없었다.
<그 놈의 입방정 때문에 내가 미쳐. 이곳 저곳에 소문만 내지 않았더라면 당장 한 갑 사서 피우면 별 문제 없잖아. 어쩌면 좋지? 담배한갑 사서 멀리가서 한대 피고 올까?>
나는 머리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나가 과장으로 등극할 찰나에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담배 재떨이를 치우기 시작했다.
거리의 재떨이가 없어지고 공공기관에서는 흡연자들을 골방으로 내쫓았으며 학교와 군부대에서는 꼴보기 싫다며 흡연하려면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언젠가 자녀 상담하러 가서 뒤틀린 심사를 달래려고 무심코 담배를 빼어 물었다.
“아저씨, 학교 안에서 담배피면 안돼요.”
초등 4학년은 되었을까? 아이가 꽤 당돌하다.
“교실 밖에서 피우는데 어떠니? 다른 곳에서는 밖에서 문제 없던데.”
“학교안에서 어디서든 담배피다 신고하면 벌금 문대요.”
그것은 어줍잖은 어른이 맹랑한 녀석으로부터 엄중한 경고였다. 어린 아이의 경고를 듣고 보니 담배피울 맛이 확 달아났다.
“이렇게 흡연자들을 푸대접할 거면 왜 담배를 만드는 거야.”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담배가 정말 몸에 해로워서 흡연자들의 숫자를 줄이려면 애초에 담배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흡연자들에게 담배 값만큼이나 되는 담배세를 붙여서 판매하고는 흡연자들의 자유로운 권리를 빼앗고 있었다. 나라는 지정한 곳에서 피우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흡연구역을 이탈한 흡연자들에게 정말로 과태료를 물렸는지 모르지만 정말로 물렸다면 나라는 담배세로 거두어 들이고 다시 과태료로 수탈해 가겠다는 음모가 아니고 뭣이겠냐 말이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식의 장삿속이란 생각에 이가 갈렸다.
흡연자는 정말 처량하다. 정답게 발붙일 곳이 없다.
나라가 돌보지 않는 흡연자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차갑게 대한다. 좋아하는 담배를 그들만의 공간인 골방에서 피웠다 해도 나라에서 버린 그들은 다른 곳에서도 영원한 왕따였다. 흡연자라는 꼬리표를 달면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직장에서 싫어하고 아이가 싫어하며 심지어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아내까지 왕따를 놓았다.
담배 연기 때문에 간접흡연의 피해가 더 크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흡연자는 필터를 통과한 안전한 연기를 빨아 들이지만 비흡연자는 생연기를 빨아들이기에 더 위험하다는 논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밖에서 피우고 온 그들이 생연기를 담아 가지고 들어올 리 없는데 왕따를 놓는 것은 너무하다.
짜증난다. 배알이 뒤틀린다. 담배 한 개비 꼬나물었다.
연기를 두어 모금 뱉아보니 가슴이 후련한 것 같다. 하지만 뒤따르는 고통이 있었다. 그 놈의 속갑갑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담배와 속갑갑증은 쌍둥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잇, 이 참에 끊어 버리자. 속갑갑증까지 날 괴롭히는구나. 담배만 끊으면 소화불량증세도 저절로 떨어져 나가겠지.>
마침 나가 물었던 담배는 마지막 담배였다. 꽁초가 뜨거워질 정도로 신나게 피우고는 호기롭게 던져버렸다.
예전 같으면 마지막 담배가 남기 전에 한 갑을 사지 않으면 불안했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위장병과 여러 군데서 들려오는 구박들이 흡연의지를 금연 쪽으로 바꾸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금연하는거야.>
“과장님 또 담배 피셨어요.”
“그만해요. 이제부터 끊었음을 선포합니다. 담배 피다 걸리면 벌금 십만원 내지.”
“과장님 십만 원은 너무 많아요. 한번에 삼만 원만 받으게요. 호호.”
갑작스런 금연선포에 잔소리 하던 미스 박이 가장 얼굴이 활짝 피었다. 말한 김에 나도 이 사무실 저 사무실 다니며 금연을 선포했다.
본격적인 결심 탓이었는지 점심까지도 담배 생각이 나지 않다가 점심식사 끝난 후부터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왼쪽 가슴을 만지는 것이다. 담배를 항상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흠흠”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헛기침을 해 보지만 흡연충동을 어쩔 수 없었다.
<그 놈의 입방정 때문에 내가 미쳐. 이곳 저곳에 소문만 내지 않았더라면 당장 한 갑 사서 피우면 별 문제 없잖아. 어쩌면 좋지? 담배한갑 사서 멀리가서 한대 피고 올까?>
나는 머리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연말에 흔하게 치루는 송년회라는 것이 과 직원들의 술 욕구를 풀어주는 자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와 직원 일당은 시내에서 제법 비싸기로 소문난 횟집으로 갔다. 모둠회가 나오기 전에 스끼다시 음식으로 얼간하게 취했다. 권하고 마시고 그런 요지경이 없었다. 1차만으로는 너무 아쉽다고 2차 생맥주집과 노래방까지 가서 끝난 듯 싶다. 생선회는 술 안주가 안된다는 말이 만고의 진리다. 얼마나 퍼마셨던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천장과 방바닥이 친구하여 춤을 추었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출근했다.
“과장님, 벌금 삼만원으로 모시겠습니다.”
“무슨 말씀?”
기억이 아리송하여 긴가 민가했다. 나는 일찍이 술을 좋아했으나 조금만 먹어도 술기운이 올랐다. 그런데다 2차다 3차다 하며 쏟아붓는 맥주와의 짬뽕 술은 정신까지 혼미하게 했다. 희미한 기억 속을 더듬고 있었다.
“어제 두 모금 피우셨잖아요.”
조금 불쾌한 기억이 만져졌다.
1차 횟집에서는 잘 참아넘겼다. 2차 생맥주집에서는 조금 과하게 마신 것 같았다. 흡연 충동이 강하게 피어 올랐다.
“담배 한 대만 주게.”
“과장님 금연 중이잖아요.”
“저도 이게 막담배거든요.”
“그럼 그거라도 주게.”
손대리가 피던 담배를 빼앗아 힘껏 두 모금 빨았다.
경력이 오래 된 흡연자일수록 담배 필터에 침이 묻는다. 손대리에게 넘겨받은 담배에는 침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하지만 담배가 고팠던 나는 맛나게 피웠다. 침묻은 담배를 지금 생각하면 구역질 나게 더러운 물건이지만 그 때는 무릉도원의 천도 복숭아맛 만큼이나 상큼한 맛이 아니었을까?
더러운 기억을 떠올린 나는 말없이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내어 직원의 책상에 탁 소리가 나게 놓았다.
<정말 비싼 담배 피웠군. 조심해야겠어. 금연패치를 붙인 상태에서 흡연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던데.>
그런 걱정이 드는 것이었다.
금연패치가 담배 생각을 줄여주는 것은 피부를 통하여 니코틴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라 했다. 피부로 니코틴을 흡수하는데 담배까지 피게 되면 흡수되는 니코틴의 양이 많아 심혈관 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상담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벌금 삼만 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 낮에 궁둥이에 붙인 패치자리가 근질거렸다. 시원한 쾌감을 느끼면서 패치를 뜯어냈다.
“과장님 오늘 회사 과장급 회식 있는 거 아시죠?”
“알고 말고요. 오늘 모이는 장소는 어디지요?”
연말이 고통스럽다. 그렇게 질펀하게 먹고 마셔야 해가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정말 어찌 되려고 맨날 먹고 마셔야 한단 말인가?
<오늘은 술 마시지 말고 잘 버텨야 하는데 몸 아프다는 핑계를 대 볼까?>
영남정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다.
2층으로 안내되었는데 고기굽는 연기와 떠드는 소리, 시중드는 아주머니들의 분주한 손길이 있었다. 돌돌말린 왕갈비라는 것이 실속있었다. 아주머니가 구워주는 것을 입에 넣으니 살살녹는 느낌이다. 어제 먹은 회에 비하면 소주 안주로 아주 좋다.
“안주가 울겠어요. 링겔부터 한 잔 합시다.”
술마시자고 한 이는 같은 과장급이지만 대머리가 홀랑 벗겨진 고참과장이었다. 나보다 세 살밖에 더 먹지 않았는데도 나이가 더 많아 보인다.
대머리 과장이 따르는 술병이 7명의 술잔을 채우고 나에게 향했다.
“저는 몸이 별로 안 좋아 금주하려구요.”
“아, 왜 이러시나. 어제 기분내고 온 거 다 알거들랑.”
“형님, 오늘 이 자리만 술 면제해 주면 안되나요? 어제 좀 과하게 마셨거든요.”
“조금만 받아요. 많이 마시지 않으면 되지 뭘 그래요. 정 그러면 받아놓기만 하고 안 마시면 될 거 아니오.”
술 받아놓고 마시지 말라고?
대머리 과장은 나를 고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도 소싯적부터 술꾼으로 컸다. 술을 들고 가는 게 귀찮아 모두 마셨던 스타일이다. 대머리 과장이 채워 준 소주잔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술을 적당히 마시고 담배를 참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담배 끊는데 도움이 될 거야.>
소주잔은 나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었다.
<정신집중, 참아야 한다.>
과장들은 남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주고 받는지 재잘거림이 여자들 뺨친다. 여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들은 물 한잔 받아놓고도 이야기거리가 많지만 남자들은 앞에 술이 있어야 잘 논다는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했을 테지만 나는 여느 때와 다르게 조용했다. 연거푸 마신 소주가 힘을 발휘하면서 아랫배가 싸아 하면서 후끈거렸다.
“촌과장 오늘 무슨 일 있었나? 말없는 촌과장을 보니 무섭네.”
무섭기야 할까만 임과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일은 꼼꼼하게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곳저곳 다니며 참견하지 않는 분야가 없고 길거리에 나가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마당발이었다. 나가 생각하기에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책상머리에 근무하지 말고 영업 쪽으로 뛰는 것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에요. 금연한 지 이틀째인데 오늘 술 석 잔 먹으니 속에서 충동질하는 것을 참고 있어요.”
“촌과장 얼마나 오래 살려고 힘들게 사나? 담배 끊으려다 스트레스 받으면 그게 만병의 원인인 걸 몰라? 그냥 나처럼 편하게 살지.”
악마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저마다 악마를 데리고 산다. 악마에게는 이야기할 틈을 주면 안된다.
“담배피면 제가 죽을 것 같아서 끊는 거에요. 위장병이 도져서 할 수 없이 끊는 거지요.”
“그럼, 끊어야지. 하지만 억지로 참아 넘기는 나과장이 안돼 보이는군.”
악마는 악마일 뿐 끝까지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다.
담배 충동을 잘 참아넘겼다.
이차 가자고 잡아끄는 것을 택시 잡아타고 집에 들어가 씻는 둥 마는 둥하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3일째 아침이 상쾌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한 고비를 이루었다. 아싸!>
술이란 것이 커피와 더불어 담배를 끌어 당기는 것들이다. 금연한 지 10년이 넘는 이들도 술 한잔 했다 하면 담배를 꾸어갔다.
술과 담배는 쌍둥이인 모양이다. 나도 그랬다. 그저께와 어제 마신 술들이 그렇게 담배를 잡아 끌었다. 하지만 충동이 강할 때 잠자리로 직행해 버리니 술과 담배가 서로 만나 사랑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누가 금연하는 사람이 있다면 술마시며 끊으라고 권할 것이다. 술과 담배가 연합하여 골초의 몸을 갉아먹지 않게 골초 스스로 처신을 잘 하면 술은 담배끊는데 아주 유익한 약이라고 말이다.
약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이지 옛날 임금이 내리던 사약재료가 천하의 보약이다.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는 부자라는 것이 있는데 줄기에 선명한 무늬가 있어서 무섭게 생긴 식물이 있는데 아주 맹독성 식물이다. 부자를 끓여서 부자탕을 만들어 마시면 내장이 파열되어 피를 토하고 죽게 만드는 사약이 된다. 하지만 양을 미미하게 조금 쓰게 되면 몸 차가운 사람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게 기력을 보해 주는 천하의 명약이 되는 것이다. 술도 많이 마시면 여러 가지 수치를 올려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하지만 적게 마시면 부드러운 인간관계와 몸의 기혈순환을 도와주는 좋은 보약일 것이다.
<금연자들이여 술을 먹을 지어다.>
그 후 나는 담배를 집어들지 않았다.
나이 든 과장을 불러내어 담배 피우게 하고는 구수한 향에 도취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으나 한 개비도 피지 않았다. 전에는 금연 결심하고 하루도 참지 못하였으나 제법 삼일을 견디었고 일주일을 견뎌냈다. 그건 나의 일생에서 이룬 대단한 신화였다. 그는 자신을 대단한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아도취일 뿐이야. 금연패치의 도움으로 끊은 거잖아.>
그런 생각이 들자 억울했다. 나 안에 두 가지 인격이 살아간다고 하더니 비양심 인격이란 놈이 딴지를 걸고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무조건 피우지 않았다고 했다.
“담배는 그냥 안 피우면 끊어지는 거야.”
그가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그랬고 지금 모시고 있는 부장님이 그랬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겉으로 부드럽게 대해 주던 그 분들이 속에는 독종을 품고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쩐지 나가 붙이고 있는 금연패치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붙일 때가 지나면 흡연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비록 입으로 흡연하진 않아도 피부로 흡연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가 받아 온 패치는 1단계로 16시간동안 15mg을 공급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2단계 10mg, 3단계 5mg으로 서서히 끊는 원리인데 1단계의 기간이 2-3개월로 너무 길었다. 낮에만 붙이고 잠잘 때는 떼어냈다. 그는 금연패치도 중독성이란 걸 생각해 냈고 두 번째로 받아 온 패치를 붙이지 않았다. 비상용으로 한 장을 지갑에 접어 넣었다.
그러나 비상용 패치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급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위로 때문인지 흡연충동이 일어나도 삼십 초나 일 분 정도 일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시야를 다른 곳에 돌리면 무난히 해결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훌떡 지나갔다. 금연을 권하던 형님과 부장님의 이야기가 옳은 것 같았다. 무조건 피지 않으면 금연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금연패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고통을 감소시켜 준다는 것 뿐이지 패치가 흡연충동을 일어나지 않게 해주는 기능은 없었다.
이열치열이 더 잘 어울릴 지도 몰랐다.
담배를 물리치는데 술을 이용하기로 한 생각은 정확했다.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뱃속이 짜릿한 느낌과 함께 따뜻해진다. 서너 잔 더 마셔 술기운이 머리까지 올라오면 으레 그렇듯이 담배생각이 몰려왔다. 다른 때 그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바로 피지 않으면 그 생각은 짜증으로 연결되곤 했다. 그 생각을 얼른 치워버려야 한다.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마 한 가운데에 큰 점이 박혔다. 가만히 집중해 보면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부처 이마의 구슬 아니면 호수에서 힘차게 승천하는 용의 이마의 화룡첨점(畵龍點睛)이라도 생각했다면 기발한 탈출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마칩니다.
저는 이후로 금연에 성공하였습니다.
술꾼이면서 골초인 경우 술 마시고 흡연욕구를 이겨내면 그 다음부터는 금연이 더 쉬워진 경험을 했습니다.
담배, 모든 병의 원인이고 특히 모든 암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아직 피우고 계신 분께 일주일의 금연휴가를 권합니다.
단번에 끊는 대신 하루 물 2리터 마시기와 땀흘리는 운동을 병행하면서 일단 일주일만 참으면 그 다음에는 흡연욕구를 참는 것이 더 쉬워집니다. 낚시하시는 분들이 얼음을 깰 때 처음 구멍을 내기까지 힘들지만 구멍을 뚫기만 하면 구멍을 넓히면서 깨는 것은 처음 시작보다 쉽다는 원리입니다.
이 글을 읽는 흡연자님 여러분
금년에는 금연에 꼭 성공하시고 건강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원주에서 행복한부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