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주지방법원은 여자 경찰관의 한쪽 귀를 1.5㎝쯤 물어뜯은 20대 여성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여성은 술에 취해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행패를 부리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던 중이었다.
이 여성은 물어뜯은 귀를 씹어 길거리에 뱉었다. 서른 살의 미혼인 여자 경찰관은 신체 다른 부위를 떼어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고, 앞으로 치료기간만 8개월 정도 걸리며, 4~5차례 더 수술을 받아 완치되더라도 흉터가 남을 것이라는 의료진의 소견이 나왔다고 한다.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고, 피의자가 치료비로 1000만원을 법원에 공탁(供託)한 점을 기각 이유로 들었다.
법원이 옛날 같으면 구속영장을 발부했을 사건에 영장을 기각하는 일이 많다. 몇 년 전부터 불구속 수사와 재판의 원칙이 강조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형사 재판의 기본 원칙이다. 과거 법전(法典) 속에서 잠자던 이 원칙이 현실로 나온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이 원칙이 '반쪽'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의 온전한 뜻이 살아나려면 수사와 재판은 불구속 상태에서 하되 재판 결과 유죄가 인정되면 적극적으로 실형을 선고하는 풍토가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불구속 수사와 재판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은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구속영장 발부율은 2006년 86.6%, 2007년 78.2%, 2008년 75.5%, 2009년 74.5%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1심 피고인 중 구속된 피고인 비율도 2005년 26.2%, 2006년 20.3%, 2007년 16.9%, 2008년 14.4%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비율은 2007년 13.5%, 2008년 12.5%, 2009년 12.6%로 비슷하다. 1심에서 절도·강도·사기·횡령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006년 35.7%, 2007년 35.6%, 2008년 34.5%다. 실형 선고율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판사들이 유죄가 인정돼도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웬만하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과거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특유의 온정주의와 형량을 정하는 양형(量刑) 기준 제도의 미확립 등 여러 가지일 것이다. 판사들의 형량 재량권이 큰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판사들에겐 법정(法定) 최저 형량의 반까지 깎아줄 수 있는 작량감경(酌量減輕) 권한이 있다. 이 권한을 이용하면 집행유예 선고를 폭넓게 할 수 있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형을 선고할 때만 가능하지만 작량감경 권한을 이용하면, 예를 들어 법정 최저형이 5년인 경우에도 절반인 2년6개월로 깎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유전무죄·무전유죄' 논란도 생기는 것이다.
법원이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내세워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유죄가 인정돼도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국가 형벌권은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죄를 져도 웬만해선 구속도 안 되고 감옥에도 안 간다면 누가 형벌을 무서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