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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지때 가장 큰 전쟁으로,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을 들수 있는데,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패할지는,
그들의 부인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 북방의 최고세력가인
"원소( ~202)"는,
집안 초상때 조문객이 3만명이나 왔을 정도로
유명한 가문이었으며,
원소의 부인인 "유씨"도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유씨는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하여 죽자,
그의 장례도 치루기전에
원소가 총애하는 다섯첩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그녀들의 얼굴을 다 뜯어 죽였는데,
그래야 구천에 있는
원소의 얼굴을 볼수없게 한다고 말입니다.
"조조(155~220)"는
아이를 못낳은 정부인과 이혼한후,
집안의 격이 맞아야 한다는
세속적인 관념을 무시하고,
덕과 재주를 겸비한 "변씨"와 결혼했는데,
변씨는 기생출신으로
출신성분은
좋지 않았지만
인품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조조가 전쟁중 자리를 비우면,
이혼한 정부인을 모셔와
조조 몰래 극진히 대우하였으며,
그리고 조조가 전쟁중 노획한 패물을 고르게 하면
매번 중간것을 골랐습니다.
조조가 그 까닭을 묻자,
"가장 좋은것을 고르면 탐욕스럽다 할것이고,
가장 나쁜것을 고르면
위선적이라 할 것이므로,
중간것을 골랐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조조가 위대한 것은,
사람을 평가할때 집안이나 학벌보다
능력을 우선시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본인의 결혼으로도
충분히 증명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조조가 위나라의 천자가 된것은,
이러한 현모양처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친구는
한계단 위의 사람과 사귀어야 하고,
마누라는
한계단 아래의 여자를 얻어야 한다" 라고 하는데,
조조는 자기보다
서너계단 위의 여자를 얻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