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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장 진 호
1.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는 설화(신화, 전설, 민담)의 한 갈래로, ‘제의(祭儀)의 구술적 상관물’이라 정의한다. 종교적 교리 및 의례에서 무조나 시조의 신성성을 언어로 진술하는 것이란 의미다.
이러한 성격의 신화가 오늘날에까지 전하여진 것으로는, 고조선·신라·고구려 및 가락의 건국신화와 각 성씨의 시조신화, 여러 마을의 수호신에 관한 마을신화, 그리고 무당사회에 전승된 무속신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네 묶음이 될 한국의 신화는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네 가닥 신화들은 창시자의 본풀이인 신화·전설 복합체라는 공통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본풀이란 근본내력에 관한 이야기풀이라는 뜻이다. 어떤 신격(神格)이 어떤 내력을 지니고 어떤 과정을 밟아서 신격을 향유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사설이 본풀이이다. 그것은 이야기로 진술된 신 또는 신령의 이력서이다. 따라서, 당연히 신 또는 신령의 전기(傳記) 내지 생애 이야기라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무속신화는 태어나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신격에 오르는 과정을 포함하는 일군의 신화이고, 건국신화는 애초부터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넘어선 과업을 성취하는 일군의 신화다. 그런데 본풀이란 용어가 주로 쓰이는 것은 무속신화에서다.
그리고 역사가 있기 이전의 신화로만 알려져 있는 시대를 신화시대라 한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신화성은 약화된다. 단군신화, 동명왕신화, 혁거세신화를 거쳐 고려의 작제건신화와 조선의 용비어천가가 그 과정을 잘 보여 준다.
또 신화는 탈신화화하여 역사화된 신화가 되어 간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홍익인간’이념, 박혁거세 신화에 보이는 ‘제세이화(濟世理化)’ 등의 이념을 담게 된 것은 그러한 예다.
2. 단군신화
단군신화는 『삼국유사』, 『제왕운기』, 『응제시주(應製詩註)』,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려 전하는데, 그 내용은 부분적으로 약간의 차이점을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고 되어 있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는 “내려가 인간이 되고 싶었다.”라 되어 있다. 또 유사와 『동국여지승람』에는 “웅녀가 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고자 해서 환웅이 인간으로 화하여 아이를 낳았다.”라 하였으나, 『제왕운기』와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여 사람이 되게 하여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위서(魏書)』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요[堯 (高)] 임금과 같은 시기다.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아버지가 이를 알고 세 봉우리의 태백산[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만 했다.[弘益人間]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神市/(神巿)]라 불렀다. 그가 바로 환웅천왕(桓雄天王)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목숨,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렸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서 살았는데, 둘은 환웅에게 늘 사람 되기를 기원[呪願]하였다. 때마침 환웅이 영험한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먹었다. 곰은 금기를 잘 지켜 21일[忌三七日] 만에 여자가 되었으나, 범은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결혼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매일 신단수(神壇樹) 아래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요임금[唐高]이 왕위에 오른 뒤 50년이 되는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로 옮기니, 그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불렀다. 그는 1500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당나라 『배구전(裵矩傳)』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고구려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었는데, 주나라에서 기자를 봉하면서 조선이라 하였다. 한(漢)나라가 이곳을 세 곳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이것이 현도, 낙랑, 대방이다.”
『통전(通典)』에도 역시 이런 말과 같다.(한서에는 진번, 임둔, 난랑, 현도의 네 군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세 군으로 되어 있고 그 이름도 같지 않으니 무슨 이유인가?)
3. 알아야 할 몇 가지
가. 단군신화는 일연이 지어낸 것일까
단군의 조선 건국을 최초로 기록하고 있는 책 이름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삼국유사』라고 답한다. 너무나 쉽고 상식적인 질문들이라는 듯이 그저 웃는 이도 더러 있다. 그러면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삼국유사 고조선 조 첫머리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위서(魏書)』에 이렇게 말하였다.
……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를 보면 단군의 건국 사실과 그 연대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 『위서』와 『고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연선사는 삼국유사를 지으면서 이 두 책에 실린 내용을 옮겨 적었을 뿐이다. 그러니 위의 문제에 대한 답 즉 단군의 조선 건국을 최초로 기록하고 있는 책 이름은 『위서』와 『고기』다. 위서는 중국의 역사책이고 고기는 우리나라 역사책이다.
위서는 위(魏)나라의 역사서다. 중국 역사상 ‘위’라는 나라는 여러 개 있었다. 전국시대 진(晋)나라의 대부 위사(魏斯)가 진나라를 삼분해 세운 왕조와 삼국시대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세운 왕조, 그리고 탁발규(拓跋珪)가 세운 왕조[後魏]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위서(魏書)』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환(魚豢)의 『위략(魏略)』, 왕침(王沈)의 『위서(魏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서 등 10 종이 있다. 이 가운데 현재 전하는 것은 왕침의 『위서』와 진수의 『삼국지』 위서뿐이다. 현전하는 이들 『위서』 가운데 단군의 고조선 건국에 관련된 기록을 전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위서』 가운데에는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위서 중 8 종이 전하지 않고 단지 2 종만 전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비록 전해져 오지 않지만, 단군의 고조선 건국 내용을 기재한 『위서』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고기(古記)』를 단순한 ‘옛날의 기록’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전대의 여러 사서를 인용했는데, 그 중에 『고기』가 등장한다. 즉 『고기』, 『해동고기』, 『삼한고기』, 『본국고기』, 『신라고기』 등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만약 『고기』가 책 이름이 아닌, 단순한 ‘옛 기록’의 뜻이었다면, 여타 『해동고기』, 『삼한고기』, 『본국고기』, 『신라고기』 등의 사서 이름과 나란히 함께 세워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까운 것은 『고기』를 비롯한 이러한 책들이 지금은 모두 전하지 않고 있다.
나.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 이름과 건국자
우리 민족이 최초로 세운 나라 이름과 건국주는 누구인가?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그가 바로 환웅천왕(桓雄天王)이다.
다음으로 『제왕운기』도 읽어보자.
환웅이 천부인 세 개를 받고 귀신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왔으니 이분을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한다.
이들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을 다스린 최초의 왕은 단군이 아니라 환웅이며, 최초의 나라 이름은 고조선이 아니라 신시(神市)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한 나라는 일찍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만큼 환웅천왕은 성스럽고 우리 민족 또한 위대하다. 이런 신성한 환웅천왕을 제쳐두고 단군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앞서 있는 환웅천왕을 놓아두고 뒤에 있는 단군을 국조로 받드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유구한 역사의 한 자락을 끌어내리는 것이 된다. 이웃 나라 일본은 아득한 옛날부터 없는 것도 만들어서 역사를 끌어올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우리는 엄연히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을 스스로 끌어내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단웅(檀雄)의 단(檀)은 뜻 그대로 우리말 ‘달’을 적은 것이다. 곧 ‘밝은 땅’이란 뜻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달’은 후대에 와서 ‘배달’이란 말이 되었다. 환웅(桓雄)의 환(桓)도 단(檀) 자와 같이 한자말 아닌 우리말을 나타낸 글자다. 곧 ‘환(桓)’ 은 말 그대로 ‘환’한 것을 나타내는 표기다. 밝은 것[檀]이 곧 환한[桓] 것이다. 그러니 단웅과 환웅은 같은 뜻이다.
다음으로 최초의 나라 이름인 신시(神市)에 대하여 살펴보자.
이를 논의하기에 앞서 밝혀 말할 것은 ‘신시’란 이름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정확한 이름은 ‘신불’이다.
이때까지 ‘신불’을 ‘신시’로 잘못 읽어 온 까닭은, 아마도 초기 학자들이 나라라고 하면 우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일차적인 요소이므로, 이에 유추되어 이 글자를 ‘저자 시’ 자로 읽은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목판본의 글자 모양을 보면 ‘저자 시’ 자가 아닌 ‘슬갑 불’ 자다.
그뿐만 아니라, 이 글자는 뜻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슬갑이란 바지 위에 늘어뜨려 무릎을 덮는 옷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은 고대의 예제(禮制)에서 천자, 제후들이 착용하던 옷이다. ‘슬갑 불’ 자는 그것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천자는 주색(朱色)의 슬갑을 하고, 제후는 적색(赤色)의 슬갑을 한다고 되어 있다. 슬갑을 옛적에는 ‘韍·紱(슬갑 불)’ 등의 글자로도 나타내었다. 어떻든 슬갑은 고대에 천자나 제후들이 입던 예복으로 신성한 것임엔 틀림없다. 이로 보아도 환웅천왕이 세운 최초의 우리나라 이름은 신시가 아니라, 신성성을 지닌 ‘신불(神巿)’임에 틀림없다.
요약해서 말하면,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 이름은 ‘신불’이고, 그것을 다스린 임금은 환웅천왕이시다.
다. 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
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고조선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게 과연 정답일까? 이와 관련하여 『삼국유사』 고조선 조를 다시 한 번 보자.
『위서(魏書)』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다.
이 기록을 보면 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은 고조선이 아니라 조선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왜 단군 관계의 글을 실으면서 글의 제목을 고조선(古朝鮮)이라 했을까?
이에 대한 연유를 『삼국유사』의 판본 간행에서 찾으려는 주장이 있다. 고려 때 지어진 『삼국유사』는 필사본으로 전해 오다가 조선 초기에 와서 비로소 목판본으로 인쇄되었는데, 이때 목판으로 새기면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이름인 조선과 옛날의 조선을 구분하기 위하여 ‘고(古)’ 자를 앞에 새겨 붙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속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일연의 주체사관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일연은 단군 신화의 말미에 기자 조선과 위만 조선에 대해 간단히 덧붙이고 있는데, 그는 이들 양 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단군이 세운 조선을 고조선이라 한 것 같다. 즉 중국인들과 관련 있는 기자·위만 조선보다 훨씬 앞선 옛날에 우리가 주체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음을 강조하여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기자와 위만이 세운 조선은 단군이 세운 조선을 계승한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고조선이라 적은 제목 바로 밑에 잇달아서 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 부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마치 이승휴가 『제왕운기』에서 단군 조선과 기자·위만 조선을 구분하여, 전자를 전기 조선이라 하고 후자를 후기 조선이라 한 것과 유사하다.
어떻든 단군이 세운 나라 이름은 고조선이 아니라 조선이다. 우리 선인들도 단군 조선을 조선이라 하였을 뿐, 고조선이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거서간 조에도 “일찍이 조선의 유민들이 이곳에 와서 산곡 간에 헤어져 여섯 촌락을 이루었다.”고 하였고, 제왕운기에도 “단군이 조선의 땅을 차지하여 왕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성계는 1392년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면서, 새로운 나라 이름을 정하기 위해 예문관 학사 한상질을 명나라로 보내어, 명나라 황제에게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가운데 하나를 새로운 국명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주원장은 “동이(東夷)의 이름은 오직 조선(朝鮮)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름다우며, 그것이 오래된 이름이니 이 명칭을 근본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명이 ‘조선이 오래된 이름’이니 그것을 사용하라고 한 의도는 기자 조선을 의식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논어에 등장하는 은나라의 현인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하여 백성을 교화시켰으며, 이에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했다는 한서의 내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새로 세운 조선이 자기네들의 제후국임을 넌지시 암시한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바를 요약하면, 단군이 세운 나라는 조선이고 고조선은 시대적 명칭이다.
라.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인가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한다. 또 곰 할머니의 자손이라고도 한다.
과연 이 말은 맞는 말일까? 그러면 단군 신화의 해당 부분을 다시 한 번 보자.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서 살았는데, 둘은 환웅에게 늘 사람 되기를 기원[呪願]하였다. 때마침 환웅이 영험한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이 기록을 보면, 단군이 탄생하기 전에 이미 이 땅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단군 출생 이전에 이미 환웅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목숨,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군 신화의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단군 신화는 천지가 창조되거나 개벽하는 것을 말한 창세 신화가 아니다. 건국 신화다. 곰 토템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건국 신화다. 단군은 환웅의 나라를 이어 받아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임금이지 천지를 창조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 중에는 단군의 자손도 있을 터이지만, 단군 탄생 이전부터 이미 이 땅에 살고 있으면서 단군을 왕으로 모시고 살았던,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의 자손이다.
사실은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 모두가 단군의 자손은 아니다.
마. 단군과 웅녀가 말해 주는 것
흔히들 단군은 실재(實在)한 인물이 아닌, 꾸며진 이야기 속의 가공적 인물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그리하여 한동안 우리의 국사 교과서에서도, 신화 속의 인물을 정사로 취급할 수 없다 하여, 단군 신화를 빼어 버리기까지 하였고, 지금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알고 있다.
단군은 과연 한낱 가공적 인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무릇 신화라는 것은, 어떤 위대한 인물이 실제로 존재할 경우에 이 인물을 신성시하고 숭상하기 위하여, 뒤에 덧붙여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실존 인물이 없이 황당무계한 신화가 먼저 생긴 뒤에, 부차적으로 어떤 인물이 기존의 이야기와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훌륭한 인물이 실재했을 때, 이를 신성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신이한 이야기가 첨가되고, 그의 일생이 윤색되어지는 것이 신화다.
그런데 신화에 나타나는 신이성의 요소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주인공들의 출생 과정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렇게 꾸며짐으로써 그 신화 속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이 아닌, 신성한 인물로 상승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천마가 내려다 준 알에서 태어났으며, 고구려 시조 동명왕은, 유화 부인의 몸에 햇빛이 비추어져 잉태하였고, 김수로왕, 김알지도 다 알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모두가 이들의 출생이 범상인과는 다른 난생임을 이야기하여, 그 신성성을 높이기 위한 사후의 부회다.
또 후백제의 견훤은 아버지가 지렁이였으며, 백제 무왕의 아버지는 연못의 용이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들도, 모두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또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나, 석가모니가 모후 마야 부인의 옆구리를 뚫고 나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고 한 것이나, 케사르가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나왔다는 이야기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가 비정상적인 출산이라는 과정을 제시함으로써, 신성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단군은 단군(檀君) 또는 단군(壇君)으로 문헌에 따라 그 표기가 약간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원래 한자어 아닌 순수한 우리말을 한자로 빌어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군의 어의(語義)는 알타이어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Tangry(터키어), Tengri, Tanggut(몽고어)에서 온 것으로, ‘하늘‧태양의 신’을 가리키는 칭호이다. 즉 단군은 고대의 제사의식을 관장하는, 신성한 자에게 붙이는 칭호였던 것이다.
일본은 저들의 신공 황후가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그야말로 허황된 고대 신화를, 자기들 좋은 대로 해석하여 정사로 굳히고 있으면서, 우리의 단군은 단순한 가공인물로 처리하였고, 게다가 단군에 관한 기록 20만여 점을 모아 불태우기까지 하면서, 단군의 실재를 까뭉개려 하였다.
여성의 창조에 얽힌 신화는 대체로 여성에 대해 부정적이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이브는, 남성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어 만들었다고 되어 있고, 뱀의 유혹을 받아 따먹지 말라고 했던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원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나와 있다.
인도의 신화에도 최초의 여성은 더위의 괴로움을 안겨 주는 태양신으로 묘사되어 있고, 불교의 극락세계에는 아예 여자가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판도라도, 열지 말라고 했던 약속을 참지 못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봄으로써, 인류의 갖가지 불행과 질병을 가져다 준 장본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단군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웅녀는 어떠한가?
맛이 쓰디쓴 쑥과 매운 마늘을 먹어 가며, 어두운 동굴 속에서 21일 동안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어 내고, 사람으로 화하여 단군이란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한다. 우리의 웅녀는 이브나 판도라처럼 인내력이 약한 연약한 여성이 아니다. 고난을 이겨 내고 신의를 끝까지 지키는 굳건함을 보여 주는 여인이다.
외국의 한 유명한 스포츠 트레이너는 한국 여자 선수의 우수성에 대해 말하기를, ‘한국 여성은 여느 외국의 여성들과는 달리 감독의 하드 트레이닝을 순종하며 잘 받아들이는 미덕이 있다’고 평하였다. 이러한 것 역시 웅녀의 유전자를 받은 것이다.
첫댓글 근거를 들어 새로운 사실을 설명해 주시니, 다 옳게 들립니다.
그런데,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교육부에서 나온 교사용지도서에 '설화'='신화+전설+민담'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차이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설화의 세 가지 하위 개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신화~주인공은 신이며, 이 세상 우주 만물 즉 해 달 별 등 거창한 것들
전설~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주인공은 비극적 생애를 맞이하며, 증거물은 실존한다,(백마강의 조룡대라는 바위에 있는 쇠사슬 자국)
민담~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자연물들.
예 그렇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