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산산맥 天山山脈
일천 개의 바람 중에 한 바람만 뵈올 수 있다면 백만 개의 저 침묵 중에 부디 한 침묵만 만나뵐 수 있다면 무량겁無量劫 저 눈송이 중에 한 송이만 내 가슴속에 모실 수만 있다면 엄지로 하늘을 다스리고 검지로 땅을 다스리시는 이여 단 한 번 손뼉을 쳐서 별을 불러내어 그 중에 고요한 별 하나에 내 입술이 닿을 수만 있다면
|
69. 천산天山을 날다
오시 공항까지는 약 삼십 분 거리
오후 여섯 시 오 분
비슈케크 행 비행기는 정시에 오시 공항을 이륙한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Bishkek까지는
대략 사십오 분 소요되는 거리
오시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우리가 탄 비행기는 천산산맥을 넘는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한 ‘하늘산’을 넘는다
일천 개의 산이 모여들고
백만 개의 산이 모여들어 바다를 이룬 산맥
태초에 하늘에 계시다가
지금은 땅에 내린
저 눈부신 ‘하늘산’을 내가 넘는다
오, 거룩한 천산이시여
꿈에 뵈오니 신이더니
눈뜨고 뵈오니 백설이었네
서서 우러르니 ‘큰눈大雪’이더니
앉아 뵈오니 ‘큰바람大風’이었네
산 중의 산인 천산이시여
일억만 개의 하늘산이시여
무량의 산이 모여
오늘은 빛이 되신 님이시여
신성한 새벽을 내 가슴에 모아
빛의 이름으로 경배하나이다
우리가 일어설지니
우리가 언제나 빛을 향해 일어설지니
천산이여
나의 빛이시여
님이 나를 부르시니
내가 님을 뵈옵니다
여기 누워 한 호흡으로 천지를 다스리시니
해와 달과 별을 운행하시니
그 태초는 창공이시었고
지금은 빛으로 계시나이다
님이여, 뿌리는 땅에 두시고
머리는 별에 두시고
가슴은 사람 앞에 두시는 이여
오, 무량겁 사랑이시여
내게 차마 얼굴을 보여주신 사랑이시여
빛이 몸을 입어 땅에 내리신 대령大靈이시여
님이 사랑이시니
나 또한 사랑이나이다
신성이 곧 님의 이마이시며
숭고함이 님의 눈썹이시며
전능이 님의 눈빛이시니
나로 하여 님의 옷자락을 받들게 합소서
하늘과 땅과 님의 가슴에
나의 시를 바치오니
내 시의 글자 하나마다
무량의 백설이 되어
님의 하늘 위를 흩날리게 합소서
희디흰 나의 문장을 둘 곳이 없으면
님의 창공을 날아오르는 별이 되게 합소서
나의 노래와
나의 몸짓과
내 가슴속의 빛이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져내려
희디흰 별이 되게 합소서
천산이시여
영원의 노래여
마지막 내 가슴에 담을 크나큰 말씀이시여
불멸의 음성이시여
님의 음성 중에 하나만을 내게 주시어
나의 시가 눈발이 되어 온 땅을 덮게 하소서
천산산맥 -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의
4개국에 걸쳐 있는 산맥
동서의 길이 이천오백 킬로미터
남북의 길이 삼백 킬로미터
산맥의 장강을 이룬 신성한 동토여
천산은 방금도 등 뒤에 계시는데
어느덧 눈앞에 나타난 키르기스스탄의
녹색 농경지들 꿈결 같다
낙원은 가끔은 백설이었다가
더러는 초원이었다가
또 더러는 산자락 끝에서 농경지였다
풀잎 하나마다
나의 시요 노래요 가슴이었다
나의 여행은 이로써 완성되었다
오랜 방황이 비로소 집을 지었다
남은 생은 오직 휴식일 뿐
고요히 앉아 별의 이름을 물어보고
풀잎들의 고향을 물어보고
절망과 희망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다시는 묻지 않으리라
오후 여섯 시 오십 분
‘마나스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비슈케크 국제공항’으로 불리었으되
지금은 ‘마나스 국제공항’
‘마나스 Manas’ -
키르기스스탄의 저 위대한 대서사시이자
대서사시의 주인공의 이름
장강 같은 구전口傳의 대하大河여
오십만 행의 대하로도 모자라
입에서 입으로 지금껏 전해 오는 이야기
저 위대한 영웅의 이름을 따서
공항의 이름도 바꾼 것
마나스의 이름 위로 밤이 내린다
천산의 가슴 위로 별이 쏟아진다
천산을 뵈옵는다
이로써 나의 여행은 완성되었다
일천 개의 겨울이
일천 개의 빛으로 날아오른다
이로써 내 영혼은 목마르지 않다
무량의 눈송이들
무량으로 떠돈다
이로써 내 가슴속엔
고요한 침묵 하나 떠돈다
나는 어디로 손을 뻗쳐야 산에 닿을까
나는 어디로 솟아올라야
저 희디흰 하늘바다에 가서 입을 맞출까
아, 백만 개의 산이 솟아올라
하나로 가고 있다
무량의 하늘이 한데 모여
말씀이 되어 흐르고 있다
이전에 없던 세상 하나 여기 태어나
침묵으로 앉아 계시어
별들의 가슴 쪽으로
끝없이 흐르고 있다
(이어짐)
첫댓글 별빛이 찬란한 고요한 중앙아시아 밤 속으로 같이 걸어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