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함기구(三緘其口)
세 번 입을 봉하다
우리는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 얽혀 때로 기뻐하고 때로 분노하며, 또 때로 슬퍼하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간다.
이 모든 인간관계의 그물망을 타고 말이 흘러 다닌다.
말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도 주지만, 분노와 슬픔 역시 떠안긴다.
그래서 말을 잘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행복한 삶에 불가결한 요소다.
사마천은 《사기》〈상군열전(商君列傳)〉에서 말을 이렇게 분류했다.
말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언(貌言)이니 꽃이요,
둘째는 지언(至言)이니 열매요,
셋째는 고언(苦言)이니 藥이요,
넷째는 감언(甘言)이니 病이다.
모언은 모양만 화려할 뿐 실속이 없는 말이고,
지언은 속이 꽉 찬 진실한 말이다.
고언은 비록 듣기에는 거북한 직언이지만 약이 되는 말이고,
감언은 듣기에는 편하지만 끝내 그 말을 듣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 말이다.
세상의 무수한 말은 대개 이 네 종류에 속하고
우리의 언어 생활도 이 네 가지 말 사이를 무수히 오간다.
당연히 우리는 모언과 감언을 경계하고 지언과 고언을 지향해야 한다.
<세 번 입을 봉하다>
공자가 젊은 시절 周나라로 가서 禮를 배울 때의 일이다.
어느 날 周 天子가 제사를 지내는 태묘를 방문했는데, 태묘의 오른쪽 계단 앞에 이르자 특별한 동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동상의 입은 종이로 봉인한 상태였고, 그것도 세 번이나 봉인을 했다.
공자는 이것을 태묘에서는 절대 떠들지 말라는 권고로 생각했다.
그런데 동상 뒤쪽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사람은 옛날, 말을 가장 조심스럽게 한 사람이다."
공자는 이 동상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훗날 공자의 言行을 전하는 《논어》에는
말을 삼갈 것을 강조한 공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군자는 말은 신중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거나, "그럴듯한 말과 꾸미는 얼굴색에는 인(仁)이 적다" 같은 구절은 모두 말을 삼갈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다.
입을 세 번이나 봉한 태묘의 동상에서 받은 강한 인상이 공자에게 평생의 교훈으로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비롯된 사자성어가
'세 번 입을 봉하다'라는 뜻의 '삼함기구'다.
여기에는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어 '함구'가 들어있는데,
成語 자체도 신중하고 사려 깊은 언어생활을 요구하는 의미다. 사람들 간의 분란은 대개 사려 깊지 않게 함부로 내뱉은 말에서 비롯된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무절제하게 토해낸 칼날 같은 말에 세상은 늘 상처를 입고 신음한다.
'삼함기구'의 정신이 지금 소중한 이유다.
<치명적인 약점>
《삼국지》의 영웅 제갈량에게는 재주가 뛰어난 마속(馬謖)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마속은 촉한의 시중을 지낸 마량의 동생으로 견식이 넓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특히 병법에 능통하고 언변이 출중하였다. 제갈량이 남쪽 지역을 정벌할 때 마속이 제시한 계책으로 큰 성공을 거둔 터라 제갈량은 그를 상당히 신임했다.
그런 마속에게도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는 허풍이 심했고 자주 과장을 했으며, 항시 말이 너무 앞섰다. 그의 이러한 약점을 유비는 잘 알고 있었다.
유비가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敗하고 백제성에서 병을 얻어
죽게 되었을 때 제갈량에게 당부했다.
"마속은 말이 실제에서 과하게 벗어나니, 나라의 큰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
승상은 이 점을 잘 살펴주기 바라오."
유비가 죽은 뒤 제갈량은 유비의 유촉을 받들어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좌하며 나라를 잘 다스렸다. 그러나 유비의 경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마속을 깊이 신임해 일을 맡겼다.
기원전 228년 제갈량은 위나라와 전쟁을 치르고자 북으로 출정하면서, 마속을 선봉장에 임명하고 가정(街亭)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의 방어를 맡겼다.
이때 제갈량은 산을 등지고 물이 가까운 곳에 진을 치되,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하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당부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물가를 떠나 산 위에 진을 쳤다. 이러한 진법의 약점을 파악한 위나라 군대가 가정을 포위하자, 산 위에 있는 마속의 군대는 물도 식량도 구하지 못해 큰 혼란에 빠졌다. 이를 틈 타 위나라 군대는 공격을 퍼부었고, 마속의 군대는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대패해 요충지 가정을 빼앗겼다.
이 때문에 제갈량의 북벌계획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후방으로 물러난 제갈량은 패배의 책임을 물어, 그토록 아끼던 마속을 죽였다.
여기서 나온 成語가 '울면서 마속을 베다' 라는 뜻의 '음참마속(泣斬馬謖)'이다.
그리고 읍참마속과 함께 전해지는 成語가 '실제보다 훨씬 말을 부풀려 허풍을 떤다'는 의미의 '언과기실(言過其實)'이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당부한 것처럼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말이 과하게 앞서는 사람에게는 큰일을 맡기면 안 된다.
'언과기실'은 그만큼 치명적인 약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