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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신앙을 버리자
성경본문 : 이사야 65: 1-7
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4.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5.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6.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찌라
7.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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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와 사랑하는 다운교회 성도들의 기도로, 이번에 신약 성지순례를 잘 하고 왔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강하게 느낀 것은, 교회 사명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방문한 터키는, 박해를 피해 '흩어진( ) 나그네'(벧전1:1)들이, 믿음의 씨를 뿌렸고, 교회 전성시대를 이루었던 곳이다. 특별히 갑바도기아 지역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한 안디옥 교회가 있었고(행13:1),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7교회가 있던 곳이다. 또한 초기 종교회의가 일어났던 곳이며, 기독교가 공인된 후로는, 로마의 수도를 옮겨와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유산을 지키지 못하고, 지금은 유적(遺蹟)만 가득한 황폐한 곳이 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핍박을 받았을 때의 그리스도인들은, 진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특권이 되자, 모양만 갖췄다.
신앙의 간판만 있으면, 제국의 가장 훌륭하고 높은 지위와,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개종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높은 지위를 얻고 출세를 원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보다는, 빵에 관심을 가졌다. 간판 신앙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큰 율법 중 하나는, 가장 잘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이다.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22:26).
주안에서 높아지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본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大) 도시의
목회자들이, 보다 작은 지역의 목회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로마, 고린도, 안디옥, 에베소,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목회자들은,
스스로 가장 높은 권위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대감독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교회들 위에 군림하여 최고의 권위를 행사하였다.
이러한 대감독들 사이에서도, 서로 더 높아지려는 싸움이 전개되었다.
로마의 감독은,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으로 25년이나 지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내고, 스스로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선언하였고, 후에 교황으로 바꿨다.
권위을 보이려고, 교회들은 많은 돈을 들여, 대리석으로 화려한 건물을 짓는데 신경을 썼다.
목사님들은 화려하고 값비싼 옷차림을 하고, 예배에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고, 곁길로 가고 있었다.
어느 집사님이, 자기 교회에 100억 이상의 돈이 있음을, 우리 집사님에게 자랑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랑할 문제가 아니라, 회개할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를 통곡하여 울어야할 문제다.
타락의 공식, 썩음의 공식이 있다. 축복 + 시간 - 사명 없음 = 타락이다.
하나님이 많은 축복도 주셨고, 시간도 있는데, 사명이 없으면 반드시 타락해서 썩게 된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다.
(1) 그러면 무엇이 사명인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 부담감은 사명이다.
어떤 사람은 더러운 것을 보기만 하면,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청소를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왜 이렇게 더러운가?, 왜 청소하지 않는가?' 말하지 말고, 그것을 치워라.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다.
혹자는 장애인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반드시 도와 주어야 한다.
업어서 옮겨주든지, 돈을 내서 잘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주던지, 도와 준다. 이 부담감이 사명이다.
교회의 빈자리를 보면 가슴이 아픈가?
바로 그런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전도의 사명과 은사를 주셨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된다.
② 고통은 사명이다.
상처를 입은 자만이, 훌륭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사53:4,5).
예수님은 자기 몸이 찢기심으로, 건강과 해방, 그리고 생명의 길이 친히 되어 주셨다.
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시는가?
그 고통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섬기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입었다면, 고통을 당했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
홀로 된 사람에게 최고의 위로자는, 먼저 홀로된 고통을 가진 사람이다.
병을 알았던 사람이, 가장 훌륭한 위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고통을,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명으로 삼기 바란다.
③ 축복은 사명이다.
우리에게는 남들보다 더 가진 축복이, 무엇인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진 지식, 재물, 건강, 이 모든 것은 사명이다.
불신자들은 더 가진 축복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받은 축복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으로 여긴다.
어린 아기는 힘이 없고, 어머니는 강한 자이기에, 어머니가 아이를 섬긴다.
그러나 아기가 장년이 되고, 어머니가 나이 많아 늙게 되면, 아이가 어머니를 섬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많은 돈을 벌었는가? 그 돈으로 많은 사람을 섬겨라. 그것이 사명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가? 한탕 해먹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그 높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되라.
많은 축복을 주님으로부터 받아라. 그리고 축복의 근원이 되자.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많은 재능을 소유했는가? 그 재능으로 약한 자를 섬겨라. 그것이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다.
변질되면 섬길 수 없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한다.
(2) 잘못된 이스라엘
창12:3의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하신 말씀을 잃어버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자랑하고 즐기려고만 했지, 섬기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이다.
축복에는 사명이 있다. 감당하지 못하면 썩기에, 축복을 올바로 사명하지 못하면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축복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 부패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해,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을 부르시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사65:1).
이들은 많은 축복을 받았지만, 자신만 알고, 크게 부르짖어 기도하거나, 예배에 참석만 하면 되는, 종교적 외식주의에 빠졌다. 그래서 복음이 이방으로 전파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이 사람은 '목사님, 장로님' 하며 신급을 따지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만 믿으면서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자를 찾으신다.
2. 하나님은 타락한 자들을 책망하시며, 돌아오기를 원하신다(2).
하나님은 사명을 잃고 타락한 자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라고 불러 주신다.
‘패역하다’( )는 말은, "외면하다, 다루기가 어렵다, 다시 타락하다, 반역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옳은 줄 알면서도 외면하고, 다시 타락하는 것이 패역이다.
(1) 패역한 이유(2)
① 자기의 생각을 좇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좇아…"
우리의 생각은, 마귀에게 미혹을 당해, 타락했다. 그래서 더럽고 교만하다.
그래서 몸만 사람이지, 생각과 행동은 짐승만도 못한 때가 있다.
이렇게 짐승만도 못한 인생이 자기의 생각을 고집한다. 그러니까 망하게 된다.
② 불선한 일이 재미있다(2) : "…불선한 길을 행하는…"
선한 일이 재미있고 악한 일은 재미없어야 하는데, 악한 일은 재미있고 선한 일은 재미없다.
공부를 하면 졸음이 오는데, 오락을 하면 며칠 밤도 거뜬히 세운다.
남을 헐뜯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기도하라고 하면 시간이 너무 안 간다.
영화를 봐도, 개임을 해도,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영화가 더 재미있다.
가난한 사람 구제하려면, 단돈 돈 천 원이 아까운데, 술값으로는 몇 십 만원도 아깝지 않다.
남이 잘되면 기뻐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남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 통쾌하다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축복을 잘 사용해야 하는데, 오히려 없는 자를 무시한다.
범죄 했을 때, 깨달으면 회개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 앞에서, 체면 세워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그럴 듯하게 외식한다.
(2) 패역한 자들의 행동(3-5).
① 우상숭배를 했다(3,4).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고, 미신에 이끌려 산신령에게 제사하고(3), 죽은 자의 영혼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교제를 하고, 음란한 행위를 했다는 말이다(4).
② 교만했다(5).
종교적 권리를 한 손에 쥐고 외식하면서, 무식한 백성을 속이고 멸시했다.
너 같이 불의한 자가 감히 어디라고 내게 오느냐며,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티만 보았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5)하셨다.
'내 코( , 분노)의 연기'는, 하나님의 분노를 말한다.
(3) 패역의 결과(6-7). "너희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7)
주님은 패역한 백성에게 죄를 지적했지만, 회개하지 않으니, 심판하시겠다는 무서운 경고를 하신다.
깨닫지 못할 때는 몽둥이가 약이다. 하나님께서 몽둥이를 드시면 피할 사람이 없고, 견딜 수 없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형식만 갖춘 신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찾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간판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
결론적으로 망하지 않으려면, 간판 신앙, 껍데기 신앙을 버려야 한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 성지 순례를 하면서 깨달은 것과, 연결해서 말씀드리겠다.
① (1) 사명을 잘 감당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지배하라고 주셨지, 섬기라고 주시지 않았다.
성도는 물질에 지배받는 자가 아니라, 물질을 잘 사용하는 자이다.
물질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물질을 섬기는 사람이다. 타락한 성도다.
많은 성도와 교회가, 물질을 쓰지 못하고 쌓아두기 때문에 넘어진다. 물질은 쌓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먼저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물질의 축복을 구하라.
② 교육
우리는 하나님만 예배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대가 타락하면, 예배드려야 할 하나님은 무시하고, 대용품(천사, 성인, 의식)이 발달한다.
회칠한 무덤 같은 정교회와 카톨릭은, 껍데기만 남았다.
그래서 수많은 성인들을 섬기고 있다.
로마의 황제들 밑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던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들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읽고 또 읽었다. 이것은 매우 유익했다.
그 후에 이러한 영웅들의 무덤을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고, 추도예배를 드렸으며, 그들의 이름을 따라 교회의 이름을 지었다. 또한 죽은 성자의 혼을 불러내기도 했다.
순교자만 아니라, 유명한 감독들까지도 우상이 되어, 가정과 교회 안에 우상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여, 성경 내용과 위배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므로, 성경을 잘 배우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자.
③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께 순종하자.
형식만 갖춘 사람, 간판신앙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 하지 않는다.
간판신앙을 버리고, 성령에 순종하자. 신앙은 연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믿어야 한다.
성령에 순종하면, 2가지로 나타난다.
인격적인 충만함과, 사역적인 충만함이 나타난다.
인격이 변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악한 사회가 되고, 사랑이 흘러 넘치면 건전한 사회가 된다.
자신만 아는 악한 사람은, 교만하고, 또한 협력할 줄 모른다.
사랑의 인격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하나됨이 있고, 겸손함과 주를 향한 예배가 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