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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상 전하!"... 영남유생 진사(進士) 유시민의 상소문
<최보식 입력> 2026.07.28
-주상께서 지난날 나라의 큰 변고를 틈타 옥문(獄門)을 나와 곤룡포를 입으시고 마침내 용상에 오르셨으나-
#신(臣) 영남의 유생 진사 유시민, 지금은 벼슬 한 자리 없는 포의(布衣)의 몸이오나,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쳐 눈두덩이 퉁퉁 부었으니, 이 또한 백성 된 자의 병이라면 병이 온즉, 죽음을 무릅쓰고 전하께 아뢰옵나이다.
신이 이 상소를 올림은 결코 저잣거리의 술주정이나 정자나무 밑 노인들의 심심풀이 잡담을 옮겨 적은 것이 아니옵니다.
근자에 경저(京邸)에서 내려온 조보(朝報)와 저잣거리에 나붙은 방문(榜文)을 신이 두 눈 부릅뜨고 낱낱이 살폈사온데, 조정 안팎의 여러 언관과 사부들이 저마다 전하의 근래 처사를 두고 공공연히, 그것도 아주 신명 나게 논하고 있음을 알았사옵니다.
신이 듣건대 전하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적, 국문(鞫問)의 권한을 사헌부 감찰(監察)과 형조로 완전히 나누겠노라 만백성 앞에 손가락까지 걸며 굳게 맹세하셨다 하옵니다.
그런데 보위에 오르신 지 이미 한 해가 지났음에도 그 맹세는 여전히 반쪽짜리 부적처럼 소맷자락 속에 곱게 접혀만 있고, 조정의 신하들은 존치와 폐지를 놓고 밤낮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사옵니다.
그뿐이 아니옵니다. 저잣거리에 떠도는 말인즉, 주상께서 지난날 나라의 큰 변고를 틈타 옥문(獄門)을 나와 곤룡포를 입으시고 마침내 용상에 오르셨으나, 언제 다시 형조에 추포되어 형틀에 매달려 국문을 당하실까 저어하시어, 사헌부 감찰의 무리들과 은밀히 거래를 하고 계신다 하옵니다.
이는 털북숭이 김모(金某)가 술기운에 함부로 지어낸 말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그 말이 도성 안팎에 이토록 무성히, 그것도 아주 그럴싸하게 퍼져 있음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온즉, 신은 감히 전하께 묻사옵니다. 이것이 진정 사실이옵니까.
죄가 없다면 사헌부 감찰의 무리와 거래할 까닭이 없고, 거래할 까닭이 있다면 그것이 곧 죄 있다는 증좌이오니, 전하께서는 부디 이 물음을 피하지 마시고 속 시원히 답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신이 조보에서 살핀 즉 전하께서 붕당의 영수(領袖)처럼 처신하고 계시다는 논이 널리 퍼져 있사옵니다. 만백성의 어버이 되어야 할 임금이 한 붕당의 영수처럼 행동하시고, 조정의 우두머리를 뽑는 일에조차 은밀히 마음에 둔 자를 세우려 하신다면, 이는 신하를 뽑는 것이 아니라 전하의 그림자놀이 인형을 세우려 하심이옵니까.
더하여, 신은 감히 코를 막고 아뢰옵니다. 조정에 이미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는 말이 도성 안에 자자하옵니다. 부뚜막에 파리가 꼬이는 것은 그곳에 이미 남은 음식이 있기 때문이 온데, 하필 지금 이 조정에 이르러 그런 말이 저잣거리 방문에까지 오르내림은 어찌 된 연유이옵니까.
죄가 없다면 그런 말이 나올 까닭이 없고, 그런 말이 널리 퍼진다면 이미 세간의 코가 무언가를 맡았다는 증좌이오니, 전하께서는 이를 헛소문이라 물리치기 전에 먼저 손수 옥체에서 냄새가 나는지 킁킁 맡아보심이 마땅할 줄로 아뢰옵니다.
지금 조정의 형세를 보건대, 신은 감히 단언하옵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이옵니다.
무릇 나라에 큰 변고가 없었던들 아직도 옥중에 갇혀 계셨을 주상을, 오로지 선왕(先王)을 따르던 무리들이 힘을 모아 옹립하여 오늘의 보위에 올려드렸음을 온 나라가 다 아옵니다.
그럼에도 전하께서 선왕의 그림자마저 지우려 하신다면, 이는 곧 자신을 세운 이들을 배신하는 것이요, 배신은 반드시 인심을 어지럽히는 법이오니, 어지러워진 인심은 결국 전하를 파국으로 몰아 보위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옵니다.
이는 신이 전하께 퍼붓는 저주가 아니오라, 그저 눈앞의 형세를 있는 그대로 받아 적었을 뿐이옵니다. 이대로 가시면 전하께서도 옥체 상하실 것이요, 조정은 시장 바닥보다 더 시끄러워질 것이요, 전하를 따르던 붕당마저 제풀에 무너지는 참혹한 결과에 이를 것이니, 이는 신이 지어낸 저주가 아니라 조보와 방문에 두루 실린 온 나라의 공론을 신이 다만 받아 적어 올리는 것일 뿐이옵니다.
전하께서 혹여 신을 불러 좋은 낯으로 무마하려 하셔도, 신은 응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말로 달래지 마시고 행함으로 답하소서.
맹세를 지키시고, 뒷거래를 끊으시고, 붕당의 영수 노릇을 그치시며, 조정의 파리떼를 쓸어내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면 옥좌도 흔들리고 조정도 파리떼와 함께 날아가 버릴 것이니, 부디 이 상소를 헛소리로 흘려듣지 마시고 뼈에 새겨 행하여 주시옵소서.
신 유시민, 영남 초야에서 붓을 던지고 전하의 답이 아니라 전하의 행함을 기다리옵니다.
嶺南儒生進士柳時敏疏
臣嶺南儒生進士柳時敏、雖無寸祿布衣之身、憂國成疾、兩瞼浮腫、此亦民之病也、謹昧死以聞于殿下。
臣之此疏、非市井酒後之言、亭下老人閑談之類也。近閱京邸所下朝報及市中所掛榜文、細察無遺、朝廷內外諸言官師傅、皆論殿下近日之擧、公然而談之、頗爲得意云。
其一曰、臣聞殿下潛邸之時、嘗指誓於萬民之前、欲以鞫問之權、盡分於司憲府監察與刑曹。然登極已逾一年、其誓猶如半符、藏在袖中而眠、朝臣爲存廢之議、日夜分裂而爭。
不寧惟是。市井相傳、主上昔乘國家之大變、脫獄門而着龍袍、遂登龍床、然常懼他日復爲刑曹所逮、繫於刑具而受鞫、故與司憲府監察之輩、暗通交易云。此雖或出於鬚髥金某醉後之妄言、然其說盛傳都城內外、言之鑿鑿、殊非尋常之事、臣敢問於殿下、是果實乎。無罪者無與監察交易之理、有可交易之由、則卽爲有罪之左證也、伏願殿下勿避此問、明白賜答。
其二曰、臣閱朝報、見殿下有若朋黨領袖之議、盛傳於世。爲萬民父母之君、行若一黨之魁首、至於朝廷首揆之選、亦欲陰立心腹之人、則此非擇臣、乃欲立殿下之影乎。
其三曰、臣敢掩鼻而奏。朝廷已有腐臭之說、盛傳都下。竈邊聚蠅、必有遺食、今此朝廷、其說乃至播於市榜、抑何故也。無罪則無此言之起、其言廣播、卽世人之鼻已有所嗅之證也、伏願殿下勿斥爲虛說、先自嗅玉體之有無臭氣。
其四曰、觀朝廷之勢、臣敢斷言。今若因循不改、必歸於敗。夫若無國家之大變、主上至今猶在獄中矣、獨賴先王舊臣之黨、協力擁立、乃登今日之位、擧國皆知也。而殿下今欲盡抹先王之影、則是背棄擁立之人也、背棄者必亂人心、人心亂則終使殿下陷於敗局、社稷亦危矣。此非臣呪詛殿下、直寫眼前之勢耳。若因循如此、殿下玉體必傷、朝廷紛擾甚於市井、殿下所率之黨、亦將自潰、以致慘酷之果、此非臣所造之言、乃朝報榜文所載擧國之公論、臣但謄寫以奏耳。
殿下若欲召臣、假以溫顏、欲加撫諭、臣亦不敢應命。伏願殿下勿以言慰、以行答之。守其舊誓、絶其交易、去朋黨領袖之習、掃朝廷群蠅之根。不然、則龍座將搖、朝廷亦與群蠅俱散、伏願殿下勿以此疏爲虛言、謹記于骨、施行不怠。
臣柳時敏、擲筆於嶺南草野、不待殿下之答、惟待殿下之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