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인열전 18]이득신동문(18회, 365홈케어팀장)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아, 진심으로 사랑한다”
가정의 달, 5월 11일은 무슨 날일까요?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실 것입니다. 바로‘입양入養의 날’입니다. 입양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겠지요? 그럼 파양破養은요? 입양을 했는데 무슨 이유로든 취소나 포기를 한 경우겠지요. 약혼約婚한 후 파혼破婚하는 것처럼요. 여기에서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한 지붕 한 가족’이 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을까요?
결혼하면 가족이 되겠지요. 다음에 출산을 하면 가족이 되고,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바로 ??을 하면 가족이 되는 것이지요.
‘공개??’과 ‘비밀??’이 어떻게 다른 줄은 아시나요?
오늘 만나는 동문은 바로 이 세 번째 방법으로 한 가족을 이루며 인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18회 이득신李得新 동문인데, 삼성관계사 ‘365홈케어’에서 마케팅전략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건강검진 등 상담을 해주는 회사랍니다. 그는 남원 용성중 출신으로 원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그룹 공채 36기로 입사, 삼성생명 교육팀에서 일하는 등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답니다. 전주가 고향인 황광이씨를 만나 1996년 결혼, 2000년 아들 성빈이를 낳았지요, 지인 몇 명과 고객관리 솔루션회사를 차려 사업이 막 일어설 무렵, 재무를 맡은 동료가 자금을 몽땅 챙겨 야반도주를 했으니 사람을 믿어도 정말 잘못 믿은 것이지요. 파산 후유증과 인간적인 배신감의 수렁에서 몇 년 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으나, 가족들의 사랑의 힘으로 가까스로 그 역경을 이겨냈답니다. 다행히 회사를 차린 전직장 상사의 같이 일하자는 제의로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도 할 수 있었구요.
그 시절 힘든 고통 속에서 결심한 것이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가족을 이루자’는 것이었답니다. 그것이 입양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 헤어진 아이들에 대해 눈을 뜨면서 나라도 사랑으로 실천해보자는 것이었지요. 이동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연애시절에도 “한 아이는 낳고 한 아이는 입양하겠다”고 했다니까 무의식중에도 그런 ‘고귀한 철학’이 있었던 듯합니다. 뜻은 공감하지만 자신이 없다는 아내를 5년여 동안 설득했답니다. 아내는 결국 얼마든지 생산生産할 수 있는데도 굳이 입양을 고집하는 남편의 ‘거룩한 뜻’에 따르기로 했답니다. 입양을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편견 때문이 아니라 입양아를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답니다. “가짜 손주는 싫다. 용압할 수 없다”는 양가 어른들의 반대도 뚝심으로 버텨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2007년 5월 4일 생후 80일된 사내아이를 받아드렸습니다. 성빈이 동생 성주가 그 아이입니다. 성주의 입양생일은 5월 4일입니다. 여덟살 성빈이는 동생이 오던 날 “어린이날 가장 큰 선물로 동생을 받았다”고 일기장에 썼다는군요. ‘가슴으로 낳은 아들딸’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우리 주위에 그런 동문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는 갓난 아기때부터 입양됐다는 것을 주지시켰답니다. 이것이 공개입양입니다. 출생의 비밀을 쉬쉬하고 있다가 사춘기나 청소년시절에 알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방황하거나 잘못된 길로 가기 쉽다는 것이 이동문의 지론이었습니다.
아이는 ‘가슴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이제 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엄마아빠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쓴 유치원카드를 선물받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며 스마트폰으로 찍은 카드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들 자랑도 정말 특이한 케이스이지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부는 지난 6월초 다시 일곱 살 딸아이를 받아드렸답니다. 나도 모르게 “오 마이 갓”이 절로 나왔습니다. 자기집도 아니고 23평 아파트에서 보나마나 빠듯한 살림살이일 터이고, 아이엄마도 전업주부인데, 이 ‘노릇’을 어찌할까요? 대체 무슨 신념이 이런 ‘무모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 동문의 얼굴은 마음이 맑아서인지 한결 밝아보였습니다. 그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내하고도 그런 문제로 말다툼해본 적이 없다는군요.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따로 없습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예진(가명)입니다. 굳이 가명으로 표현한 이유는 아이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진짜가족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절차 때문이라고 합니다. 호적에 올라 있는 아이를 입양하면 법률적으로도 상당히 복잡하답니다. 친부모의 친권이 포기돼야 하고, 호적을 바꾸기까지 3단계의 소송절차를 거치려면 보통 서너 개월이 걸린답니다. 그래도 그들은 묵묵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둘이 아니고 셋이면 더욱 좋다는 것이 이동문의 생각입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자기 이름처럼 ‘자꾸 새로운新 아이들을 얻으면得’ 기쁨이 두 배, 세 배가 된다는 ‘특이한 성품’의 소유자이더군요. 형편과 환경만 허락된다면 ‘그룹 홈’(5∼1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럽형 가정보호식 아동보호시설)이 목표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누군들 자기 자식이 ‘바른 사람’이 되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동문의 소망은 더욱 특별합니다. 서로 배가 다른 아이들이 친형제자매처럼 자라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어떤 편견도 갖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며 군림하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답니다. 입양부모들은 보통의 부모보다 더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군요. 그래서 만든 것이 ‘한국입양홍보회’인데 사회적으로 입양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의 하나랍니다. 다달이 만나 서로의 고충츨 이야기하며 자기들이 더욱 정신적으로 성숙돼 가는 것을 느낀다는 이동문은 그 단체에서 참여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모든 아동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지속적으로 받을 권리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가 입양아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배려를 해줘야 한다”고 역설하는 그는 ‘머리 검은 짐승은 기르는 게 아니다’ ‘커서 자기 부모를 찾아갈 것이다’ ‘기른 공을 모르는 게 사람이다’ ‘상처를 갖고 자라나 잘못된 길로 빠질 것이다’는 등의 사회적 편견은 하루빨리 버려야 할 ‘나쁜 유산’이라고 말했습니다. 얘기를 돌려서 우리나라 입양실태를 알아봅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 한 해 국내 입양아는 모두 1548명이었고, 해외로 입양된 아이가 916명이었다고 합니다. GNP 2만달러의 나라가 OECE국가 중 고아수출국 1위의 불명예를 짊어져서야 될 말입니까? 이동문처럼 ‘사랑과 나눔의 DNA’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사회는 그만큼 밝아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힐링캠프’라는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한 탤런트 차인표씨 고백을 듣고 많은 분들이 가슴 먹먹한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차인표 신드롬’이 불어 아프리카 어린이돕기 성금이 급증한 것을 보면,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을 것같은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딸들과 함께 활짝 웃는 가족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필리핀에도, 아프리카에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한 마디라도 비난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는 또 어떻습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참 훌륭한 후배가 있다는 생각에 상큼한 감동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뭔가 모르게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큰아들 성빈이가 아빠와 엄마의 유전자를 닮아 두 동생을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랑하고 아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득신-황광이-이성빈-이성주-이예진 가족 파이팅입니다. ‘반짝반짝 빛난다’는 shine이 든 그의 이메일처럼 말입니다. dsshine23@naver.com.
<전라고총동창회 2012년 6월호 e메일 뉴스레터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