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제1편 소요유 제1장을 읽고
서론
<장자>에서도 첫 장을 차지하고 있는 '소요유'는 장자가 목표로 하는 삶을 드러내고 있다. 제목인 소요유가 바로 그가 추구했던 삶의 방향인데, 소요유의 뜻을 살펴보자면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니는 삶, 유유자적하며 노니는 삶, 별다른 목적없이 노는 삶 등을 뜻한다. 이는 현실의 속박에 벗어나 절대적 자유를 얻는 것을 삶의 목표로 본 것 이다.
본론
'소요유'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붕의 이야기이다. 붕은 전설 속의 큰 새로,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가려고 한다. 여기서 남쪽은 흔히 말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의미로, 현실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세계이다. 매미와 작은 참새는 이를 비웃으며 말하는데, 매미와 참새같은 한낱 미물이 붕새의 뜻을 어찌 알까하며 장자는 이를 가엾게 여긴다. 매미와 참새는 자유 의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자는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가는 것도 절대적 자유의 경지로 생각하지 않았다.
절대적 자유는 그럼 무엇일까? 절대적 자유는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야 한다. 위에 이야기에서 붕은 바람없이는 남쪽으로 가지 못하기에 절대적 자유로 여기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절대적 자유는 자기의 내면과 밖의 외물의 구분을 뚜렷이 하여 세간의 평가에 초연하고, 세속의 행복에 초연해야한다. 또한 바람을 조정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넘어서 우주의 도를 타고 육기의 변화를 조종하여 끝없는 경지에 노닐 줄 알아야 진정으로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은 자유, 소요유를 얻을 수 있다.
결론
소요유를 읽으면서 나에게도 얻어간 것이 있었다. 바로 세간의 평가에 초연해지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삶의 방향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과 동일할 것이다. 불행의 시작은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세상의 기준과 자신을 비교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망가뜨릴 수는 없기 때문에, 세속에서 완전히 떨어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세상과 자신의 기준에 합의점을 맞춰가며 견고한 자기의 내면을 갖춰 나가고, 더는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갖춘다면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