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귀한 교제를 나누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긍휼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저를 있게 한 교회가
비록 죄악 된 인간으로 인해 불완전할지라도
머리 되신 주님이 계시기에 사랑하고 기대합니다.
주님의 긍휼을 더 깊이 알게 하시고 배우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6.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나니 이는 그가 모은 재물이 없어졌음이라
37. 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되었고 모든 사람이 수염을 밀었으며 손에 칼자국이 있고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 모압의 모든 지붕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니 내가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어찌하여 모압이 파괴되었으며 어찌하여 그들이 애곡하는가 모압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렸도다 그런즉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사람의 조롱 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리로다
40.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의 날개를 펴리라
41.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4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닥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 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
47.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의 심판이 여기까지니라
(본문 주해)
36~38절 : 모압인들은 나라를 잃고 애곡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판 당하는 모압과 그 백성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슬픈 소리가 나는 피리처럼 되었다고 탄식하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에 깊이 빠진 모압과 같은 이방인들을 위하여서도 탄식하며 애곡하신다.
39~42절 : 모압은 주변 나라들의 조롱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독수리의 먹이처럼 죽고 사로 잡혀 가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자만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여 조롱하고 머리를 흔드는 것,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거슬러 자만하는 것이며 교만한 것이다.
42절의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와 47절의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 란 말씀이 모순되어 보인다.
이는 전쟁에서 패한 모압의 포로들은 유배지에서 돌아올 것이지만, 다시는 그들 민족만의 나라는 세우지 못한다는 말이다. 즉 ‘모압’이라는 국가명을 지닌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43~46절 : 헤스본은 모압이 아모리 족속에게서 빼앗은 요새였다.
모압은 적군의 공격을 피하여 철통 요새인 헤스본으로 모여들지만, 도리어 그곳이 격전지가 되어 적군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그들의 머리가 온통 불길에 휩싸이는 것으로 망하는 장면을 표현한다.(45절)
교만한 자의 결국이다.
그모스의 백성 곧 우상숭배자들은 결국 사로잡혀 가고 그 아들딸들도 포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47절 :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러나’가 중요하다.
모압이 바벨론에 멸망한 후에 나라로 세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낸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완성하신 후에 주께로 돌이킬 자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나의 묵상)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가진 것으로 부유함과 안정감을 자랑하고, 그모스 우상을 숭배하던 이 이방나라 모압이 결국 깨뜨려지는 그릇처럼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모압에 대해 슬픈 피리소리를 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표현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숭배의 나라는 망해버리게 하시지만, 그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를 만들어 내신다는 것이다.
어제 서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났다.
‘긍휼이 여기는 마음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교만한 것임’에 대한 생각을 나누셨다.
복음을 알고 생명으로 사는 이 삶을 전할 때, 아직 이 진리에 대해 모르거나 마음이 열리지 않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없이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에만 머무르는 마음이다.
이는 또한 기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딱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보니 그렇게 살지 못했는가 보다.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보다 판단하고 지적하는 마음이 컸다는 것이 회개가 되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이 은혜를 받고 우리 교회로 돌아왔을 때 이 은혜가 너무 컸던 것은 사실인데,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해 너무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조급했었던 것이다.
복음을 알고 생명으로 사는 삶을 전하고 또 전해도 감각이 없거나 튕겨져 나올 때는 너무 낙심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우리 영지교회를 생각하면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지만,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이 교회 또한 완전할 수가 없다. 다만 때마다 주님께서 은혜로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니 오늘도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새 말씀으로 사는 지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늘려 가시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이는 내가 애가 달아 목소리를 높이고, 판단하고, 또는 낙심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해 나가시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다만 주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그 마음을 따라 지체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 나의 오만함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마음이 너무 평안하니 좋다.
이 교제의 시간을 주신 주님께 너무너무 감사하다.
불완전한 교회지만, 불완전한 지체들이지만 이 모든 관계를 통해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이니, 더욱 사랑하리라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모압에 대해 슬픈 피리소리를 내시는 하나님의 마음.
모압이었던 내가 그 피리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주님께로 돌이켜진 내가 자고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마음을 담은 피리 소리를 나도 내기를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저는 참 부족하고 부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돌이키실 계획을 가지시는데
그것을 모르고 한숨 쉬고 판단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때마다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 잊어버릴까 염려가 되지만
주님께서 긍휼이 여겨주시기만을 간구합니다.
복음과 생명,
이 진리를 열심히 전하게 하옵소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