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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날았다.
김지명
주지호는 퇴근 시간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끼룩거리며 겨울 소식 전하려고 줄지어 날아오는 배달부의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아내가 전화하여 함께 갈 곳이 있으니 즉시 오라는 연락이다. 지호는 회식이 있어 늦다고 말도 못하고 아내가 모처럼 전화했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응하기로 했다. 아내는 언니가 오라는 전화받고 만난다는 기쁨에 온종일 남편의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지호가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연락하여 마을 어귀 하나 약국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아내는 기분이 좋아 싱글거리며 약국 앞에서 남편의 차를 보고 손을 들었다. 지호는 아내를 승용차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챙겨주었다. 아내는 기분이 좋아 빙그레웃으면서 오랜만에 데이트한다며 남편의 얼굴을 처다보았다. 지호는 정년이 가까운 나이에 종일 일하고 장거리 운전은 무리라며 가기 싫다는 말을 던졌다. 아내는 남편의 투정을 애교로 받아주면서 아양을 떨었다. 여보 오랜만에 드라이브하니 참으로 기분이 좋으네요. 화나드라도 참고 기다려 보소 이불 밑에서 기분좋게 할테니 동서 집에 다녀올 때까지 웃어주면 좋겠어요. 지호는 유구무언으로 부두길 지나 수정 터널을 통과했다. 아내는 엷은 미소를 가미하여 모처럼 나들이가 이렇게 즐거울줄 몰랐다며 남편의 오른 손을 꼭 잡았다. 묵비권을 주장하던 남편이 천진난만한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여보. 그렇게 좋아?" "네,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입니다." "그래 그 기분 오래도록 간직해라." "고향을 추억하면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하루가 저물어 가듯이 아내의 얼굴은 물빠진 저주지의 밑바닥 갔구나." "세월 이기는 사람있나요? 억지로 끌려가는 우리 즐겁게 살아야지요." 아내는 달리는 차 안에서 하루가 저물어가는 붉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저녁 노을이 멋지다고 했다. 붉고 노란 색깔로 장관을 이룬다며 오른손을 쭉 뻗어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한참을 달려 밀양 터널을 지나자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길게 눕히고 어둠 속에 빛을 밝히며 종앙고속도로로 달렸다. 예전에 장모가 있을 때는 처가에 자주 들락거렸으나 산에 편안히 누운 후부터 발걸음 없었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 여자들만 어울려 살았으므로 아내는 갈 곳이 없어졌다. 아내가 의지할 곳이라곤 자매뿐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를 대신해준 큰언니가 딸처럼 생각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하자고 불렀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었다. 처형은 동서의 생일에 제부 부부를 초청했기에 부지런히 달렸다. 지호는 중앙고속도로로 달려가면서 밤하늘에 수많은 별빛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 지호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중앙고속도로로 최고 속도를 넘기면서까지 신나게 달렸다. 아내는 속도계를 들려다 보면서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제발이지 속도좀 지키며 달려보라고... 지호는 빙그레웃으면서 시댁이 아니라 처가에 간다고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보인다고 해명했다. 고속도로로 달려가면서 청도 도심지의 불빛도 별빛 못지않게 반짝거린다고 말을 붙인다. 장모도 없는데 뭐 하려고 심하게 달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구시렁거렸다. 지호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아내의 기분을 돋웠다. 당신은 고향에 가면 동심이 추억되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졸면서 다니던 아내가 눈이 아주 말똥말똥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기다리던 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서 아주 흐뭇해하면서 옛날을 추억한다. 동심을 생각하며 개울에서 놀던 시절의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둥 호시절의 이야기를 낱낱이 털어놓는다. 가장 큰 충격은 초등학교 졸업할 시기에 아버지를 잃었을 때다. 아버지는 고요한 산에서 편안한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에는 기둥이 없어지자 여자들만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내는 아빠의 정을 밭지 못하여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조선 시대에 벼슬했지만, 아버지는 선비라는 말은 들어도 벼슬이 없었다. 아버지는 선비라는 자존심 때문에 농촌 일을 전혀하지 못하는 반풍수였다. 아버지가 갈곳이 없어 마을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술에 취해 세월을 보내다가 놀음꾼과 어울리다가 골패놀이에 빠져들었다. 재산을 몽땅 탕진하자 갈 곳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선비였으므로 글을 배우던 시골 대감이 불쌍한 아버지를 보고 사랑방을 내 주었다. 주정뱅이로 발전한 아버지는 결국 간 경화로 앓아 누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없어 구박받고 살던 어머니가 일꾼처럼 일하며 딸들과 함께 억지로 가정을 꾸려나갔다며 눈물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선비라는 이미지 때문에 언니들은 시집을 좋은 곳으로 갔다며 자랑하며 막내인 아내는 큰 언니집에서 더불어 살았다며 그때의 고난을 이야기 했다. 아내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자매끼리의 우애는 아주 돈독했다고 늘 자랑삼아 말했다. 아내가 출가하자 지호의 장모는 갈 곳이 없었다. 장모는 큰 딸집에 갔으나 기어이 고집을 부려 외손자가 보고 싶어서 막내딸 집으로 찾아왔다. 손자를 돌보면서 추우나 더워도 조금의 불평도 없이 지호의 단칸방에서 수년을 함께 살았다. 그러는 동안 고목에 잎이 마르자 병들어 넘어졌다. 일어나지 못 하고 영원히 잠자리에 든 장모를 지호는 선산에 편안히 눕혔다. 지호는 장모가 사라지자 처남이 없어 처가라는 말도 사라졌다. 처가가 없는 지호는 자매끼리라도 자주 만나야 한다며 손위 두 동서에게 가끔 모이자고 권했다. 동서를 만날 때마다 거리를 좁히려고 막내답게 형님들 앞에 애교를 부리면서 우애를 다졌다. 지호는 아내와 승용차에 나란히 앉아 지난 날을 이야기 하면서 동서집으로 가려고 대구에 들렀다. 동서 집앞에 서서 차인종을 눌렀다. 언니는 문을 열고 제부가 들고 온 물건을 보더니 그게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처형이 나오더니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형은 부산에서 동생이 온다고 혼자서 준비에 바쁘게 움직였다. 지호는 처형 보기가 부끄럽다고 했다. 처형은 전화로 동생을 고생시킨다고 미워했지만, 막상 눈앞에만 나타나면 제부가 최고라며 위로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아내는 형부가 좋아하는 싱싱한 회를 준비했다고 했다. 애주가인 동서가 좋아하는 금정 막걸리도 빠뜨리지 않고 한 박스 가져왔다. 처형은 선물을 받으면서 돈도 없는데 뭐 하려고 이렇게 비싼 회를 사 오는가 하고 오히려 꾸지람했다. 그러면서도 언니는 양팔 벌려 동생을 맞이했다. 아내는 언니 집에 들러서 즐거움에 취하지만, 지호는 건성으로 반갑다며 인사를 전했다. 자매끼리 얼싸안고 반가워하더니 마주 앉아 수다로 웃고 웃느라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처형은 부자로 살지만, 아내는 직장에 다녀야 하는 딱한 처지였다. 지호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기에 처형에게 베풀지 못하여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처형이 사람은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야 한다며 제부의 사주를 분석이라도 했듯이 사생활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 처형은 제부는 뒷전이고 아내에게 여직원은 옷을 자주 바꾸어 입어야 한다며 큰방으로 데리고 갔다. 아내는 외모가 처형과 비슷하여 패션쇼를 연출하더니 언니의 허락도 없이 좋은 옷만 골랐다. 처형은 자매간에 정이 깊어 마음에 들면 다 가지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빙그레 미소 지으며 옷을 골랐다. 처형은 선심을 쓰겠다며 더 골라보라고 부추였다. 아내는 언니의 말에 옷과 가방을 한 보따리 챙겼다. 언니는 동생이 자존심을 버리고 옷을 챙기니 흐뭇하다며 더 챙겨보라고 했다. 아내는 이것만 해도 몇 년은 입겠다며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매끼리 정을 나누는 싸이 지호는 궁전 같은 거실에 앉아 영화 스크린처럼 큼직한 모니터에 눈길이 꽂혔다. 처형은 오랜만에 오는 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손맛을 자랑하려고 부산히 움직였다. 형님은 아래 동서를 보더니 반가워서 손을 잡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부산서 가져온 귀한 막걸리 맛보라고 동서에게 권했다. 처제는 부산서 가져온 회와 막걸리를 형부에게 자랑하면서 저녁을 맛나게 먹었다. 동서는 적수를 만났다며 지난번 무승부였던 장기와 바둑을 결판내자고 했다. 동서끼리는 밤이 깊어갈수록 좋다며 바둑판을 놓고 마주 앉았다. 밤은 깊어 어둠은 뿌리를 내렸고 적막은 쌓여만 갔다. 자매는 자매끼리 동서는 동서끼리 제각기 앉을 자리에 앉았다. 자매는 수다로 밤을 녹이고 동서끼리는 바둑으로 밤을 지새웠다. 수다는 새벽녘에 끝나고 잠들었지만, 바둑은 날이 밝아도 계속되었다. 처형은 잠에서 깨더니 제부에게 당부한다. 운전하려면 잠을 자야 하니 눈을 붙이라고 권했다. 형님이 무승부로 남겨놓고 잠시만 눈을 붙이자고 했다. 몇 시간을 잤더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몸은 늘어져 힘이 빠졌다. 동서는 처제가 좋아하는 곱창 집으로 가자며 점심은 외식으로 때우자고 했다. 모두가 그렇게 하자고 입을 모았다. 부산은 해변이라 어류가 풍부하지만, 대구는 내륙이니 양 곱창이 유명한 집으로 데리고 갔다. 얼마나 소문난 집인지 번호표를 받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호는 동서와 줄 서서 기다리는 곳엔 딱 질색이지만, 자매가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순서에 의한 번호표를 받아 기다렸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집은 허물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으나 실내는 아주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음식 요리는 맛깔스럽게 만들어져 나왔다. 지호 입에 간이 맞았다. 동서는 아내에게 좋아하는 양 곱창을 아쉬움 없이 실컷 먹으라고 권했다. 아내는 형부에게 고맙다며 이토록 맛있게 먹어보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자주 오고 싶다고 했다. 동서는 처제가 사랑스러워 날마다 오라면서 얼마든지 사주겠다고 했다. 처제가 막걸리 사 오듯이 부산에 내려갈 때 반드시 곱창을 푸짐하게 구매하여 가지고 가겠다고 언약했다. 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두 내외는 거실에 앉아 75인치 모니터에서 보내는 스포츠댄스를 보다가 소화도 시킬 겸 따라 해보자고 했다. 움직이는 자체가 운동이므로 많은 활동에서 땀을 흘렸다. 운동을 충분히 한 다음 휴식도 할 겸 식탁 의자에 둘러앉았다. 아주 여유롭게 음료수를 마셔가면서 훌라 게임에 빠져들었다. 무엇이든 과하면 고장 난다며 적당히 놀다가 서로 다른 방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함께했다. 자매는 수다와 패션쇼로, 동서끼리는 바둑에 빠져 시간을 녹이고 있었다. 자매끼리 수다는 끝을 보았는지 남자들의 놀이터에 합세했다. 동서끼리 바둑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곁에서 졸음을 참고 지켜보던 아내가 가자고 보채며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처형은 자고 가라고 잡아보지만. 지호는 아내의 말이 법이고 가정에 화목이니 가야 한다고 했다. 처형은 제부의 마음을 이해라도 하듯이 빙그레 미소만 보였다.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밖으로 나올 때 옷을 많이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처형은 이상한 디자인의 옷을 걸치고 엷은 미소를 보이며 자주 보자고 했다. 게다가 빙그레 웃으며 언제든지 와서 또 골라가라고 말이라도 후한 인심을 보였다. 자주 오라는 처형의 말에 지호는 고맙다는 말보다 아내를 고생시켜 부끄럽다며 고개 숙였다. 지호는 아내의 명령 같은 말에 올빼미 눈이 되어 운전석에 앉았다. 밤공기가 차도 처형 내외는 밖에까지 나와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주차장에는 색깔이 퇴색된 낙엽이 메말라서 땅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지호는 운전석에 앉아 헤드라이트 불빛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도심지를 빠져나왔다. 적막이 쌓여가는 깊은 밤에 어둠을 부수고 찬바람을 헤치며 중앙 고속도로로 달렸다. 자동차는 연이어 달려가는데 헤드라이트 불빛 끝에서 물체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지호는 추월선으로 달려가다 갑자기 비상등을 켜고 약간의 속도를 줄였다. 주행선으로 앞서 달려가던 승용차가 갑자기 퍽 하더니 앞에 물체와 부딪치면서 멈춰 섰다. 전방을 바라보던 아내는 퍽 하는 소리에 놀라서 머리털이 치솟았다. 지호는 대담스럽게 물체와 부딪칠 듯 아슬아슬하게 빠져나 계속 달렸다. 움직임이 감지되었던 물체는 노루였는데 추돌 때문에 죽었다. 노루 털에 의해 지호의 승용차에 묻은 먼지가 약간 털렸다. 옆자리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놀라면서 머리털을 세워 가발을 덮어쓴 사람처럼 보였다. 졸리던 지호는 긴장하여 졸음운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아내는 한참을 멍하니 앉았더니 정신이 돌아왔는지 말을 시키며 대화가 오갔다. 한참을 주고받던 대화가 갑자기 끊겨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한순간에 잠이 들어버렸다. 아내가 잠에서 깰까 고속도로에서 차선 변경도 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아내가 잠들면 추워할까 봐 히터를 털어놓았다. 차선 변경을 하면 깜빡이의 소리에 잠 깰까 아예 차선을 변경하지 않고 주행선으로 같은 속도로 달렸다. 집에 도착하여 주차하고 있을 때 아내는 한 시간을 자고 나서 여기가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집에 왔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벌써 집이에요? 하면서 눈을 비비며 잠에 지쳤건만 옷과 가방이든 보따리를 챙겼다. 차 문을 열더니 왜 이토록 추운가 하고 다시 문을 닫고 옷 보따리에서 외투를 꺼내 어깨에 걸쳤다. 야행성도 아닌데 항시 야간에 이동하여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시간이 그렇게밖에 안 되어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더 많이 미안해했다. 주간에는 잠시라도 함께하느라 집에 올 시간이 없었다. 아내는 집에 왔어도 얻어온 옷으로 패션쇼를 했다. 입었다 벗기를 반복하더니 선별하여 농으로 집어넣었다. 동서 집에 다녀온 부부는 자녀를 출가시켰기에 생활은 신혼처럼 밤이 즐거웠다. 지호와 아내가 처가에 다녀온 이후부터 처형과 전화통화가 잦아졌다. 저녁 식사 끝나면 아내의 수다 시각으로 바꿔버렸다. 처형은 막냇동생을 아주 좋아하여 이틀이 멀다 하고 전화기 들고 앉아 수다로 저녁 시간을 녹였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자매간에 수다로 저녁 시간이 녹는 줄도 몰랐다. 처형이 아내의 우울증을 제거하는 심리치료사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시간은 간곳없고 즐거움을 쌓아가는 아내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지호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우울증도 사라진 느낌이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웃음을 가미한 통화는 자매간의 정을 쌓아가는 순간이라 생각하니 흐뭇한 느낌이다. 근간에는 수다를 시작하면 짧아도 삼십 분을 넘겼다. 그토록 자매의 우애를 자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변화를 일으켰다. 대화가 오가는 모습을 보아야 지호의 마음에 안정이 되는데 저녁이면 너무나 조용하여 숨소리마저 울릴 정도로 적막은 깊어갔다. 지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곁에서 물었다. "요즘 갑자기 통화하는 모습이 사라졌네." "자주 하니 할 말이 없어요." "언니가 뭐라고 하던가?" "아니 언니가 바쁜 모양이더라." "아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아내의 태도가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느 때와 달리 울먹이며 전화로 한참을 통화하고는 우울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누구와 통화했는가 하고 물었으나 대답을 쉽게 하지 않았다. 지호가 따지고 물었더니 처형이라고 했다. 아내가 실수했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작은 언니와 언약한 비밀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했는데 큰 언니의 유도심리전에 끌렸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자 큰언니와 통화하면서 무심코 묻는 말에 답했더니 유도심리에 끌려 작은 언니와 언약을 파괴하고 말았다. 큰언니가 작은 언니와 통화하면서 자극적으로 말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작은 언니가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다고 앞으로 보지 않겠다고 막내에게 말했다. 그날 후부터 아내는 통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단단히 비틀어진 처형의 심기를 지호가 풀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 내외를 부산으로 불러 새롭게 등장한 명물을 보여주면서 화해하고 싶었다. 부산항 대교도 자랑하고 봉래산으로 등산하여 날개 펼친 갈매기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자갈치시장의 건물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처형을 불러 화해를 권해보려고 전화하니 시간이 없다고 한다. 마음이 여린 아내의 가슴에 상처가 생긴다면 큰 흉터로 남을 것이 뻔하다. 처형이 사랑하는 동생을 잊으려 하니 우리가 찾아가자고 아내를 달랬다. 전에는 퇴근 후에 집에서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하더니 요즘은 남북으로 절단된 녹슨 철로처럼 되어버렸다. 수다로 잠을 줄이던 자매였는데 처형과 단단히 꼬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든 덮어주고 감싸주는 처형이라고 믿었는데. 대쪽 같은 자존심을 꺾지 못하는 처형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의 침묵으로 화목이 사라졌다. 아내를 웃겨주려고 농담을 했으나 웃기는커녕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말 한마디의 실수로 속죄하며 사는 것 같다. 아내가 잘못 했을 땐 꾸짖고 이해시켜 화합으로 반겨주던 처형이었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매 사이에 금이 갈 것 같은 느낌이다. 자매간의 우애를 위해 지호가 중간 역할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처형에게 전화하여 말문을 열었다. 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고 하듯이 혈육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하면 남남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자매는 반드시 한마음이 되리라 믿어진다. 처형이 아내와 샛강처럼 다시 만나 웃는 모습 보고 싶다고 전했다. 처형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자주 대화하니 이젠 할 말이 없다며 말을 돌렸다.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많이 좋아졌는데 하다가 중단하니 더 심해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처형은 가만히 두라고 했다. 미워서 하는 말 같은데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부산으로 한번 오라고 말했다. 지금은 가고 싶지 않다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세월이 가면 반드시 가게 될 것이라고 미래에 오겠다는 미련을 남겼다. 지호는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동서에게 좋은 볼거리가 생겼다고 조만간에 오라고 권했다. 아내가 몹시 우울해하던 날 대구에서 동서 내외가 온다는 기약도 없이 달려왔다. 한순간 말을 잊고 멍하게 처형을 바라보았다. 지호는 아내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봄날의 따스함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자매가 다시 만나 포옹하는 감동의 순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 돌렸다. 지호는 동서를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처형은 동생을 포옹하고 어깨를 다독이며 화해의 손길이 늦어 미안하다고 동생을 달랬다. 아내도 이해하고 찾아주는 언니가 고맙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하여 코까지 훌쩍거렸다. 지호는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진작 보여주지 않았다고 처형에게 투덜거렸다. 샛강처럼 다시 만난 자매는 앞으로 바다에 이를 때까지 변함없는 강물처럼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처형은 웃으면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 웃었다. 동서는 지난번 처제와 약속한 대로 곱창을 가져왔다. 지호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놓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 동영상으로 담아놓아야 하는데 그 아쉬움은 영원하리라 믿어진다고 했다. 동생을 찾아온 처형은 또 옷 한 보따리를 골라 가라고 권한다. 지호는 곱창도 좋지만, 화에의 분위기는 외식이 좋다며 아귀찜 집으로 가자고 했다. 두 부부는 해변으로 한 바퀴 휙 돌아서 유명한 아귀찜 집으로 갔다. 산성 막걸리를 가미한 아귀찜은 어느 맛보다 일미였다고 동서는 미련을 남겼다. 지호는 멀리 오고가지 말고 부산으로 이사하라고 권했다. 지호가 오륙도는 부산의 자랑이고 우리나라의 명물이라고 했다. 일렬종대로 선 섬들이 기이하기도 하며 굴섬 마루에 허옇게 뒤덮인 갈매기의 변이 바위를 부식시켜도 수억 년 동안 불잉걸로 남았다. 오륙도 언저리에 승두말이 있으며 동남의 기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왼발은 동해요. 오른발은 남해를 밟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게다가 동해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동해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해파랑 길의 시작점이라며 지호는 걸어서 강원도 최전방 명호마을까지 가고 싶다고 했다. 지호가 해파랑 길은 부산에서 갈맷길과 겹쳐지고 울산에는 어울길과 겹쳐지기도 한다고 문화해설자처럼 말했다. 동서는 무슨 해설사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다며 만약에 부산으로 이사 오게 되면 상식을 함께 공부하자고 했다. 오륙도에서 돌아 나오면서 아파트에 구경이나 해보자고 했다. 대구 사람들은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살았기에 아주 많이 탐내는 장소였다. 지호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부산에 이사 오게 하려고 해변의 장점만 자랑했다. 부산에서 여러 곳을 둘러보았으니 둥지를 옮겨보라고 권했다. 공해가 없는 부산 남구 용호동은 동남쪽이 바다며 서북쪽은 산이니 주거공간은 아주 멋진 곳이라고 자꾸 꾀었다. 동서는 생각해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망설이지 말고 바로 이사하라고 권했더니 처형과 한참을 의논하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살다가 어려우면 다시 떠나더라도 지금은 오고 싶다고 덧붙였다. 동서는 대구에서 65년을 살았으니 여생엔 부산에서 살고 싶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처형도 덩달아 옮겨보자고 말을 덧붙였다. 고향을 등지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지만, 기꺼이 승낙하여 무엇보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동서까지 가까이 오면 아내는 자매간이라 말할 이유도 없다. 세월에 끌려가다 샛강처럼 다시 만나는 이 기분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내도 좋아했다. 처형은 막냇동생이 좋아서 항시 이곳으로 올 생각으로 살았다며 속마음 털어놓았다. 대구에서 처형은 바다를 보려고 부산 동생 집에 찾아왔다가 제부에게 홀렸다. 모처럼 부산에 놀러 온 처형 내외와 함께 오륙도 공원으로 나들이 갔다. 스카이워크를 둘러보고 내려와 승두말에 들렀다. 동해와 남해를 갈라놓은 분기점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곳 분기점부터 휴전선까지 이어지는 오솔길 해파랑길로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동해 시발점인 분기점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강원도 고성군 한내면 명호마을까지 이어진다며 걸어보자고 했다. 지호는 이 마을 주민이 되려면 사전에 주변의 상식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고 동서에게 알렸다. 대구 친구들이 방문할 때 자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억해라. 동서는 궁금한 게 하도 많아서 여러 가지 확실하게 알려고 이것저것 질문했다. 이사 오기 전에 알아야 한다면서 오륙도는 왜 이름을 애매하게 칭하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지호가 섬의 이름은 일곱 개지만, 보통으로 대여섯 개만 사용한다. 육지에서 첫 번째 보이는 섬 일부가 Y자처럼 생겼다. 썰물일 때 하나로 보여 우삭도라 칭하고 밀물이 밀려와 수위가 높아지면 Y자처럼 생긴 바위 사이에 물이 차오르면 두 개의 섬으로 분리되므로 이름을 따로 지었다. 그래서 육지와 가까운 곳부터 방패섬과 솔섬으로 나누어진다. 나머지는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 등 모두 합치면 6개의 섬이다. 썰물이면 오도, 밀물일 때만 육도가 된다고 했더니 동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 지호가 오륙도는 문화관광부에서 명승지 24호로 지정 받았으며 이 지방의 자랑이고 한국의 명물이다. 동서는 내가 이 지역 해설자처럼 자상하게 이야기 하니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낸다. 아무리 이곳 주민이라 하지만, 문화해설자 못지않게 자상한 설명에 귀가 솔깃하다. 지호는 그 말에 신나서 이 지역의 명소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연설로 이어갔다. 갈맷길 따라 걸으며 농바위를 바라본 동서 내외는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해변에 층암단애 위에 농처럼 높이 쌓아 놓였으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했다. 농바위를 위에서 내려다 보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전망대에서 이기대공원 어울마당 지나면서 대구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해변에 공연장이 있다니 참으로 기특하다고 했다. 두 부부는 갈맷길 걸으면서 구리 광산, 동굴체험, 해녀 대기실, 구름다리, 야생화 군락지 등 동생말까지 볼거리를 추억으로 남기라고 사진도 찍었다. 동서는 바다를 보면 볼수록 좋아서 부산으로 이사할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지호는 남구의 명물인 장자산을 한 바퀴 휙 돌아서 다시 오륙도에 갔다. 지호가 하도 강조하니 처형도 생각하고 망설였지만, 동서가 쉽게 결정하더니 동참하겠다고 했다. 동서는 이사에 앞서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고 덧붙였다. 지난번엔 마음껏 구경했으니 이젠 결정을 기다린다고 했다. 저번엔 다음에 와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요번엔 확실하게 결정하라고 했다. 두 가족은 용호동을 벗어나지 않고 둥지를 찾아다녔다. 한 동네에 만 세대가 넘는 아파트 대단지 엘지메트로시티를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 다시 오륙도로 갔다. 동서 내외는 둥지를 구매하려고 내가 사는 마을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찾아보자고 했다. 오륙도 언저리에 에스케이 아파트상가에 있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렀다. 젊은 공인중개사 아주머니가 아주 상냥하면서 친절했다. 몇 군데 안내하더니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미래에 경기가 좋다고 알려주었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중국과 일본에서 구매자가 많아 아파트의 값이 오르는 시세라고 장래에 돈이 보인다며 웃었다. 이곳에서 오십 평 이상을 구하려 했지만, 물건이 없었다. 서른다섯 평 아파트를 구매하라고 권했다. 좁아서 싫다고 했는데 동서는 별장처럼 사용하자고 했다. 일단은 집부터 구경하고 결정하기로 하고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공인 중개사 아주머니는 두 부부를 데리고 208동 3003호에 들러서 50평 아파트에 들러서 전망을 보았다. 삼천오백 세대가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된 마을이라 넓은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게다가 스카이워크도 내려다보여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중개하는 아주머니는 별장처럼 사용하면서 이곳에 정을 붙여보라고 권했다. 동서 내외는 거실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니 천국에 온 느낌이라고 좋아했다. 지호는 동서와 남의 집 창가에 앉아 내 집처럼 여유롭게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는 희귀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무역선은 바다를 가르며 항해하고 유람선은 노래를 흘리며 지나가지만, 통통배는 닻을 내리고 푸른 텃밭에 내려간 선주를 기다리는 모습이 외롭게 보였다. 지호는 은빛 윤슬이 눈부신 수평선 위에 요트가 한가롭게 머물러있는 모습에서 삶의 여유가 보이지 않는가? 동서는 바닷물이 항시 저렇게 고요한가 하고 물었다. 지호는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두 번씩이나 해안을 찾아오지만, 계절이 변하지 않으면 저렇게 고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해가 뜨고 질 때 해변에 자갈밭은 자연의 섭리 때문에 간만차로 바닷물에 담긴 자갈이 젖었다가 말랐다 반복한다고 했다. 지호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부는 바다 속 푸른 텃밭에서 자라는 자연산 해산물을 관리 한다고 하면서 바다를 다 읽기엔 하루가 모자란다고 했다. 지호는 계속해서 바다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해변에 나가지 않아도 창문만 열면 파도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 이런 곳이 어디에 있느냐고 동서에게 묻기도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해변에 가서 느껴보라고 했다. 해변의 앉는 자리에 따라 들리는 소리가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자갈밭 언저리 바위에 앉으면 가느다란 파도가 부딪치는 장소마다 크고 작은 소리로 연출된다고 했다. 밀려오는 파도의 높이에 따라 들리는 소리의 감성이 다르다. 자갈을 감싸 안던 파도가 밀려오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소리를 냈다. 파도가 무섭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태풍에 파도가 산더미처럼 밀려와 바위에 부딪히면 우렁찬 굉음과 물보라를 흩날렸다. 이처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는 희비를 가졌다. 봄가을은 아주 고요한 바다지만, 여름과 겨울은 완전히 딴판으로 변했다. 여름철에 해변에 앉아보면 낮은 파도라도 작은 돌멩이를 와르르 밀어내다가 다시 물속으로 끌고 갈 때 아주 독특한 소리가 났다. 자갈과 파도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발걸음 멈추고 쭈그려 앉아 낮은 소리에 귀 기울였다. 동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든가 궁금하다고 했다. 지호는 동서가 흥미진진하게 듣는 모습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계속 이어갔다. 바다는 다양한 선으로 이루어졌다. 수평선 위에 멈춰선 저 요트는 수직선을 세워놓고 한가롭게 떠 있잖아. 저기 광안대교를 보아라, 수평선 위에 또 다른 평행선을 그려놓았다. 가로 선과 세로 선으로 이어져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 바다 위의 교량은 어디서 보아도 멋지게 보였다. 낮에는 다종의 차들이 대교 위로 달리고 밤이면 헤드라이트의 길게 누운 불빛이 또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다. 그 아래는 유람선이 바다에 평행선을 그으며 달려갈 때 노래를 흩날리면서 관광객을 기분을 돋우었다. 경관이 좋은 전망대에 앉아 사색에 젖으면 하루가 한순간에 지나갔다. 계절이 바뀌거나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풍광은 변하지 않고 늘 눈앞에서 일렁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지호는 흥을 돋워서 이야기할 때 처형도 아내도 흥미롭게 들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중개사 아주머니가 문화해설자인지 물었다. 지호는 중개인 아주머니를 돕기 위해 도우미 역할을 했다. 중개인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지호는 아주머니를 대신하여 이곳에 둥지를 사라고 권하는 이유는 내 곁에 오라는 탐욕이라고 했다. 중개사 아주머니는 좀 더 많은 선전이 있어야 하겠다며 바다 이야기를 더 하라고 했다. 지호는 기회를 놓칠세라 수평선을 감시하는 갈매기는 바다 위에서 끼룩거리며 사랑을 갈구하고 장끼는 해안가 숲속에서 높은음으로 까투리에 위치를 알린다고 했다. 다양한 미물들이 내는 자연의 소리가 내 심금을 울려주니 어찌 이곳을 싫다고 하겠는가? 저기를 보아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바다와 산을 잇는다. 낮은 파도가 밀려와 산기슭 바위에 애무하며 포옹해보지만, 무딘 바위는 싫다고 돌아섰다. 지호가 이곳은 해변에 가지 않아도 거실에 앉아 새벽에 활력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수평선을 부수며 치솟는 붉은 태양은 피바다를 만들어 놓고 세상 밖으로 치솟아 웅장한 모습을 거실에 앉아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멋진 곳이 어디 있겠는가, 얼른 결정하라고 권했다. 처형은 중개사 말보다 제부의 말에 녹아들었다고 했다. 지호는 껄껄 웃으며 반드시 오도록 이야기를 더욱 재미나게 해야 하겠다며 계속 이었다. 바다를 찢어 피를 쏟아낸 아픔의 고통은 파도가 일렁거리며 감싸주는 모습을 거실에서 보라고 했다. 게다가 조업에 나선 배들은 바다 위로 마사지하듯 누비고 다닐 게 확실했다. 지호는 종교인도 아니면서 도인처럼 말했다. 바다를 부수고 솟아오른 해를 보며 결가부좌로 앉아 엄숙하고 진지하게 풍요를 기원해 보라고 했다. 어민은 풍광이 뛰어난 아침노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렁이는 텃밭으로 달려와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노햇사람들을 보라고 했다. 도시나 시골이나 노햇사람들은 바쁜 하루를 열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삶의 의욕이 생기고 활동적으로 생활할 거라고 했다. 이른 새벽 삶의 고달픔도 잊은 채 잠을 설치며 푸른 텃밭으로 통통거리며 달려가는 모습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맛볼 것이라고 했다. 미역이나 다시마 등 해초류를 손질하려는 노햇사람의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감성이 나타난다고 했다. 잠수하는 어민들은 물개처럼 유연하게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모습도 보았다. 고난도 잊고 즐겁게 일하는 어민들의 생활이 도시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지 않았는가? 간밤에 깔아 놓은 수 킬로미터의 줄낚시를 두근거리며 건져 올리는 어부의 심정을 생각하면 친구가 떠오른다고 했다. 동서는 친구가 노햇사람으로 즐겁게 사는가 하고 묻기도 했다. 친구가 낚싯줄에 큰 고기가 많이 올라올 때 만선의 기쁨으로 항구로 달려와서 경매로 넘기면서 한 상자는 남겨놓았다가 지호에게 전해주기도 하더라고 했다. 동서는 좋은 친구가 있었기에 맛난 어류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지호는 이곳에 집을 구하면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거실에 앉아 창밖으로 내다보면 시선은 바다 위의 작은 움직임으로 옮겨지겠지, 그때 그곳에 푹 빠져보라고 했다. 바다는 노햇사람들이 활동하는 삶의 터전이며 유람선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관광객을 태우고 유행가를 흩날리며 여유를 즐기는 유람선은 언제나 한가롭게 해안선을 따라다닌다. 지호는 교단에 선 강사처럼 해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열변을 토했다. 작은 요트들이 무리 지어 바람을 기다리는 모습은 더없이 한가로워 보이지 않은가 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가 내 눈에는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더라. 자연의 섭리로 인해 밀물과 썰물이 생겨나면 바람도 일어나므로 요트 동호인들은 이런 흐름을 잘 이용해서 삶을 즐긴다고 했다. 여기에 앉아 그림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라고 했다. 동서는 꼬이지 않겠다고 했다. 지호는 꼬임이 아니고 지금도 스카이워크를 보아라, 저렇게 많은 관광객이 줄을 섰잖아. 이른 새벽에 여기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거울같이 맑은 수면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해가 뜨면 일곱 가지 색깔로 무지개가 꽃을 피운 모습이 눈앞에 선하고 했다. 운무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오륙도의 등대는 하얀 바지 걸치고 빳빳하게 서서 부산항을 찾아오는 선박을 윙크로 안내하는 이런 멋진 곳으로 당장 이사하라고 권했다. 처형은 알았다며 이제 연설은 그만하고 계약서 작성하러 가자고 했다. 중개인 아주머니는 계약서 작성하러 가자는 말에 신이 나서 가구주에게 연락하여 어서 오라고 했다. 동서 내외는 기어이 오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계약하자며 환한 웃음을 날렸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공인 중개사 사무실로 다시 찾아온 동서 내외는 약간의 망설임을 가졌다. 아주머니의 안내로 집을 구경하긴 했지만, 막상 서명하려고 하더니 망설여진다고 했다. 넓은 평수가 없고 층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구주 아저씨가 부동산 사무실에 도착했다. 지호는 살다가 싫으면 다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 그러자면서 계약서에 서명했다. 동서가 같은 동네로 이사 온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아내와 처형은 계약서 서명을 지켜보더니 자매간에 얼싸안고 좋아했다. 동서는 지호의 권유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계약금은 통장으로 입금했다. 잠시 후 가구주의 손 전화기에서 신호를 울렸다. 들여다보더니 돈이 입금되었다고 좋아했다. 동서 내외가 부산 사람으로 변했다. 동서는 혼자서 취미 생활에 시간이 바빠서 부부가 따로 놀았는데 이젠 함께 즐기는 운동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형은 동서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질 거라고 흐뭇해했다. 대구에서는 기차 소리와 비행기 소리는 자주 듣지만, 뱃고동 소리는 듣지 못하고 살았다. 동서가 이젠 다양한 소리를 들으면서 삶이 달라질 거라고 좋아했다. 아내는 형부에게 주말마다 두 가족이 여행 떠나자고 부탁했다. 처형은 맞아 그렇게 살아야지 하면서 좋은 생각이라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동서 내외는 기어이 남쪽으로 날았다. 만남의 즐거움에서 자매끼리는 수다에 푹 빠졌지만, 동서끼리는 바둑으로 시간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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