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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허릿병 수술을 할 땐 척추 사진 보다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증상이 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요통 때문에 병원에 온 환자의 척추 사진에서 디스크 변성증(말랑말랑한 젤리같은 디스크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 필름에서 검고 납작하게 보이는 것)이나 디스크 탈출증이 발견되면 수술을 권유하는 의사가 많지만, 그 사실 자체만으로 수술을 결정해선 안된다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디스크 변성증은 40대 40%, 50대 50% 정도에게서 발견되는 흔한 현상이며, 디스크 탈출증도 안정을 취하며 약물·물리치료를 받으면 75~80%는 낫는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척추 사진에서 척추뼈에 금이 가는 ‘척추 분리증’이나, 척추뼈의 일부가 어긋나 있는 ‘척추 전방 전위증’이 발견된 경우라도 환자가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면 굳이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전방 전위증이 있어도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을 단련시키면 큰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허리 근육을 단련시켜도 금이 간 뼈가 붙거나 어긋난 척추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법은 없다. 절반 이상이 병이 악화돼 언젠가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의사들이 “어짜피 수술 받아야 한다면 빨리 받아서 완치시키는 게 낫다”고 주장하지만, 이 교수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침·뜸·추나요법 등 각종 대체요법과 ‘요통벨트’ 등 보조기 치료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추나요법 등이 일부 환자에겐 효과가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되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있거나, 대체요법을 받느라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 허리가 아프다고 벨트 형태의 보조기를 오랫동안 차고 다니면 허리를 움직일 수 없어 장기적으로 허리의 근육이 더 약화되고, 그 때문에 요통이 더 심해지므로, 허리 보조기는 수술 직전이나 직후 가급적 짧은 기간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한편 청소년의 척추가 좌우로 휘는 척추 측만증에 관해서도 이 교수는 “급할 게 없으므로, 섣불리 치료를 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최근 학교 검진이 확대되면서 청소년의 10~20%가 척추 측만증이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의사, 보조기 상인, 학교가 함께 척추 검진을 한 뒤 학생들에게 보조기 치료를 권하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척추의 뒤틀린 각도가 25도 이상인 경우에만 보조기 치료가 필요하며, 25도 이상인 경우 검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므로 검진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이 교수는 10~20%가 척추 측만증이란 조사결과도 잘못됐다고 설명한다. 청소년 척추 측만증 발병률은 2% 정도며, 나머지는 8~18%는 측만증이 아닌 일시적 자세의 변형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잘못된 의학정보나 상술(商術)에 따라 불필요한 보조기 치료가 성행하고 있다”며 “온몸을 옥죄는 보조기 치료는 성장기 청소년에게 엄청난 육체적·심리적 압박을 초래하므로 신중하게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춘성 교수는…
이춘성 교수는 한 마디로 원칙주의자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굽히지 않으며, 상대방의 비원칙이나 편법도 용납하지 않는다. 원칙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핏대’를 세워 공격한다. 마치 벼슬을 꼿꼿이 세운 싸움 닭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원칙은 웬만한 척추질환은 비수술적 방법으로 치료 가능하며, 의술 외적 변수에 따라 수술이 남발돼선 곤란하다는 것. 그가 싸움 닭을 자처하는 이유도 원칙에 어긋난 수술과 치료가 특히 척추 분야에서 너무 일반화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1956년생인 이춘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척추외과의 대가로 꼽히는 석세일 교수의 수제자다. 미국 UC 샌디에이고에서 척추 기형을 전공한 뒤 줄곧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1996년엔 ‘꼬부랑 할머니’의 원인인 ‘요부변성후만증’을 세계 학계에 최초로 보고했으며, 이 병에 대한 수술법도 체계화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청소년의 허리가 좌우로 휘는 ‘특발성 척추측만증’도 그의 주된 연구 분야 중 하나다.
이 교수는 자기 절제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다음날 큰 수술이 있으면 컨디션을 해칠 만한 약속이나 모임을 갖지 않는다. 척추 수술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안전망 없는 외줄을 타는 것처럼 지금도 수술을 앞두면 긴장된다고 했다. 20년 넘게 수많은 척추 수술을 하면서 단 한 건의 의료사고도 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또 엄청난 독서광이다.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본 뒤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다방면의 서적을 속독(速讀)하는데, 특히 역사에 관해선 ‘무불통지(無不通知)’라 할 만한다. 어쩌다 그와 마주앉아 역사 얘기가 나오게 되면 두세 시간은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이춘기 교수가 그보다 두 살 많은 친형이다. 2000년 이춘기 교수와 함께 ‘상식을 뛰어넘는 병, 허리 디스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