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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주보 제1890호 부활 제5주일(2020.5.10) 지팡이 마당 열등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본당 활동을 그만두려고 몇 달째 고민하고 있다는 A씨는 함께 활동하는 자매에 대한 열등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뛰어난 사람이라 함께 일할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 주눅이 들고, 흠잡을 데 없는 사람에 대해 계속 시기심을 품고 있는 자신이 실망스럽다고 했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위축되며, 때로 대인관계 기피와 같은 등의 방어적 행동이나 정서적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열등감은 바오로 사도가 ‘육의 행실(갈라 5,19)’로 경계했던 시기심(젤로스 ζῆλος)의 주요인이 됩니다. 사도행전(갈라 5,17-19 참조)에서는 사도들을 몰아세우는 유다인들을 통해 시기심이 지닌 파괴적 특성을 보여줍니다(5,17 참조).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같은 단어(ζηλός)가 하느님을 향한 ‘열성, 열정(로마 10,2; 요한 2,17 참조)’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는 것입니다. 마치 적개심으로 폭주하는 시기심과 생명력을 향해 뻗어가는 열정이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심리학자로 꼽히는 아들러는 열등감을 삶의 원동력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의 성장과 진보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적응과 노력의 결과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등감은 이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콤플렉스(complex)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칼’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기도, 죽이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열등감은 나 자신과 타인을 향한 적개심의 에너지로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빚어 만드시고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하신 주님의 눈길 안에 깊이 머문다면 우리 안의 열등감은 생명의 에너지로, 나와 세상을 살리는 사랑의 힘이 될 것입니다. 산수유,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도 감탄조차 조심스러운 봄이었습니다. 그러나 꽃들은 우리의 찬사 없이도 저마다 아름다움으로 봄을 피워냈습니다. 주님 시선 안에 뿌리내려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지 않기에 서로의 아름다움을 시샘하지 않고 당당히 어우러져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마음의 계절도 하느님 안에 고유한 꽃을 피우며 내내 아름다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글 | 배기선 영덕막달레나 수녀 (성바오로딸수도회, 심리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