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모든 날에 로그인’하고 싶다
김애자
해마다 10월 첫 주엔 남편과 밤을 줍기 위해 배낭과 자루 하나를 트렁크에 싣고 집을 나선다.
충주에서 원주로 가는 4차선 도로를 30분 정도 달리다 2차선 소읍으로 들어서면
황금빛으로 평정된 들녘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세운다. 멀리서부터 깃을 세우고 달려오는
서풍에 노랗게 일렁이는 물결이 탐스럽다. 올해도 추수가 끝나면 저토록 허실 없이 잘 영근 낱알이
손끝에 풀물 한 번 들여 본적 없는 도시인들의 양식이 되어줄 것이다.
하여 가을엔 모든 날에 로그인하고 싶어진다.
허수아비를 믿고 실하게 영글어가는 조 이삭이며 수수이삭이 그러하고,
도로변 양쪽으로 줄지어 핀 코스모스 하늘거림도 그러하고,
가지가 휘도록 붉은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과수원은
구도가 잘 잡힌 회화 한 폭이다.
사방을 둘러봐다 풍요롭지 않은 게 없다. 밭둑 여기저기에서
천연덕스럽게 늙어가는 호박덩이도 로그인을 요청한다.
고랑마다 흙이 쩍쩍 갈라지도록 뿌리를 키운 고구마도 그렇고,
돌담 아래서 없는 듯 순하게 자라 열매를 키운 구기자와 산수유 역시 주인과의 소통을 재촉한다.
그러나 가을엔 해가 짧다. 여름날처럼 더디고 더딘 걸음이 아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우는
속도가 최단거리다. 해는 짧은 데 농사꾼들은 일손이 딸린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지만
녀석은 게으름보다. 게다가 절대로 사람의 부림을 당하지 않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을 두고
오죽이나 답답하면 그런 말을 지어 냈을까.
어느새 차가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눈에 밟히던 풍경들이 와락 달려든다.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20년 동안 이웃사촌으로 지낸 이들과 만나 저간의 안부를 주고받노라면
따뜻한 온정이 피돌기를 탄다.
두루두루 인사를 치르고서야 산으로 들어간다.
밤나무 단지는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수렛골로 들어와 곧바로
산을 매입하고 조성한 터라 성목이 되었다.
6월이면 국수발 같은 꽃을 주렁주렁 매달았다가
가을이면 바람의 작은 파동에도 알밤을 쏟아 놓는다.
흙살이 보이지 않도록 촘촘하게 너울졌던 풀도 어느덧 쇠잔해졌다.
성글어진 풀밭에서 고라니 눈동자처럼 맑은 알밤을
손길 빠르게 주어 자루에 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긋게 된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초목들은 저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땅으로 돌려보내는 지성스러움에 감복해서다.
알밤은 사람을 홀린다. 점심시간도 한참 지닌 터라 밤 자루를 추슬러 트렁크에 실어 놓고
잠시 산 아래로 시선을 돌린다. 나지막한 지붕들 사이로 감이 익어가고 있다.
시내버스 종점 앞에 사는 이씨 노인은 콤바인으로 벼 수확이 한창이다.
굉음을 울리며 기계가 지나갈 적마다 벼 포기가 가지런히 쓸려 들어가면
벼 알갱이는 자동으로 정부미 자루에 담길 것이다.
농촌에선 콤바인이 효자다.
그러나 정부미 자루를 창고로 옮기려면 이웃들의 울력이 필요하다.
남녀구분 없이 도움을 청하면 달려와 힘을 보탠다.
평생 붙박이로 살아온 터수라 네일 내일이 따로 없다.
급하면 서로 돕는 두레정신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80대 중반 노인들이지만 농사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땅을 놀리는 건 죄가 된다는 인식이 골수에 배어서다.
자식들은 임대로 맡기라하지만 6대 4란 비율이 성에 차지 않아 올해도
손수 농사를 지었을 터이다. 아내 또한 사철 몸빼 차람으로
농사를 거드는 덴 이골이 났다.
오늘도 해종일 혼자서 조밭으로 들어가 고랑고랑을 넘나들며
이삭을 잘라 마대자루에 담는 손길이 한결같다.
조와 땅콩은 손으로 짓는 작물이다. 어려움이 따르지만 수입이 짭짤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린다.
필경 해가 설핏 기울면 남편은 콤바인에서 내려와 경운기를 끌고
아내와 조 이삭이 담긴 마대자루를 싣고 이내 자욱한 마을길로 통통거리며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상강 어름이면 풍요롭던 들녘은 거짓말처럼 텅 빈다.
한해살이를 마치고 존재를 무화시키는 물리적인 형태의 변화가 사뭇 애상적이다.
이삭이 잘려나간 조와 수수대궁이 바람의 독경에 몸을 맡긴다.
가을이면 초목 중에서 가장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건 은행나무다.
된서리 두어 번만 치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제물에 잎사귀가 떨어져 내린다. 잔고 한 잎 남기지 않은 결산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사람들처럼 천국과 지옥을 나누거나 윤회도 믿지 않는다.
죽음을 죽음으로 종결을 짓는 깔끔한 웰다잉이다.
이쯤 되며 나도 로그아웃을 치고 조용히 칩거하데 될 것이다.
첫댓글 가을이
가을답게
풍성하심에
흐믓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손바닥만한 땅을 소유해도
소유하는
값을 치루며 살아야 하는 것을
두분이
참으로 보람있게
부지런히 지내시는 이야기가
바라보는 제게도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그 행복 오래도록
이어지시길
저도
바라겠습니다..
늘 건강해 주세요
지금처럼 요
봄부터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고
바람과 볕
이슬과
가끔씩 몰아치듯
쏟아지는
태풍에
거한 이름을 빌려
숨죽여가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계신 아버지 이름과
단주를
돌리고 싶은
부처님 가운데로 파고들지요
쉬운건 아무것도 없는
농사
계절의
사유함의 기대여
벅찰때도
여유롭게 얼굴
피고있는
일꾼
붉어가는 고추맛에
감지덕지
포기 차고 있는 배추
흰 살을 초록잎 너울속에
뒤져야만 보이는 무
아침마다
만나고 싶어
밭으로 향하는
발걸음
가상해 하는 오늘
주름은 구릿빛으로
촌티
만발이지만
가을처럼
건강해 보여
그저 두손 모와
감사에 미소로
아침밥상을 차리지요
풍요와 넘치는 행복
글속에서
나를 보았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두 분 선생님 감사합니다.
1999년 가을에 들어가 꼭 20년을
살고 나왔습니다. 참깨 들깨 고구마
옥수수 농작물이란 농작물 다 심어
가꾸느라 허리가 휘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아침이면 참새들이 몰려와 깨우고
밤이면 마당 가득히 떠 있는 별들과
풀벌레 울음소리.
겨울에 눈이 쌓이면 두어 달
산밖으로 나가지 않는 그 오붓한
시간들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기회가 되어 주곤 했습니다.
어제 밤 한 자루 또 주어왔습니다.
가까이 살면 나누어 먹으련만.
얼굴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고
사이버공간에서만 인사를 나누고
사네[요. 이도 감사한 일입니다.
처처에 인연 닿는다지만
진정한 소통은 어렵지요.
두 분 선생님, 부디 건강하시길
바람니다.
토실토실한 밤보다 더 알찬 글에
내 마음이 다 내 글 인 듯 넉넉합니다 농사일 쉽지 않지요 그러나 땅맛 알고 나면 결코 안 지을 수 없고 힘이 붙지 않을 수 없지요
쌍수로 그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땅을 밝으면 오뚜기처럼 불끈 힘이 솟지만 몸 어느 쪽에서부터
적신호가 켜집니다
쉬엄뉘엄 하실 것을 권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월정 선생님
감사함니다.
정말 흙을 밟고 사는 것처럼
행복한 생활은 없습니다.
하나 심어 열을 거두는 생산적
가치 이전에 심고 가꾸는 그 재미가
더 쏠쏠합니다.
가을도 깊어가네요.
남한강 언저리로 곧 천둥오리와
댕기머리 물떼새가 날아올
때가 되어 갑니다.
회원님 모두 건강들 하세요.
즐감합니다
습작의 세월이 충분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