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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발’ SNS 실험이 드러낸 구 소련 독재의 잔상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올 초, 한 러시아 IT 전문가가 취미로 새로운 앱을 개발해서 스마트폰 앱 마켓에 업로드했다. 한국의 ‘정보24’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러시아의 ‘Госуслуги’ (‘국가 서비스’)와 매우 닮은 앱 다자인으로 꾸미고 이름은 ‘Мой донос’ (‘나의 고발')이라고 지었다. 사람들이 이 앱을 다운 받고,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지는 사람을 이 앱을 통해 정부에 고발하라는 농담같은 작업이었는데 이는 현재 러시아 내부 사회 분위기를 조롱하려는 의도가 섞인 것이었다. 서로 감시하면서 서로를 고발하는 행위는 러시아에서 극히 끔찍한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과거 소련의 분위기를 너무 적나라하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련시절 정부는 국민에게 서로를 감시하면서 불편한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라고 적극적으로 시민 고발을 환영했다. 지난 90년대에 소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이런 악한 행위도 곧바로 사라졌다. 그러니 지금 이런 ’나의 고발‘ 앱이 나온 것은 현재의 러시아 사회 분위기가 소련 시절로 퇴행한다고 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고발의 홍수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앱이 마켓에 등장하자 다운로드 회수가 일주일 만에 만 개를 넘었고 고발 신고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물론 앱을 통해서 한 고발의 70% 정도는 농담에 불과했다. 대부분 사용자는 즐겁게 '재미있는' 고발을 하면서 그 내용을 자기 SNS에 공유했다. 옆 건물에서 외계인들이 보드카를 비밀리에 만든다거나, 자기집 고양이가 아무래도 옆집 강아지와 연애하고 있는 것 같다는 ’고발‘이었다. 지루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환한 웃음으로 채우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생겼다. 일부 고발 건은 현 러시아의 국내 정치 상황을 반영한 진짜 고발이었다. 옆집에서 우크라이나 노래를 듣는다거나 노란색과 파란색(우크라이나 국기 색깔) 옷을 입는다는 고발도 허다했고, 특히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비판한다는 고발이 가장 많았다. 실명과 여권 번호, 핸드폰 번호나 주소와 같은 개인정보도 포함되었다. 소름 돋을 정도로 눈 앞에서 소련 분위기가 그대로 재현되는 그림이었다.
앱 개발자는 일이 생각보다 커져자 이런 마녀사냥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처음에 농담 목적으로 만든 것이 갑자기 정치화가 돼 곤란하게 됐다며 이런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고 비판하면서 일부 고발 내용을 개인정보를 빼고 공개했다. 충격에 빠질 만한 고발이 꽤나 많았다.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술자리에서 비판한 상사를 고발한 부하 직원. 오빠가 푸틴 대통령을 욕하고 징집통지서를 찢어 버렸다고 고발하면서 실거주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면서 전쟁으로 보내 달라고 하는 여동생. 개인지도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고 '우리의 적인 미국의 언어'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학교 선생님을 감옥으로 보내 달라는 학부모. 징집령을 피해 작은 마을로 도망쳐서 숨어 있는 애국심 없는 아들을 알려 주는 아버지. 밤늦게 자기 방에서 조용히 영어 뉴스를 듣거나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척과 새벽에 통화를 했다고 고발하는 이웃. 사례는 정말 많고 다양했다. 작년 2월 이후에 통과한 여러 법에 의하면 거의 다 엄중한 형사 처벌 대상인 무거운 범죄 사례이기도 하다.
불신과 고발이 아닌 통합과 화해의 사회로
소련이 붕괴한 이유는 다양하다. 미국과의 대립 및 군비 경쟁, 악화되는 경제 상황, 무능한 행정 운영 방식 등이다. 사회학 입장에서 볼 때는 사회 분위기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서로를 향한 불신, 서로의 감시와 고발, 사람들의 지속적인 불안감과 갈라치기 정책, 이 모든 요인들은 또한 사회가 무너지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 사회 속 수평적인 인맥을 파괴하고 국민 사회가 통합을 못하게 하는 정책들은 정부 입장에서 볼 때 관리가 쉬운 사회를 만드는 것 같지만 국가가 망하기 가장 쉬운 구조를 만드는 첩경이기도 하다. 사회 속에서 ‘적’을 만들어서 이 ‘적’을 공격토록 유도하는 것은 독재가 늘 애용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위험 앞에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외침이 반대의 소리를 잠재운다. 이런 ‘적’은 러시아의 경우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적 없다. 미국이 시작했다!’는 주장에서 찾을 수도 있고 한국의 경우 ‘여가부 폐지!’ 주장에서도 찾을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의 대상은 다르지만 노리는 핵심 목표는 똑같다. “분할해서 지배하라.”
‘나의 고발’ 사회 실험의 의도치 않은 결과는 러시아 현 사회가 얼마나 많이 아픈지 진단을 내린 것 같다. 러시아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참으로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몇 년,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앞으로 사회 갈라치기보다 통합, 서로 적대시하기보다 화해를 선택하는 사회가 되어야만 그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지금처럼 소수의 악한 본질을 기반으로 하기보다 다수의 선한 의도를 받들어 국가 통치를 해야 한다.
출처 : 웃자고 만든 앱에 질펀한 마녀사냥식 고발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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