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대중화 시킨 공로는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에게 있다. 두 작품 모두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었고 특히 해리 포터는 수 십년 전에 쓰여져 완결된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영화화가 진행되면서 그 후속편들이 집필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가졌다. 원작자 조앤 롤링은 시리즈를 전개시키면서, 영화를 통해 많은 대중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만난 후 인터넷 시스템에 의해 전지구적으로 어떤 정서가 공유되는 것을 목격했다. 독자와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 식으로든지 해리 포터의 앞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는 동화처럼 투명하고 싱싱한 언어와 화면으로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해리포터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초기의 풋풋한 소년에서 턱밑의 수염이 거뭇하게 보이는 청년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내용 면에서도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마법을 배우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중심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선과 악의 대결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긴장감을 띄게 된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7편으로 예정된 시리즈물의 5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서 4편에 이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파고 들어가고 마법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어둠의 세력과 대결을 펼친다.
이제 그는 키스할 나이가 되었다. 둥근 검은테 안경을 쓴 귀여운 해리 포터는 사라졌지만, 성장기의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그는 믿음직하고 건강한 청년으로 변신 중이다.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를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만큼 로맨틱한 가슴을 갖고 잇으면서도 악의 무리에 대항해서는 온 힘을 다해 처절하게 싸우는 정의감으로 무장되어 있다. 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머글이 사는 리틀 위닝에 디몬터들이 나타나 괴롭히자 해리 포터는 어쩔 수 없이 패트로누스 마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기 전에 일반 사람들 앞에서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어긴 죄로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분)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퇴학된다. 그를 구해주는 사람은 덤블도어 교장선생님.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도 중심 축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이지만 예전과는 달리 학교 내의 학생들과의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뺏기지는 않는다. 다시 돌아온 무서운 어둠의 세력 볼드모트(랄프 파인즈 분)와 대결하는 해리 포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해리는 성장기의 동굴을 통과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성인의 세계 문턱까지 다다르고 있다. 악의 세력은 더욱 거대해지고 위험도 한층 증대되지만, 해리 포터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 자체가 하나의 성장소설, 성장영화이다. 가족과 학교의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다가 세상과 만나는 사춘기의 갈등과정을 거쳐 거친 세상으로 나가 성인이 되는 이야기이다. 5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의 어둠과 맞서는, 그래서 결국 홀로 서야 하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예감케 한다. 만약 시리즈의 마지막인 7편에서 해리가 죽는다면, 그것은 현실적 죽음이라기보다는, 통과제의의 기나긴 터널을 통과한 소년 해리의 죽음이다. 헤세의 데미안 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껍질을 벗고 또 하나의 세계와 만나는 상징적 죽음이다.
지금까지 해리포터 시리즈를 이끌던 삼총사 중 해리를 제외한 론 위즐리(루퍼트 그린트 분)나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분)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해리 포터 시리즈는 근본적으로 해리라는 소년이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학교와 가정으로 둘러 쌓인 세계에서 벗어나 이 거대한 세계 속의 독립된 인간 존재로 우뚝 서는 이야기, 즉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리 주변보다는 해리 자체의 내면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해리는 자신의 선배이자 스승인 덤블도어 교장(마이클 갬본 분)이나 시리우스(게리 골드만 분)의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악의 세력 볼드모트와는 또 다르게 해리의 앞길을 막는 존재는 마법부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로버트 하디 분)와 어둠의 마법방어술 과목 교수인 돌로레스 엄브릿지(이멜다 스텔톤 분)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분홍색으로 치장된 엄브릿지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와 행동은 5편을 재미있게 만드는 가장 큰 감초 역할을 한다. 어둠의 제왕 볼드모트가 되돌아왔다는 해리의 말을, 엄브릿지를 비롯한 학교 내의 모든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오히려 해리를 거짓말장이로 몰아붙인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 해리는 어둠의 마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빛과 어둠의 거대한 대결로 구성된 선악의 분명한 대립구도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도 계속된다. 최후의 대폭발로 다가가는 점증되는 긴장의 고조감을 느낄 수 있다. 시리즈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내적 긴장감이 튼튼하게 유지되고 해리의 내면 세계에 대한 깊은 분석이 시도되고 있는 이 작품을 연출한 사람은 영욱 TV 드라마의 뛰어난 연출자 데이빗 예이츠이다. 그는 시각적 볼거리에 치중하지 않고 캐릭터의 입체적 구축을 시도한다. 그래서 각 인물들간의 힘의 균형이나 갈등과 마찰이 섬세하게 살아나고 있다.
14년전 볼드모트의 악의 무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단체 불사조 기사단의 등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리즈가 빛과 어둠의 세력이 대결구도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부모님의 죽음으로 어린 시절부터 외롭게 자란 해리 포터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했고 세상의 악을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에 맞서 개인 대 개인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빛과 어둠의 집단적 싸움으로 판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해리는 자신의 부모님도 불사조 기사단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불사조 기사단으 ㄹ이끄는 시리우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해리의 아버지 제임스의 친구였던 시리우스와 해리의 정신적 유대는 외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에게서 부성을 느끼는 해리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가슴 시린 아픔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5편의 가장 큰 대중적 관심은 해리와 초쳉(케이티 렁 분)의 키스씬이다. 이 키스씬은 해리에게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는 하나의 인증이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라는 것을 이 키스씬만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전 세계의 해리 포터 팬들은, 10살의 어린 소년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1편에 출연했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성장과정을 영화를 통해 확인했다. 그의 첫 키스씬은 해리 포터라는 역중 인물뿐만 아니라 한 배우로서 성장해 가고 있는 다니엘의 성장사를 보여 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마법사의 세계가 어디에 있을까? 슈렉처럼 겁나먼 왕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런던 시내 아파트 속에 숨겨진 공간이기도 하고, 마법부 장관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시내의 빨간 공중번화 박스로 들어가면 된다. 공중전화 부스는 엘레베이터가 되어 지하로 내려간다. 우리의 일상생활 곁에 마법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더욱 친근감 있게 만들어준다.
금지된 숲에 사는 반인반마 켄다우로스나, 엄브릿지에 의해 호그와트에서 쫒겨나는 거인 그롭, 말과 용이 합쳐진 것처럼 날개 달린 세스트랄은 환타지 장르의 독특한 재미를 주는 상징적 요소들이다. 친구들 사이의 강한 우정, 그리고 진심 어린 마음이 세상의 악과 대항해 싸우는 가장 위대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마지막 부분은 덤블도어 교장과 볼드모트의 대결로 이루어져 있다. 해리의 악몽은 단순히 악몽이 아니라 미래를 예지하는 악몽이고, 그의 내면을 조정하는 어둠의 제왕 볼드모트의 힘이 작용된 악몽이다. 원작자 조앤 롤링은 해리의 성장과정을 통해 한때의 악몽처럼 지나간 사람들의 청춘시절을, 그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