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 이희득
전남 장성향교의 하마비를 촬영 하려고 가니, 입구에 선정비가 여러 좌 있어, 사진 촬영을 하였는데, 그 중에 이면상의 비가 있다.
그 당시에는 어사 이면상의 불망비 보다 이름이 알려진 원두표
비에 관심이 많아, 원두표 선정비 사진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나중에 보니 원두표 선정비의 사진은 촬영을 잘 하였는데, 이면상의 비의 사진은
엉망이고 명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023년에 7월에 다시 가서 촬영 하였지만 제대로 된 명문을 확인하지 못 하였다.
사진을 여러 장 촬영하여, 서울에 계신 고문헌 연구소 대표이신 김상환 선생님께 부탁하여 비의 명문과 풀이를 하였다.
어려운 작업인데 쉽게 하시니 필자로서는 김상환 선생님과 인연이 큰 행운으로 생각된다.
비의 명문과 풀이는 다음과 같다.
비제: 직지사이공면상영세불망비(直指使 암행어사의 다른 표현이다.
李公冕相永世不忘碑)
聖主之心 성스러운 임금의 마음은
當明則燭 밝혀야 할 때는 비추고,
明見萬里 만 리를 환하게 보셔서
及於逃屋 피난 간 집에까지 미쳤네.
選公於■ 이에 공을 선임(選任)하셨으니
往哉汝■ 가서 그대 직임(職任)을 수행하게.
孰寃孰■ 누가 원망하고 누가 허물하랴,
■鬱■白 너무 답답하여 와서 고백하네.
公哉攬轡 남비(攬轡) : 지방관으로 부임했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범방(范滂)이 기주 자사(冀州刺史)로 나갈 적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서는 천하를 정화할 뜻을 개연히 품었다.〔登車攬轡 慨然有澄淸天下之志〕”는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지방 장관으로 부임할 때, 혹은 난세에 혁신 정치를 행하여 백성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비유한다. 《後漢書 卷97 黨錮列傳 范滂》
공은 고삐를 잡고 가서
澄淸乃職 직분(職分)을 맑게 다스렸네.
생략......중간부분
■也可忘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其志海■ 그 뜻이 바다와 같았네.
口有豊碑 : 공적을 기록한 거대한 석비(石碑)를 말한다.
사람의 입에 커다란 비석이 있어서
又彛之石 또 돌에 새겼다네.
匪公伊私 공께서 사사로이 하신 게 아니라
蓮種于德 德으로 연꽃을 심으셨네.
有寃莫虛 원한이 있어도 헛되지 않으리니
迨公永復 공께서 길이 회복하시리.
上之二十八年辛卯九月 日 司果 立
주상(主上, 고종(高宗)) 28년 신묘년(1891년) 9월 일에 사과(司果) 세움
남아 있는 어사 선정비 중 頌詩의 내용이 가장 많으며, 한자의 풀이도 어렵다.
장성에 있는 이면상의 비는 어떤 이유로 많은 글을 새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석을 세우는 일 그리고 碑身에다 글을 새긴 다는 것은 수 많은 백성들의 고초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댓글 비의 원문을 원하시는 분은 따로 연락주세요 많은 내용이 있고 고생 해서 만든 자료이라서 전부 밝히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