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처음 내가 태어난곳 바로 그곳은 강원도 양구다...
그곳은 교회 피아노 반주자 셨던 어머님의 모습에 반하여 결혼을 하게된 아버지가 군생활 하셨던곳이
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어린시절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게 문제지만... 난 그후로 여러곳을 이사한뒤 나주 반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영농 회장이였고..... 마을 이장이셨다... 그리고 축사도 하셨었는데.... 아마 그 축사 이름이
영화농장이였을 것이다....
이게 나의 어린시절의 배경이다....
그런 어린시절의 배경엔 예절을 중시하고 정이 많으셨던 할머니와 함께 있었던 추억이 있다.....
나의 할머니.... 아주 오래전 한국인이긴 하지만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터지던 시절에도 일본에 계셨었다...
듣기로는 그 당시의 공포와 두려움은 상당했다고 말을 하셨던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말씀은 그렇게 없으시지만.. 어느누가 보더라도 착하시고 인자하신 그런 분이다..
그에 반한 우리 아버지 엄하시고 밖에서는 말씀을 잘 하시지만 집안에서는 거의 말씀을 안하시는
진짜 옜날 분이셨던건 확실하게 느껴지는 한국에 진짜 아버지 상이긴 틀림 없다..
아~!~~ 유일하게 누나 하나 있다.....
지금은 조카랑 매형이랑 같이 우리집에서 묶고 있는...... 정말... 동생인 나도 칭찬해주고 싶을만한....
인품과 닭살돋게 친절한 매형까지도..
요세 우리 조카 유진이의 포스에 가족들 모두 까무러친다...
이녀석은 미국 시민권이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근데 지금은 한국에 와있기 때문에
아직은 이중국적이라는.. 멋진 뉘양스를 풍기는 녀석이라.... 참~~~~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매형은 광주사람이다.... 우연찮게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차에 한국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만나게된....
정말이지 인연은 인연인 누나네 부부다...
자 이게 현제 우리 가족과 시골에 있던 과거를 같이 끄집어 냈다...
그럼.. 이제 정말.. 다시 오래전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나는 도시의 추억도 많지만.. 그에 반해 오래 기억에 나는건 정말 시골에서의 추억이다.....
그때 당시 부흥 장터가 서면... 유독 우리 할머니는 막걸리를 거하게 드시고 오시곤 하셨다...
술을 즐기시는걸 좋아 하셔서 그러셨던지.. 정말 기억에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들이 상당히 많이 기억에
남아 있다..
어렸을때 예의와 범절은 항상 누나와 나의 자세까지도 항상 몸에 배게 만드셨으며
항상.. 말씀하셨던것중 몇가지가 있는데 지금도 그 말씀과 행동을 중시하는것중 두가지가 있다...
어른이 어떤걸 건내주면 두손으로 받고... 항상 무엇이든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는것...
그건 어른이 되고 난뒤에도 꼭 지키고 있다.....
그렇게 어린시절.... 어르신들의 엄격한 가르침으로 누나와 나는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도로 확장으로 집이 밀리게 되면서.... 우리는 이 기회를 계기로 광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 MBC 문화방송국 밑 월산 국민학교에서 한아름 문방구를 오픈하며 도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누나와 함께 월산국민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고 난 4학년 누나는 5학년에 입학하였다...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1년빨리 다니게 되서 실제로 지금 친구들은 나보다 1살이 더 많다....
그래서 누나와도 4학년 5학년 이렇게 1년차이밖에 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론 2살차이가 나는게 맞지만..
암툰.. 그렇게 우리들은 학교를 다니고 어머님은 문방구를 하시고.. 할머니는 주변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시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아버지는 문방구를 같이 하시다 좀더 버시겠다고 유리가계에 유리기술을
배우시면서 유리업에 종사하시게 되었다..
할머니는 누나랑 같이 한방을 쓰셨었는데... 어느날...... 전화를 하러 가신다며 육교를 건너시다 넘어지셔서
정강이뼈가 뿌러졌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기독교 병원에서 병원신세를 지시고 아버지는 그런 일때문에 대출까지 받으시면서 할머니의 병원비를 충당하셨다..
그후로 한동안... 건강하시다.. 어느순간.. 밖에 나가기 귀찮으시다며.. 방에 누워계시다 어느순간....
다리가 구부러진체 굳어 버리셔서.....그 후론쭉.. 할머니는 밖에 나가실수 없었다......
난 이때 할머니가 다시 돌아오실줄 알았다...
하지만 한번 굳어 버린 다리는 원상복귀 돼지 않았고..
이때부터 어머니는 어른용 기저귀와 이유식으로 할머니를 간호해 드리고 있었다...
친척들은..... 명절때나 잠깐 할머니를 뵙고...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고 있었다...
이렇게.. 할머니와 나와 우리가족들은... 할머니의 병수발과 함께... 정말... 하루하루....
정성 들여.. 할머니 수발을 들어 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문방구는 장사가 안되서... 팔고.. 우린 다시 대창주유소 근처..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사우나 뒷쪽 집이라 습이 많은집이였던지..
심심찮게 바퀴벌레를 목격할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 이렇게 큰 바퀴들이 두 날개를 활짝 펴며 잘 날아다니는것들이 신기하겐 보이진 않았다..
그저 징그럽고 놀래기만 했을뿐...
이때 바퀴벌레 후일담도 있다....
하루는 대학에 강의를 들으러 가방을 싸고 학교를 갔는데
강의실에서 교제를 꺼낼려고 가방을 여는순간 먼가 시커먼 녀석이 재빠른 속도로 내 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있다.. 교수님의 양복 바지를 통로삼아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세 이녀석이... 와이셔츠 손목까지
올라갔다... 순간 학생들은 교수님 바퀴벌레요..라며.... 이구동성으로 그 위치를 외쳤고.. 교수님은 손사레를 치며
바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셨다....
원인제공자는.. 완전범죄를 위해.. 그 사건은 학교에서 일절 함구하였고... 그 원인은 아직까지도 미궁속에
빠져 있을것이다..
이게 나의 첫 바퀴벌레와의.. 여행의 시작이였다...
그리고 그 사건을 집에 와서 누나랑... 신나게 웃으며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다...
자 그럼.. 그럼 화제를 원점으로 돌려서 내 이야기의 주인공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그때 이사한 주택에서 몇달간 잘 계시다 갑자기 치매가 오셨다..
밥을 먹었는데.. 안먹었다고 훈계를 하시고.... 틈만나면.. 어머님에게 역적을 내셨다...
그때 풋풋했던 20대 시절이라 그랬던지 내가 느끼기엔 예전에 느꼈던 할머니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그런 모습들이 머리속에서 그려졌던것같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어느순간... 할머니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시게 되는 시점이 생기셨다..
사람은... 어릴적 그리고 청년시절 죽음이라는게 두렵긴 하지만 그걸 체감하기엔 좀더 시간이 흘러야 하기 때문에
시한부 인생이 아닌 이상은 그것때문에 삶에서 허덕이진 않는다...
그런데 나이지긋하신... 노인들은 틀리신 모양이다...
아마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점점 현실로 느껴지는게 두려우셨던 모양이다..
어머닌 교회 집사님 이셨고... 목사님이 할머님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기 위해
안수기도를 자청하시여 우리집에 자주 오셨다....
그런 목사님의 열렬한 신자는 우리 어머님의 신앙보다 좀더 강한 할머니의 신앙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오랜 시절.... 시골에 살때 할머니가 한 말씀이 있다...
자식과 함께 살다 그집에 나이드신 부모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정작 그 자식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걸 보시고 온 할머니가.....
우리 영화는... 내가 죽으면... 꼭 울꺼지?
우리 영화는 꼭 그럴꺼지?..... 암 그렇고 말고...
어린시절엔 그런 할머니의 말씀이 그래도 가슴에 와닫긴 했나 보다..
네.. 할머니 할머니 그럴꺼예요..
그랬다...... 할머니의 그리움이 더해지면... 아마 감정이 폭풍처럼 다가와....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고이게 된다는걸...후에 깨닫게 되었으니..
지금 바로 저 두맨트를 쓰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 버렸다........
아마 그 상황이 오버랩 되어 버린 모양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치매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 며느리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미안해서 어쩌냐.......
미안하다 우리 며느리..... 영화야... 할머니... 할머니 죽으면 영화 보고 싶어서 어떡하냐..
응?... 우리 지혜................
당당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어느순간... 다리가 굳게 되신뒤 기저기를 차신후부터.....
그 모습은 온대 간데 없고.. 더 온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셨지만...
몇년을 어머님이 병수발을 하고.. 그후엔.. 치매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보내시고 계셨다.
월산동에서........ 다시 소촌동 가천아파트로 이사하는 시점.....
그래도 주택이 좋으시다며...... 그리워 하셨던 할머니는 우리와 함꼐 아파트로 오시게 되었다...
할머니와 난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오랜시간 누워계셨던 할머니는 욕창까지 생기시게 되셨다..
그때 당시에 사람살이 썩어가는 냄세를 처음으로 맡게 되었다....
상당히 고약하고 힘들지만.... 더이상 아물지 않는 그살을 핀셋으로 뜯어내고
약을 발라 드렸지만 낫지 않았다....
어느날이였다....
새벽녘 할머니가 숨소리가 좀 이상해서 잠에서 깨게 되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어머님도 느낌이 이상해서 잠을 잘 못주무셨다고 하셨다..
헉헉 거리면서 무슨 말씀을 하실려는것 같았지만.. 어어어어 라는 소리만 들리고
몸에는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난 가족들을 모두 깨웠고 그렇게 10분이 지나자.. 할머니는 숨을 거두셨다......
이날 나는 아버지의 당황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완벽하고 계획성있는 모습만 보아왔었는데...
할머님이 돌아 가시자 아버님은 이내 당황 하셨고 여기저기 전화하셔서 일단 어떡게 해야 되는지
여쭙고 계셨다.......
그리고 이읔고.. 아버지의 한말씀.....
어머님... 이승에는 다리때문에 불폈하셨지요.. 저세상에서 편하게 걸어 다니세요 라고하시며.....
굳어 있던 다리를 위에서 강하게 누르셨고.. 이내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다리는 똑바로 펼수
있게 되셨다.......
눈물이 났다...... 오랜 기억.. 나의 할머니의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에....
그렇게 나의 할머니는 저승으로 가셨고 친척들은 모두 우리집으로와 한껏... 울고 가셨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머니를 통해... 예의와 범절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해드린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헌신해야 한다면서... 할아버지의 수발에 고생하셨던 할머니..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친척들을 먹여살리려려.. 한글도 깨우치시지 못하시고....
그 험난한 장터에서 야채를 팔아 근근히.. 살림을 유지하셨던.. 여장부 우리 할머니
영화는 그런 할머니를 잊지 못할꺼예요....
정말로.. ........
첫댓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넘쳐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쓴 글이네요.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가족사까지 솔직하게 그려낸 수필 정신이 배어 있습니다. 감정을 추적하며 글로 이끌어 내는 솜씨가 있으십니다. 가감과 정리를 하면 감동이 배가 될 듯 합니다. 고맙게 읽고 갑니다
가감 정리의 제약이 너무 끄집어 내기가 좀 그래서 망설여 지더라구요..
끄집어 내기보다 감출 줄 알아야 좋은 글인 줄 압니다. 독자는 꼭 필요한 글 만으로도 작가의 감정을 읽어내죠
주제넘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뇨~~!!!! 충분합니다. 모름지기 글이란 적정의선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글은 사람을 이해시키고 동감하기 위해 쓰기도 하지만 그 의도가 너무 지나쳐 오히려 쓰는 사람이 힘들어지면
글의 본질이 흐트러질것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