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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봉공(奉公) 제1조 선화(宣化)
5. 망위례(望慰禮)(주1)는 일체 의주(儀注)(주2)를 따라야 하나, 고례(古禮)는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망위례는 더욱 정성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만약 고례를 논한다면, 국상(國喪)을 처음 듣고는 오사모(烏紗帽)(주3)ㆍ천담복(淺淡服)(주4)ㆍ흑각대(黑角帶)(주5)로 뜰 가운데에 나아가 곡하고, 바깥뜰로 물러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서 우곡(又哭)(주6)해야 한다. 우곡(又哭)이란 분상례(奔喪禮)(주7)에서 이른바 오곡(五哭)(주8) 중에 제2곡이다.
《예기(禮記)》에, “우곡에서는 괄발(括髮)ㆍ단(袒)ㆍ성용(成踊)(주9)한다.” - 분상편(奔喪篇)에 나오는 글이다. - 하였는데, 들어갈 때 오사모와 망건을 벗고 상투를 풀어서 묶은 머리를 만들되, - 머리털을 잡아뀌고 두세 번 말아둔다. - 삼끈으로 묶는 것이니 괄발이라 한다.
임금의 상사 때 괄발하는 것은 고례(古禮)에 지극히 엄한 까닭에, 《의례(儀禮)》 〈빙례(聘禮)〉에, “복명(復命)하고 나와 단(袒)하고 괄발하고 자리에 나아가 곡용(哭踊)한다.” 하였고, 《춘추전(春秋傳)》에, “공손귀보(公孫歸父)(주10)가 진(晉)에 사신갔다가 돌아와 생(笙)(주11)에 이르러서 단(壇)을 만들고 휘장을 드리우고서는 복명하고, 단하고 괄발하고 자리에 나아가 곡하고 세 번 곡용하고서 나왔다.” - 선공(宣公) 18년조에 나온다. - 하였다. 이 예는 폐할 수가 없다.
고례의 괄발은 소렴(小斂) 이후에 있으나, 상사(喪事)가 있음을 듣고도 분상(奔喪)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곡에서 이미 괄발하였으니, 삼곡(三哭)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 삼곡은 소렴의 곡을 의미한다. -
오늘날 의주(儀注)에는 모두 괄발에 대한 설이 없으니, 외관(外官)(주12)이 혼자 행할 수는 없으나, 고례는 알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좌단(左袒)(주13)하고 들어가 곡하여 지극히 애통해하고 나온다. - 비록 괄발하지만 이내 천담복과 흑각대를 착용한다. -
이에 패전(牌殿)의 외정(外庭)에다 집을 기대어 여(廬)를 - 속명은 여막(廬幕)이라 한다. - 짓고, 여기에서 거처하면서 죽을 먹는다. - 임금의 상을 당하여 여막에서 지낸다는 것은 《예기》 〈잡기(雜記)〉에 보이고, 임금의 상을 당하여 죽을 먹는다는 기록은 《예기》 〈단궁(檀弓)〉에 보인다. -
이날 수질(首絰)(주14)ㆍ요질(腰絰)(주15)ㆍ교대(絞帶)(주16)를 만들어 석곡(夕哭) 때 사용한다. - 해질 때에 석곡을 행한다. - 만일 상을 늦게 들은 사람은 삼곡(三哭)에 질대(絰帶)(주17)를 사용해도 좋다.
그 이튿날 삼곡(三哭)에는 일찍 일어나, 천담복(淺淡服)에서 오사모와 흑각대는 버리고 포건(布巾)(주18)과 질대를 갖추고 들어가서 자리에 나아가 곡을 한다. - 괄발은 그대로 고치지 않는다. - 한낮에 한 번 곡한다. - 이는 때없이 곡함을 의미한다. - 해가 진 후에도 곡한다.
그 이튿날의 사곡(四哭)도 위의 예와 같고 한낮과 저녁에도 그와 같다.
그 이튿날 오곡에는 일찍 일어나서 참최상(斬衰裳)(주19)ㆍ중의(中衣)(주20)에 저장(苴杖)(주21)을 짚고 괄발을 고쳐 상투를 틀며 상관(喪冠)(주22)에 질대ㆍ관구(菅屨)를 갖추고 - 포망건(布網巾)(주23)이 있어야 한다. - 들어가서 자리에 나아가 곡하고, 성복(成服)(주24)한다.
요즈음 의주에는, “상을 들은 지 6일 만에 성복한다.” 하였으나, 고례에 있어서 천자와 제후의 상에는 먼저 성복하고 후에 대렴(大斂)(주25)한다. - 내가 지은 《상례사전(喪禮四箋)(주26)》에 자세히 보인다. -
그 꼭 6일 만에 성복한다는 것은 후세에 와서 실례(失禮)한 것이다. 그러나 의주가 이미 그러하니, 부득불 모두 의주를 따를 수밖에 없다.
요즈음 풍속에 소렴(小斂)(주27)의 질은 따로 단고(單股)(주28)를 사용하나, 그것은 예가 아니니 - 단고는 조객(弔客)의 질(絰)이다. - 마땅히 쌍규(雙糾)(주29)의 질을 사용하여야 한다.
요즈음 풍속에 교대(絞帶)는 세 겹, 네 가닥으로 되었는데, 예가 아니니, - 세 겹 네 가닥은 갈대(葛帶)의 제도이다. - 쌍규의 띠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성복하고 정당(政堂)으로 돌아와서 임시로 포사모(布紗帽)(주30)ㆍ백포의(白布衣)(주31)ㆍ교대를 착용하고 백성에게 임한다.
매양 초하루ㆍ보름날에는 최상(衰裳)ㆍ질대로 예에 따라 망곡(望哭)한다.
현궁(玄宮)(주32)에 장사를 지낸 후에는 우(虞)ㆍ부(祔)ㆍ연(練)ㆍ상(祥)(주33)에 모두 예에 따라 망곡(望哭)한다.
내전(內殿 왕비)의 상사 때는 괄발(括髮)하지 않고 포건(布巾)으로 대신한다. - 포건은 옛날의 문(絻)(주34)이다. - 그 오곡(五哭)은 모두 위의 예대로 하되 여막(廬幕)에 거처하지도 않고 죽을 먹지도 않는다.
[역주]
[주-D001] 망위례(望慰禮) : 국상(國喪)이 났을 때 대궐을 향하여 조위(吊慰)하던 예식이다.
[주-D002] 의주(儀注) : 나라의 전례(典禮) 절차를 적은 것이다.
[주-D003] 오사모(烏紗帽) : 관복(官服)을 입을 때 쓰던 사(紗)로 만든 벼슬아치의 모자이다.
[주-D004] 천담복(淺淡服) : 엷은 옥색의 제복(祭服)이다.
[주-D005] 흑각대(黑角帶) : 검은 빛의 각띠이다.
[주-D006] 우곡(又哭) : 다시 곡한다는 뜻인데 오곡(五哭)의 제2곡이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의하면, “분상자(奔喪者)가 빈소(殯所)에 이르러서 일곡(一哭)하고, 그다음 날 소렴(小歛) 때 이곡(二哭 우곡(又哭)임)하고, 그다음 날 대렴(大歛) 때 삼곡(三哭)하고, 또 그다음 날 성복(成服) 때 사곡(四哭)하고, 또 그다음 날 오곡(五哭)한다.” 하였다.
[주-D007] 분상례(奔喪禮) : 분상(奔喪)의 예(禮)이다. 〈분상(奔喪)〉은 《예기(禮記)》의 편명이다.
[주-D008] 오곡(五哭) :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의하면, “분상자(奔喪者)가 빈소(殯所)에 이르러서 일곡(一哭)하고, 그다음 날 소렴(小歛) 때 이곡(二哭 우곡(又哭)임)하고, 그다음 날 대렴(大歛) 때 삼곡(三哭)하고, 또 그다음 날 성복(成服) 때 사곡(四哭)하고, 또 그다음 날 오곡(五哭)한다.” 하였다.
[주-D009] 괄발(括髮)ㆍ단(袒)ㆍ성용(成踊) : 괄발은 머리를 매는 일, 단(袒)은 옷을 벗는 일, 성용은 슬픔을 못 이겨 발을 구르는 일이다.
[주-D010] 공손귀보(公孫歸父) :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장공(莊公)의 손자이며 양중(襄仲)의 아들인데, 자는 자가(子家)이다.
[주-D011] 생(笙) : 노나라 국경에 있던 땅 이름이다.
[주-D012] 외관(外官) : 여기서는 지방관(地方官)을 가리킨다.
[주-D013] 좌단(左袒) : 왼쪽 소매를 벗는 일이다.
[주-D014] 수질(首絰) : 상복(喪服)을 입을 때 머리에 두르는 테두리로 짚에 삼을 섞어서 굵은 동아줄 같이 만든다.
[주-D015] 요질(腰絰) : 상복을 입을 때 허리에 띠는 띠로 짚에 삼을 섞어서 꼰 것이다.
[주-D016] 교대(絞帶) : 상복에 띠는 짚과 삼을 섞어서 꼰 띠이다.
[주-D017] 질대(絰帶) : 수질(首絰)ㆍ요질(腰絰)과 교대(絞帶)를 가리킨다.
[주-D018] 포건(布巾) : 베로 만든 것이다.
[주-D019] 참최상(斬衰裳) : 거친 베로 만든 상복의 하의(下衣)이다. 거친 베로 짓되 아랫도리를 접어서 꿰매지 않는다.
[주-D020] 중의(中衣) : 상복 속에 입는 옷이다.
[주-D021] 저장(苴杖) : 상제가 짚는 지팡이로 대나무나 오동나무를 잘라서 만든다.
[주-D022] 상관(喪冠) : 상중에 쓰는 관(冠)이다.
[주-D023] 포망건(布網巾) : 베로 만든 망건을 가리킨다.
[주-D024] 성복(成服) : 초상이 났을 때 처음으로 상복을 입는 일이다.
[주-D025] 대렴(大斂) : 소렴(小斂)을 행한 다음 날 시체에 옷을 거듭 입히고 이불로 싸서 베로 묶는 일이다.
[주-D026] 상례사전(喪禮四箋) : 시사(始死)ㆍ습함(襲含)ㆍ소렴(小斂)ㆍ대렴(大斂)ㆍ기빈(旣殯)ㆍ장(葬)ㆍ우제(虞祭)ㆍ졸곡(卒哭)ㆍ부제(祔祭)ㆍ기장(旣葬)ㆍ소상(小祥)ㆍ대상(大祥)ㆍ담제(禫祭) 등의 순으로 상례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고 부록으로는 분상(奔喪)ㆍ방상(方喪) 등이 열기되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3집에 수록되었다.
[주-D027] 소렴(小斂) : 시체에 옷을 입히고 이불을 씌우는 일이다.
[주-D028] 단고(單股) : 외가닥으로 꼰 삼끈을 가리킨다.
[주-D029] 쌍규(雙糾) : 두 가닥으로 꼰 것이다.
[주-D030] 포사모(布紗帽) : 베로 만든 사모이다.
[주-D031] 백포의(白布衣) : 흰 베로 만든 옷이다.
[주-D032] 현궁(玄宮) : 여기서는 광중(壙中)을 가리킨다.
[주-D033] 우(虞)ㆍ부(祔)ㆍ연(練)ㆍ상(祥) : 우는 초우(初虞)ㆍ재우(再虞)ㆍ삼우(三虞)의 총칭으로 반혼(返魂) 후에 행하는 제사, 부는 졸곡(卒哭) 다음 날 지내는 제사, 연은 소상(小祥), 상은 대상(大祥)이다.
[주-D034] 문(絻) : 상관(喪冠)이다.
望慰之禮。一遵儀注。而古禮不可以不講也。
望慰之禮。尤宜恪愼。若論古禮。國恤始聞。宜以鳥紗帽,淺淡服,黑角帶。往哭于庭中。退出外庭。改服入。又哭。
〇又哭者。奔喪禮所云。五哭之第二哭也。禮曰。於又哭。括髮袒成踊。奔喪文。 將入宜脫鳥紗帽。脫綱巾。解髻爲髺。聚髮而再三屈之而已。 用麻繩撮之。此所謂括髮也。
〇君喪括髮。古禮至嚴。故聘禮云。復命出袒括髮。卽位踊。春秋傳云。公孫歸父聘于晉還。及笙壇帷復命。袒括髮卽位。哭三踊而出。宣十八。 此禮不可廢也。古禮括髮。在小斂之後。而聞喪不得奔者。於又哭。已括髮。不待三哭也。三哭。象小斂之。 今之儀注。皆無括髮之說。外官無以獨行。然古禮不可以不知也。
〇乃左袒入哭盡哀出。雖括髮。仍著淺淡服。黑角帶。
〇仍於牌殿外庭。倚屋爲廬。俗名曰廬幕。 居廬食粥。君喪居廬。見雜記。君喪食粥。見檀弓。
〇是日。作首絰腰絰絞帶。用之於夕哭。日入時夕哭。 若聞喪在晚者。於三哭。用絰帶亦可。
〇厥明三哭。夙興淺淡服。去紗帽角帶。具布巾絰帶。入卽位哭。括髮仍不改。 日中一哭。以象無時哭。 日入一哭。
〇厥明四哭。如上禮。日中日入。亦如之。
〇厥明五哭。夙興斬衰裳。中衣苴杖。乃改括髮爲髻。加喪冠。具絰帶,菅屨。宜有布網巾。 入卽位。哭以成服。
〇今之儀注。聞喪六日。乃成服。然古禮天子諸侯之喪。先成服。後大斂。詳見余禮箋。 其必六日而成服者。後世之失禮也。然儀注旣然。不得不一遵儀注。
〇今俗小斂之絰。別用單股。非禮也。單段者。弔客之絰。 宜用雙糾之絰。
〇今俗絞帶。爲三重四股。非禮也。三重四股者。葛帶之制。 宜用雙糾之帶。
〇旣成服。乃還政堂。權著布紗帽,白布衣,絞帶。以臨民。
〇每至朔望。以衰裳絰帶。瞻哭如禮。
〇及葬。下玄宮。虞祔練祥。皆望哭如禮。
內殿之喪。不括髮。以布巾代之。布巾者。古之絻也。 其五哭。皆如上禮。不居廬。不食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