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이 미사에서는 흰색 제의를 입는다. 수확을 위한 기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말씀의 초대
요엘 예언자는, 우리가 한껏 배불리 먹고,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한다(제1독서). 요한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본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16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104(103),13-15 참조
주님,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당신은 땅에서 양식을 거두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 흥겹게 하는 술을 주시나이다.
오늘의 묵상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한가위에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쁨과 형제애를 나누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조상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도리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도 당신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라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복음은 아름다운 이론이나 추상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길입니다. 명절에 가족이 함께 모여 나누는 사랑은 신뢰를 쌓고, 소통을 통하여 이해와 깊은 유대를 형성합니다. 하상욱 시인은 가족을 ‘영어’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게 표현이 잘 안 되기” 때문이랍니다. 또 때로는 ‘한국어’ 같다고도 합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참 모르겠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가족은 어떠한가요? ‘영어’ 같은가요? ‘한국어’ 같은가요? 우리가 마음으로 대화한다면 우리 가족은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나눔과 희생을 통한 사랑의 언어’와 같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이를 이웃과 나눔으로써,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풍요로운 한가위에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마지막 날을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 죽음 앞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 덕분에 살아갑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눈다면 더욱 행복한 한가위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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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1일 한가위
♡갑곶성지 조명연 신부님♡
얼마 전에 글을 쓰다가 갑자기 꽉 막히는 기분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적이 이제껏 없었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느낌이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옛날에 썼던 글들을 펼쳐보았습니다. 거의 20년 전에 썼던 글인데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것도 글이라고 인터넷에 자신 있게 올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글을 봐주신 신자분들에게 너무나 큰 감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른 살이 막 넘었을 때의 ‘젊은 나’와 쉰 살이 넘은 ‘중년의 나’는 같은 ‘나’일까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전혀 다른 ‘나’입니다. 왜냐하면 외모, 능력, 성격…. 모두가 다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변하는 ‘나’입니다. 언젠가 책에서 보니, 우리의 유전자도 쏵 바뀐다고 하더군요.
과거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종종 만납니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면서 후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과거의 나만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며 후회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나’도 나이지만, 현재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발전하는 ‘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발전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때로는 후퇴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자신의 노력을 통해 충분히 변화되면서 더 나은 ‘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감사의 이유를 많이 찾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변화되었음에 감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이 한가위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가족들이 모여서 먹고 즐기는 날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감사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서 예전과 같이 명절 때의 만남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가위는 분명히 아래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전해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것,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기 위해 해마다 온갖 곡식과 과일을 제공해 주는 자연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 감사를 드리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내 삶의 목표를 똑바로 두고 있으며, 그 올바른 목표를 향해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감사할 일이 많다면 그만큼 자신의 변화를 이루며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일이 없다면 불평불만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변화도 이룰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는 한가위입니다. 이 한가위를 잘 지내기 위해 특히 감사를 많이 외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이미 죽은 자처럼, 지금까지의 생을 끝낸 사람처럼, 앞으로의 인생을 자연의 순리에 맞게 덤으로 받은 생인 듯 살지 않으면 안 된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중독되지 않기.
전철을 타면 책이나 신문 읽는 사람을 이제는 보기 힘듭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요. 뉴스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재미있는 영상도 또 E-Book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시간이 나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봤었습니다. 문제는 잠깐 보는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시간을 이 기계에 쓰게 되더군요.
스마트폰은 우리의 자투리 시간을 가져가는 일종의 시간 흡수기가 아닐까요? 심지어 자기 전에도 ‘무슨 새로운 뉴스가 있나?’라면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 역시 이런 모습을 보이기에 아예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바꿔 놓고 보지 않았습니다. 괜히 불안한 마음이 밀려들기도 하고, 반드시 봐야 하는 어떤 정보를 놓칠 것만 같은 불안감도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중요한 정보가 없더군요.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 자주 실내 공기 환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귀찮지만 건강을 위해서 필수입니다. 스마트폰에 매달리지 않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필수입니다.
몸을 쓰지 않아 건강에 좋지 않고, 사회성도 떨어지고, 진짜의 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신 건강에 안 좋은 것이 스마트폰입니다. 그래서 창문을 자주 열어 공기를 환기하듯이, 자주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날을 자주 만들어 내 정신을 정화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