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렸다 지운 글 다시 올립니다. 어줍잖으나마 '단편 소설'형식이며 이번 대구참사와 관련된, 사실에 기초한 허구입니다. 제가 어제 이 글을 올렸다 지운 이유는 이 글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 때문이었습니다. 정작 무대는 대구.경북인데 글 속에서 구사하는 사투리는 부산.경남 쪽의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글의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소설적 리얼리티를 떨어뜨렸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글을 올리며 저의 잡글이 혹시라도 이번 대구참사로 인한 이들의 아픔에 한 점 누라도 끼칠까 두려워했는데 제 글이 올라 간 후 바로 대구 쪽으로 생각되는 분의 날카로운 지적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지운 것입니다.
이 글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제각기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힘겨운 회사 생활 속에 이런 식의 잡글을 통하여 마음 속 상념을 표현하곤 하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저도 이번에 아주 간접적으로나 예전에 알았던 이가 이번 사고에 관련되어 마음 속 깊이 아픔을 느끼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올렸던 것이며 그 동안 일천한 글들을 통하여 알게된 이곳-저는 오직 이 곳에 밖에 글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지인들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 한 번 다시 올려 보라는 조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것입니다. 부디 제 잡글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 , 무지하고 능력없는 이의 솜씨이니, 어떻게든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손 가는대로 마구 친 것이니, 이것 저것 헛점이 계속 보이더라도 너무 나무라지만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선물'에서는 '복권'이 주요 소재로 나옵니다. 제가 굳이 '마지막 선물'에 '복권'이라는 소재를 쓴 것은 평소에 제가 생각하는 '복권'에 대한 가치관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 대구 참사로 인하여 차마 손이 안 움직여, 글의 성격이 코믹한 글이기에 도저히 지금 이 상황에서 써지지가 않는) 끝나지 않은 '불타는 돼지 똥물에 빠지다'라는 잡글 속에서도 일관되게 유지 될 것입니다. 아울러 내일은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구입하지 않았지만, 다음주 이후 내내 구입할 복권에 대해 가지는 저의 일관된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글을 올린다면 계속하여 이러한 가치관에 근거한 '복권'과 관련된, '당첨'과 관련된, 어쩌면 '나'의 이야기 또 어쩌면 ' 당신'의 이야기를 올릴 것입니다.
혹시 대구.경북 분들이 읽으매 사투리의 구사가 거슬리더라도 제가 경상도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니-제 절친한 친구가 부산사람입니다- 너그러운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다만, 글 속에서 제가 이번 사고의 고인들에 대해 표현하려했던 안타까움만 읽어 주시기 부디 바랍니다.
늦은 이 시간, 무심한 서울 하늘에서 새벽을 적시며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누구들은 이 밤에도 계속하여 하늘 아래 둘 도 없을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묻은 채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저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이번 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노라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온 가슴팍이 심하게 저립니다. 저 같으면 도저히, 아마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천한 글에 변명을 마치며 다시 한 번 이번 사고에 넋들에 명복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잔인한 세월에 이리 저리 휘둘리며 나를 따라 퇴색해 온 결혼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9시 50분. 10시에 중앙로 역에서 정님이를 만나기로 하였으니 거의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 할 듯 싶었다.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아직도 명아에게는 아무런 메시지 한 줄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이고마야, 따순데 있으니까 몸이 막 녹네 그쟈?"
"그케 말이다. 전철안이 후끈하네,"
"이게 그 뭐냐 95년인가 몆 년에 상인동 빵 터지고부터 마이 신경 쓴다 아이가."
"말 마라. 내사 아직도 그 말 만 들으면 가슴이 벌렁댄다."
"그 때 증말 사람 억수로 마이 죽었다 그쟈?"
"말하면 머하노. 쌩목숨들 그냥 구뎅이에 다 파 무쳐 버렸제."
오랜 세월 친구 사이인 듯한 두 노인네가 아침부터 어딜 가는 지 살갑게 붙어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영 보기 좋다. 하긴, 나도 정님이와 벌써 몆년을 사귀었던가. 참 오래 된 묵은 내 나는 고마운 내 살붙이 친구.
-정님아, 너 내일 모하노?
누구에게도 섯불리 말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명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내겐 사람 사귈 시간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루 밤낮을 고민한 끝에 정님이와 동행하기로 결심하고 어젯밤에 전화를 했다. 내 평생에 걸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내 곁에 있어 온 친구였다. 그리고 헛된 욕심에 잠시 잊었지만 이것은 정님이가 나에게 준 선물 이기도 하니까. 당연히 정님이와 나누어야 하는 것이니까... ... 하지만 서울로 출발하기 전 언제라도 명아에게서 연락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아니, 올 것만 같았다. 그러면 바로 이 기뿐 소식을 전해 주련만. 그리고 같이 가련만. 하지만 명아의 핸드폰은 계속 전원이 꺼져 있었다. 하여, 음성이라도 남길 까 했지만 직접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
"와, 먼 일 있나?"
"아이, 뭐 별건 아이고. 내가 낼 서울 갈 일 좀 있는데 혹시 시간 되면 같이 같음하고."
"그래? 머 특별히 할 일은 없다. 근데 먼 일로? 낼 갔다 낼 오는기가?"
"그-제. 갔다 낼 바로 올끼다."
"뭔데 가스나야. 먼데 갑자기 서울을 가는기고? 니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잖아?"
"그게.. ...아이다. 내 너 만나서 직접 이야기 해 주꾸마. 하튼 낼 시간 좀 내그라."
"알았다. 그럼 니가 우리 집으로 올래? 아, 니 새벽에 하는 식당 일은 우예 하고?"
"그야 새벽에 하는 거 아이가. 아홉시면 끝난다. 그리고 나 어차피 이제 식당 일 그만 둘거
다. 낼 새벽까지만 하고 주인한테 이야기 할 거다.
"와? 와 식당일을 그만 두노? 뭔 일 있나?
"아이다. 내 낼 니 만나서 이야기 해 주꾸마. 하튼 낼 말이다 내 식당일 끝내고 전철 타고
갈 테니까 우리 중앙로역에서 아침 10시에 만나자. 나 집에 다시 들려야 한다. 너랑 우리 집
에 들려 가져 갈 것 있다."
"그래? 알았다 마. 그럼 낼 중앙로역 어서 보까? 니 혹시 극장 아나?"
"안다. 아카데민가 뭔가 하는 거기 아이가?"
"맞다. 아마 그기 2번 출구 일게다. 거기로 나오그라."
"알았다. 중앙로역 2번 출구 극장 앞에서 보자."
"그래? 알았다. 낼 갔다 낼 오면 나도 시간 된다. 근데 명아는 아직 소식 없나? 그 가스나
아직도 핸드폰 꺼 놨나?"
"아직 연락 안됀다. 할 수 없제. 지도 속이 오죽 답답하면 그카겠나."
'하이구마 그 가스나 증말 독하다. 지 에미 속 타 죽는 줄도 모르고. 하튼 고집 씨기는, 누
가 심씨 딸 아니랠까봐 고래심줄 같은 지 애비 닮아 가지고."
"고마해라. 낼 보자. 끊는다."
"알았다 마. 낼 그럼 중앙로역 극장 앞에서 10시 보자. 들어가라."
아직도 가슴이 계속 두근거린다. 내가 타고 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덜컹대는 전철 안에 노인네 둘을 포함하여 출근 시간이 지난 탓인지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혹시나 누군가 나를 쳐다볼까 하여 조심스레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바로 앞자리에 이제 갓 두 세 살이나 된 듯한 아기를 안은 새댁이 아기를 어르고 있었다. 아직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살결 뽀얀 것이 꼭 우리 명아 어릴 적 만큼이나 예쁘다.
"아주매요. 서문시장 갈라카면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게 맞는교?"
"서문시장? 다음에서 내리이소. 와? 서문 시장 가는교?"
"야. 부산에서 온지 얼마 안되는데 서문시장에서 엊그제 이걸 샀다 아입니까."
옆자리에 앉은 새댁이 품에 안고 있는 쇼핑백을 펼쳤다. 부엌에서 반찬통으로 쓰는 크기별로 다양한 플라스틱 통 하나를 꺼냈다.
"와, 머가 잘못 됐나?"
"야. 이기 통들이 잘 안 맞는다 아입니까. 이기 통들이 닫히면 아구가 딱 맞아서 틈이 없어야 하는데 아무리 꽉 닫아도 국물이 샌다 아입니까. 그래 남편 출근 시켜 놓고 바꾸러 갑니데이. 이거 가면 바꿔 주겠지예."
"그라도 이쁘잖아예. 이자 결혼한 지 얼마 않돼 살림살이 가 별로 없어예. 그래 시간 날 때 마다 하나 씩 사 모으는기라예."
"그래 좋은 때다 마. 언제 그만한 때가 또 다시 오겠나."
2.
이제서야 비로소 마음이 좀 정리되었다. 돌이켜 보니 지난 며칠 간 정말 엄마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대구에서 무작정 밤 기차를 타고 떠났는데 정작 발길은 미리 정해 놓은 것 처럼 아침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동해안의 조그만 포구로 향했다.
-명아야, 니 시집가면 첫 해 여름에 우리 온 가족 여기 한 번 놀러 오자... ...
매년 여름이면 엄마. 아빠와 함께 들렸던 곳. 우리 가족의 추억이 고스란히 아직도 남아 있는 곳. 며칠을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지난 며칠 간 터져 버릴 듯 했던 가슴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아빠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이후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던 바닷가에 앉아 아빠를 그리워하며 오랜만에 펑펑 울어 보았던 지난 며칠이었다.
-아빠... ... 보고 싶어요... ...
아무 것도 모르던 단발머리 고교 시절 아빠는 나의 전부였다. 유난히 잔손이 많이 가는 조그만 전자 부품 회사를 운영하시며 그 바쁜 와중에서도 아빠는 하루에 한 번 씩 꼭 전화를 해 주었다. 내 목소리 듣고 싶을 때면 아무 때나 전화하겠다고 그때로선 낮선 핸드폰을 나에게 마련해 주어 엄마랑 말다툼했던 기억, 결국은 엄마와 내 몫으로 두 개의 핸드폰을 마련하여 주며 고마 싸우자 두 손 들며 환하게 웃던 아빠. IMF이후 갑자기 막혀 버린 회사 자금을 구하려 이미 휴지조각으로 변해 버린 어음을 들고 밤낮으로 뛰어 다니다 쓰러진 아빠.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게 미안하다며 눈물 그렁한 그 큰 눈을 꿈벅거리던 아빠, 그리고 이어지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둔 기억, 생전 험한 일이라곤 해 본 적 없던 엄마가 새벽에 식당일 나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떠올리기 싫은 기억.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학교 가는 친구들의 너무도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얼른 숨어야 했던 기억. 세상물정이라곤 아무 것도 모르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 속에 내 던져져 턱없는 절망 속에 겪어야만 했던 기억들.
"고마해라. 내 안한다 안했나."
"문디 가스나야, 말이면 다 말인줄 아나..."
내심 불안하긴 했지만 엄마가 하도 믿을만한 사람이라 해서 맡긴 내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 갈 줄은 몰랐다. 엄마가 가입한 계의 계장이 가지고 도망 간 돈이 수 억이라지만, 그 안에 들어 간 내 돈 삼천만원은 정말이지 내 피와 땀이 배인 모든 것이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참아 가며 이 앙 다물고 모은 내 모든 것이었다. 엄마가 사채이자 몆 푼 더 벌겠다고 할 때 그 때 말렸어야 했는데... ... 하지만, 그게 다 엄마 잘못만은 아닌데... ...바보, 바보......엄마가 무얼 잘못했다고 엄마에게 그렇게 까지... ...
"하이고마 야. 내 속 다 디집어라. 꼭 그케 말해야겠나. 내 말했잖나. 나는 얼마든지 니 혼자 몸만 와도 괴안타. 근데 장손 아이가. 분명히 그케 결혼하면 주변에 노인네들 말 나올끼다 아이가. 내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듣기 싫다. 그래 내 내년 초 쯤 우리 회사에서 융자받아 니 빌려 줄테니까 그걸로, 니 돈이라카고 살림장만 하라 이거다. 그때까지만 쪼매 결혼식 미루면 되는데 와 내 심정 몰라주고 이러노. 징말 니 나 혀 물고 죽는 꼴 볼라카나."
""실타. 내 그리는 모한다. 나 결혼 안 한다."
죽어라 모아 놓은 돈 삼천만원이 어느 날 허공에 날아가면서 모든 것에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버렸다. 얼마 있다 약혼식 올리고, 내 회사 정리되는 대로 결혼식을 하리라던 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어렵사리 시작한 사회 생활 속에서 만난 지훈씨와의 결혼에 내가 가져 갈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지훈씨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하여도 거지가 아닌 다음에야 빈손으로 달랑 몸만 들어 갈 순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한 집안에 장손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번듯한 집안이 아니네, 아버지가 없네, 가진 것이 없네, 하며 은근히 눈치를 주던 지훈씨 집안 어른들의 분위기로 봐서 이 상태의 결혼은 결코 순탄치 못한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더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내 쪽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니 징말 이럴끼가. 니 내 싫나? 아이면서 와 얼라처럼 이러노. 명아야, 제발 좀 차분하게 생각하그라. 그깟 살림 해 올 돈 몆 푼 없는기 머 그리 대단하노. 제발 고마하고 우리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생각 좀 하자 고마."
"나 오늘 밤 대구 떠난다. 찾지 마라. 핸드폰 끌끼다."
"가스나야, 떠나면, 떠나면 머가 해결되나. 그럼 난 우야라고. 니 그렇게 떠나면 내 하루 하루 온전히 살 것 같나."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무심하게 엎질러놓고 돌아섰다. 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이 남자가 말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내 얄팍한 자존심은 그 어떤 타협도 하려 들지 않았다. 아빠의 죽음이후 거친 사회 생활 속에서 아집만 늘어난 나를 나 자신도 통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나 역시 그를 마음 깊이 사랑하기에 더 이상의 힘겨움을 그에게 줄 수 없었다.
-대구, 아홉시 삼십분 대구 표 가지신 분들 이쪽으로 오세요!
화요일 평일 오전인데도 시외버스 터미널 안이 혼잡하다. 지난 며칠 새 꺼 놓았던 핸드폰 전원을 켤 까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켜리라 생각했다. 분명히 지훈씨와 엄마의 음성메시지가 들어와 있을 것이다. 아예 버스에 올라 타 편안한 마음으로 확인도 하고 통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거야... ... 살아 있는 한 또 어떻게든 살아내는 거야... ...
마음을 다 잡고 나니 막혔던 가슴이 뚫린 듯 했다. 며칠 간의 여행에 대한 변명도 할 겸, 아이들 같은 유치한 생각이지만, 조금은 깜짝 놀래 주고도 싶었다. 의자에 앉아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있노라니 개찰구 쪽에서 한 사내가 소리를 친다. 일어나는데 쇼핑백이 바스락인다. 엄마에게 주려고 산 조개 껍질이 동그랗게 둘러진, 여닫이 상자가 달린 접이식 화장 거울. 엄마에게 언제 선물을 주었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무심하게 살아 온 지난날이었다. 커다랗고 예쁜 장식의 화장대 거울에서 화장을 하며 살아 온 엄마가 어느 날부터 손바닥만한 플라스틱 손거울을 보며 얼굴을 만지고 새벽에 나갔다. 그 때 마다 돌아누워 모른 척 했다. 불쌍한 엄마. 하지만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눈물을 흘린다 한 들 엄마보다 더 슬플 수는 없을 것이었다.
3.
대곡역을 지난 전철이 중앙로역을 향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아직 고등학생인 명아에게 핸드폰은 안된다며 그렇게 말렸더니 어느 날 갑자기 두 개의 핸드폰을 들고 온 사람이었다. 자기와 똑 같은 디자인에 핸드폰이었다. 세 개의 핸드폰 뚜껑 안에는 우리 가족의 조그만 사진이 제 각기 붙어 있었다. 그런 핸드폰을 보는 순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그 때 그렇게 못 이기는 척하고 받아 들였던 것이 오늘까지 이렇게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사진 속에 그 사람은 여전히 나의 전부인 모습으로 웃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명아가 눈부시리 만치 해 맑은 모습으로 그 사람과 나의 사이에서 미소 짓고 있다.
"아제요, 이 번호가 몆등인교?"
"어데요. 함 봅시다... ....아이고마, 이거 2등 아이가 2등!"
"2등이요?"
"이 번호 2등이라요. 근데 이거 영수증은 어데 있습니껴?"
"영수증.....없어요....울 아가 이런 번호 확인 좀 해 달라카기에...."
"아줌마요, 이거 번호 확실하면 2등 맞심더. 2등이면 4억이 넘어예 4억이."
"아니라예, 아무래도 내가 번호를 잘 못 받아 온 거 같아예."
어느 날 갑자기 지훈이에게 명아가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몹쓸 년이라는 생각에 잠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깟 돈 몇 푼 더 불리겠다고 사채하는 계장에 명아의 모든 것을 덥썩 맡긴 내가 몹쓸 년이었다. 내가 죽일 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님이와 명아 친구 집을 돌다가 아픈 다리를 쉬는데,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신기한 일
이었다. 배가 고파 빵이나 한 조각 먹으러 들어 간 편의점에서 기분 풀이라며 정님이가 사 주어 서로 한 장 씩 나눈 것이, 숫자를 적어 넣는 복권이 당첨 된 것이다. 오죽 답답하면 꽁꽁 언 마른땅을 팔까 하며 새벽 식당 일을 마치고 나오다 편의점에서 그만 당첨을 확인하고 말았다. 부끄러운 마음에 오전이라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서 가게에 붙은 당첨 번호들을 보는데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 했다. 2등과 내 번호가 영락없이 같은 것이었다. 너무도 놀란 가슴에 벌벌 떠는 손으로 종이에 옮겨 적어 주인에 내 밀었다. 주인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정색을 하였다. 계속 잘 못 적었다며 손사래를 치는 채 가게문을 나서는데 주인이 나를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가슴에 두 손을 얹은 채 도망치듯 거리를 마구 걸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
그 사람의 죽음 이후 다시는 들치지 않으리라던 앨범을 꺼내었다. 여전히 옛날의 그 행복했던 때의 모습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웃고 있는 그 사람이었다. 죽어서라도 나와 명아를 지킬 것이라던 사람. 마지막 가는 길 그리 가쁘게 헉헉대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사람이었다. 그래,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에 이렇게 커다란 선물을 줄 사람이 없었다. 아니, 우리 명아에게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줄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이제 멀잖은 날 그 사람에게 미련 없이 가야 할 내게 이런 선물은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것이었다. 그 사람이 준 이 선물은 내가 아니라 우리 딸 명아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홀가분하게 자기에게 오라며 이 세상의 나에게 마지막 주는 선물. 그리고 우리 소중한 딸 명아에게 주는 선물.
은행에 전화를 하여 보니 액수가 커서 직접 와야 한다고 했다. 그 사람과 명아와 내가 마지막으로 찍었던 가족 사진 뒤에 복권을 고이 넣었다. 내일 서울을 가야는데 도저히 이것을 나 혼자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정님이를 만나 다시 집에 들려 함께 가지고 가리라 생각하며 넣어 두었다.
-이기 머고!
핸드폰을 만지며 생각에 빠져 있다 노인네의 큰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타는 냄새.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창 밖을 보았다. 전철이 중앙로역 구내로 접어들고 있다. 불 빛. 건너편에 서 있는 전철에서 버얼건 불빛이 보인다. 역구내가 온통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차고 있다. 일어섰다.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일어섰다. 역하게 목을 찌르는 냄새가 차안을 밀고 들어온다. 차가 선다. 문이 열리는 가 싶더니 바로 닫힌다. 목을 찌르는 역한 연기가 차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같은 칸에 있던 남자가 문을 열려 했지만 열리지 않는다. 다른 편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들 뒤로 불이 보인다. 시커먼 연기가 사람들과 함께 밀려온다. 앞자리에 있던 여자가 안고 있던 아이를 옷으로 감싼다. 불 켜! 전철 안의 전등이 나간다. 비명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불길이 다가 온다. 쿨럭 쿨럭. 목이 막힌다. 웨에엑! 누군가 구역질을 한다. 죽음. 갑자기 죽음이 보인다. 발로 어딘가를 차는 사람. 누군가 민다. 쓰러지는 내 머리에 새댁의 반찬 통이 닿는다. 엄마! 엄마! 살려 줘요. 숨을 못 쉬겠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금 사람들 숨이 넘어 가고 있어요. 빨리! 어디예요. 악! 아빠 구해 주세요. 살려줘요. 문이 안 열려요. 어머니,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오빠, 사랑해요. 여보, 여보 나 좀 살려줘요, 나 좀 살려줘요. 아-아-악. 제발 문 좀 열어 줘. 으-아-아-악. 흑흑흑. 살려 줘, 살려 줘요, 제발 누가 좀 살려 줘요. 아-아-악! 아무 것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쓰러진 등을 밟는다. 저 편에서 뱀같은 불길보다 검은 재가 먼저 온다. 가슴이 막혀 온다. 옷을 뒤집어쓴다. 죽음. 죽음이다. 나갈 수가 없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 명아. 뚜껑. 불빛. 핸드폰 불빛에 검은 재가 떠돈다. 그 사람이다. 명아다. 누른다. 받지 않는다. 명아야, 제발, 제발, 명아야. 시간이 너무 길다. 가슴이 막혀 온.. 음성 메시지. 명아야.......... 엄......마다....... 내 ..... ....... 들어라...... 앨범 가족........ 사.....진..... 뒤......선물이....... 아빠가...... 너에게 주는....... 엄.....마가..... 너에게..... 마지막 주는........ 선물이다......... 명아야....., 엄마다...... 엄마.....를....... 용서.......해......주렴.......... 불빛. 핸드폰 불빛에 떠도는 검은 재덩어리가 목구멍을 넘어간다. 뜨거운 냄새. 살 타는 연기. 움직일 수가 없다. 위로 계속 눕는 사람들. 죽음. 움직일 수가 없다. 흐리다. 생각이 없어져 간다. 털털하니 웃는 그 사람. 탐스럽고 소담한 웃음을 까르르 터트리며 내 품으로 달려 오는 우리 예쁜 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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