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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자 : 2023. 10. 13 - 10.15 (2박 3일)
2. 여행지
가. 포항 : 호미곶. 오어사
나. 경주 : 기림사. 골굴사. 문무대왕룽. 감은사지. 석굴암. 불국사. 남산(금오산). 대릉원. 첨성대.
o 남산 산행(11km/ 4시간30분 : 통일전- 칠불암-이영재- 용장골삼층석탑- 금오산(정상)-상선암-삼릉)
다. 예천 : 석송령. 금당실. 초간정. 용문사. 회룡포. 장안사.삼강주막
3. 누구랑(3명) : 천장문님. 백영곤님. 정옥삼
4. 포항 명소 해설
가. 호미곶
o 호미곶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동해면, 호미곶면에 속하며 서쪽은 영일만,
동쪽은 동해에 접한다. 공개산(214.6m)이 주봉을 이루는 산계가 동북 방향으로
이어져 북동부의 호미곶에 이른다.
o 해안은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며, 이곳에서 구룡포에 이르는 해안에는 대단히 모식적인
해안단구가 발달되어 주로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o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며,
호미곶 등대로도 유명하다.
나. 오어사
o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며.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하여 항사사(恒沙寺)라 하였다.
o 그 뒤 신라 고승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이 함께 이곳의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방변(放便)하였더니
고기 두마리가 나와서 한마리는 물을 거슬러올라가고 한마리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올라가는 고기를 보고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하였다는 설화에 의하여 오어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o 유적에 의하면 자장.혜공·원효·의상의 네명의 조사가 이 절과 큰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절의 북쪽에 자장암과 혜공암, 남쪽에 원효암, 서쪽에 의상암 등의 수행처가 있었으므로
이들 네 조사의 행적과 연관짓고 있다.
o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한전(羅漢殿)·설선당(說禪堂)·칠성각·산령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을 제외한 당우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이 절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대사의 삿갓이다.
4. 경주 명소 해설
가. 문무대왕릉 : 626- 681년
o 문무왕(신라 30대왕)은 무열왕과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o 나당 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을 멸망시킨후 당나라는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의 전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격퇴시키고
676년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o 사후에도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고 동해의 바다에 모시도록 했다.
나. 감은사지 : 사적 제31호
o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완성함
o 문무왕은 해변에 절을 세워 불력(佛力)으로 왜구를 격퇴코자
절의 이름을 “진국사”라 하였으나 절이 완공되기 전에 병이
들어 승려 지의법사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다“ 고 유언 한뒤 죽었다.
o 이에 따라 화장후 유골을 대왕암에 장사지냈으며
신문왕이 부왕의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感恩寺)라 명명하였다
다. 감은사 삼층석탑 : 국보 제112호
o 13.4m 높이에 기단2층. 몸체3층의 삼층석탑으로 분황사탑을
제외하면 가장크며 동서양탑이같은 규모와구조를 이루고있다
o 장중하면서도 기운차고 전체적인 비례가 조화를 이룬다
라. 석굴암 : 국보 제24호
o 석굴서원은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당시 재상이던 김대성이 창건
o 김대성은 "삼국유사에 연기설화"가 있다.
- 김대성은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매일같이 끼니를 걱정하며 살다가.
전재산을 시주하자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시주하고 몇달지나 김대성은
세상을 떠났다.
- 그후 김문량의 집에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 손에는 "대성"이라는 두글자가
새겨진 금잔자가 쥐어져 있었다.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전생의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살았다.
- 이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전한다
o 석굴암은 돌을 쌓아올려 인공적으로 석굴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일한
인공석굴이다
o 석굴암 본존불 : 1.58m의 좌대위에 3.26m의 거대한 규모이며 단단한
화강암으로 조각하였다.
마. 불국사 : 사적 제502호
o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당시 재상이던 김대성이 창건
o 국보 7점과 건축적 조형미는 물론 그 기법이 매우 독특하여 신라 석조건축의
높은 수준보여줌
1. 청운교. 백운교 : 국보 제23호
o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2. 연화교. 칠보교 : 국보 제22호
o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고. 극락세계를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한다
o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3. 다보탑 : 국보 제21호
o 다보탑은 4각.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하였다
4. 석가탑 : 국보 제21호
o 석가탑은 민간설화로 전해 내려온 석공 아사달과 그연인 아사녀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3층석탑
5. 무구 정광 대다나리경 : 국보 제126호
o 1966년 석가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탑속에서 나온 세계에서 가정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 정광 다다리니경" 이 발견 되었다.
6. 비로전 : 국보 제27호
o 비로전의 "금동 아미타 여래좌상" 국보 제27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o 신라 3대 금동불상중 하나 : 불국사 극락전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26호)과
경주 백률사의 금동 악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이 있다.
7. 극락전 : 국보 제26호
o "금동 비로자나불좌상"이 국보(제26호)이며 양감과 적절한 신체비례 등이
세련된 불상
8. 관음전
o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성전이며 정면 3칸. 측면3칸의 장방형
건물로 내부에는 4개의 안두리 기둥이 있고 다포식의 사모지붕
바. 대릉원과 천마총
1. 대릉원 일원 : 사적 제512호
o 신라시대의 고분군으로 평지에 자리잡고있으며 독특한 무덤군이다
o 총면적은 약181,627평으로 신라시대의 왕.왕비.귀족 등의 무덤50기가 모여있다
2. 천마총
o 황남동 제155호분으로 1973년도에 발굴 조사를 하던도중 금관.팔찌. 등의 유물이 발견됨
o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천마) 그림이 출토되여
천마총이라고 함
사. 경주 남산 : 국립공원 2호(1968.12.31일 지정)
o 경주시에 있는 불교 유적과 관련된 산이다. 정상은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하며,
북쪽 금오산과 남쪽 고위산 사이의 산들과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 한다.
o 금오산 높이는 468m, 남북의 길이는 약8㎞, 동서의 넓이는 약 4㎞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임을 갖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했다고 하여 남산에 얽힌
전설과 영험의 사례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o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이며, 불교가 공인된 528년(법흥왕 15)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숭되어 왔다.
o 남산엔 국보는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미륵골(보리사)석불좌상, 용장사곡 삼층석탑,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등 보물 11개 있다
아. 칠불암 마애불상군 ; 국보 312호(2009.9.2일)
o 통일신라시대의 7개의 마애불상군이며 암벽에 삼존불상이 있고 그 앞 바위에 사방불이 있다.
o “삼존불상”은 본존불(항마촉지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협시보살은 본존을 향해 서있다.
높이 5미터, 너비 8미터쯤되는 바위의 동쪽 면에 고부조로 새겨져 있다.
o 사방불은 네모진 기둥모양의 돌 네면에 불상이 조각되어있는데 모두 연꽃 대좌 위에 보주모양
두광을 갖추고 가부좌를 튼 좌상이다.
이 형상은 각 방위를 주재하고 있는데 이곳의 사방불은 이후 전개될 석탑 사방불의 조형이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큰 조각사적 의의가 있다.
자.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 보물199호
o 칠불암 삼존불의 배경이 되는 바위의 높은벼랑위에 있다.
o 서라벌 벌판이 한눈에 펄쳐져 가슴이 확 트이는가 싶더니 뒤돌아서 보살상과 마주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o 보살상은 높이 1.4m이며. 삼면보관을 쓰고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위의 세계에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o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臺座)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o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갖춘 광배(光背) 자체를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차. 용장사곡 삼층석탑 : 보물186호
o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o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o 350m 높이로 산전체의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위층 기단이 올려져있는 높이4.5m의탑
o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카. 삼릉계곡 마애 석가여래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o 상선암에서 150m 올라가면 거대한 자연암반높이 9m에 높이7m, 너비 5m의 바위벽에 새겨진 불상으로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적으로 깊게 조각한 반면, 몸체로 내려올수록 얕은
선각(線刻)으로 조각한 특이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o 오른손은 위로 들어 가슴 부분에 놓고 왼손은 다리 위에 놓아 선정인(禪定印)의 자세로 둥글게 모았다.
결가부좌한 다리에는 나선형의 옷주름이 일률적으로 새겨져 있다. 몸의 윤곽이나 부피감은 거의
표현되지 않았고, 수법도 투박하고 형식적이어서 원형의 얼굴조각과는 대조를 이룬다.
o 발밑에는 음각된 단판의 올림연꽃으로 대좌를 형성하였다.
거대한 자연석에 조각되어 선각임에도 당당한 불신에 위엄이 느껴진다. 이러한 불상 형식은
고려시대의 거불상표현으로 이어져 토착적인 조각 전통을 보여준다.
타.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 보물 666호
o 불상 높이 142㎝, 대좌 높이 96.7㎝. 원래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광배가 크게 파손되어
윗부분이 3분의 1 정도 결실된 상태로 불상 대좌 뒤쪽에 방치되어 있다.
o 연화대좌는 투박하게 팔각으로 깎은 하대석과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긴 중대석을 놓고
그위에 화려한 보상화 연꽃을 올려놓았다. 연꽃은 수미산위에 핀 하늘의 꽃송이 인것이다
o 안상이란 귀인들이 앉는 평상을 말하는것이니 종대석 위는절대적 존엄한 세계라는 뜻이다.
파.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 지방유형문화재 제21호
o 넓은 바위에 선각(線刻: 선으로 새김)의 마애불상군이다.
o 동쪽 바위면에는 설법하는 석가모니 삼존불을 새기고
서쪽 바위면에는 아미타삼존불을 새겨 현생과 내생을 나타냄
o 바위 윗면에 목재를 결구한 흔적과 빗물이 건물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길이 있어
목조전실이 있었음을 추정함
하. 삼릉 : 사적 제219호
o 남산(南山)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리고 있다.
o 서쪽으로부터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릉으로 전하고 있다.
o 삼릉 주변엔 “아름다운 소나무 숲”유명하다...
5. 예천 명소해설
가. 석송령
o 석송령은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소나무이다.
o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되어 있다.
o 석송령이 위치한 주변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700년 전 경북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현재 석송령이 있는 마을을 흐르는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건져서 현재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o 1930년 마을주민 이수목(李秀睦)이 이 나무에서 영감을 느끼게 되어 석송령이란 이름을 지어 주고
자신 소유 토지 6,600m²를 이 나무에 상속시켜 문서 등기를 마치면서,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고,
세금을 내게 되었다.
나. 금당실 마을 : 전통이 살아 숨쉬는 마을
o 감천 문씨가 개척을 시작해 그의 사위 박종인과 변응영이 정착하여 지형을 보니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옆으로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 연화정수형으로 연못 속에 핀 연꽃과 같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o 마을의 돌담들은 일부 허물어지기도 했지만 초록의 이끼가 끼어 더욱 멋스럽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장소로도 애용되고 있다.
o 서울 나들이가 잦고 맛질 권경하의 집에 놀러갈 때에도 그 행렬이 한양 왕가의 것과 같았다 해서
‘금당맛질 반서울’이라는 전설을 남겼던 세도가 이유인이 살았던 99칸 저택은 모두 없어졌지만
그 터와 돌담만은 남아 있을 정도로 금당실마을의 자랑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돌담이다.
o 예천 권씨 고택을 비롯해 반송재 고택, 사괴당 고택 등의 고가옥과 금곡서원 등의
전통 건축물도 만날 수 있다.
다. 초간정
o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1582년(선조 15)에 말년의 생활을 보내고자 원림을
조성하면서 함께 건립하였다. 당시의 이름은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불렀는데,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이 지었다.
o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1626년(인조 4)에 권문해의 아들인 죽소(竹所) 권별(權鼈)이
다시 건립하였는데, 이 역시 화재로 불타고 말았다. 오랫동안 고치지 못하였다가,
o 1739년(영조 15)에 현손인 권봉의(權鳳儀)가옛 터에 집을 짓고는 바위 위에도 정자 3칸을 세웠다.
라. 용문사
o 용문사는 용문산(龍門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두운"이 창건한 사찰.
마. 회룡포 (回龍浦)
o 회룡포는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일대에 있는 농촌마을이자 관광지이다.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o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건너편에 장안사(長安寺)와 마을을 볼 수 있는
회룡전망대(회룡대)가 있다. 현재 인구 수는 10명 가량이며 농업이 주 산업이다.
o 마을 주변에 내성천을 건널 수 있는 뿅뿅다리라 불리는 철제 다리가 있다.
o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으나 같은 도의 의성군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지금의 회룡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바. 삼강주막 (三江酒幕)
o 예천군 풍양면이 있는 건축물이다. 경북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o 삼강주막은 삼강(낙동강. 내성천. 금천)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o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문무대왕릉 : 626- 681년
o 문무왕(신라 30대왕)은 무열왕과 문명왕후(김유신의 둘째 누이)의 맏아들로.
김(金)이고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o 나당 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을 멸망시킨후 당나라는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의 전지역을 차지하려 했던 당나라의 군대를 격퇴시키고
676년 삼국통일을 이룬 왕이다
o 사후에도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고 동해의 바다에 모시도록 했다.
석굴암 : 국보 제24호
o 석굴서원은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당시 재상이던 김대성이 창건
o 김대성은 "삼국유사에 연기설화"가 있다.
- 김대성은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매일같이 끼니를 걱정하며 살다가.
전재산을 시주하자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시주하고 몇달지나 김대성은
세상을 떠났다.
- 그후 김문량의 집에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 손에는 "대성"이라는 두글자가
새겨진 금잔자가 쥐어져 있었다.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전생의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살았다.
- 이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전한다
o 석굴암은 돌을 쌓아올려 인공적으로 석굴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일한
인공석굴이다
o 석굴암 본존불 : 1.58m의 좌대위에 3.26m의 거대한 규모이며 단단한
화강암으로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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