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시인이 초대하는 동시 세계
『토끼 두 마리가 아침을 먹는다』
이화주 시. 김용철 그림. 상상의 힘
지구별에 와서 70년을 넘게 산 시인 할머니가 동시 세계로 초대한다. 기분 좋은 초대이다. 그간 이화주 동시인의 동시는 작은 생명에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이번 『토끼 두 마리가 아침을 먹는다』 동시집도 작고 여린 생명에 따스한 눈길을 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랑이고, 그 사랑의 증거는 눈물과 웃음이다.(시인의 말) 동시 속에 풍덩 빠져 음미하다보면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다.
하얗게/ 눈 내린 창밖을 보며/아침을 먹는다.//“할머니가 어렸을 때 눈처럼 하얀 토끼를 키웠어./ 당근을 주면 /앞니로/ 이렇게 먹었단다./오도오독, 오독!”//“할머니/이렇게?/오독오독, 오독!/맛있다.”//하얗게 눈 내린 아침/토끼 두 마리/우리 집 식탁에서/아침을 먹는다.//(토끼 두 마리가 아침을 먹는다 전문)
동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이 동시는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게 한다. 하얀 눈 세상이 펼쳐져 있는 아침은 고요하고 신비롭다. 가끔 꿩이 푸드덕 날아오르는 소리 외에는 소리가 몸을 낮추고 있는 순간이다. 식탁에는 할머니와 손주가 아침을 먹고 있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이야기는 어느 결에 할머니와 손주가 두 마리 토끼로 변환하여 맛있게 당근을 먹고 있는 풍경으로 오버랩된다. 할머니의 어릴 적 추억이 언어의 마법이 되어 정겨운 아침 식탁 풍경을 선사한다. 신비한 착시현상은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추억은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우리를 서로 이어준다. 긴긴밤 이야기를 들려주던 엄마를 불러오고, 화롯불에 고구마를 묻어두었다가 호호 불며 먹던 추억도 소환한다.
울다가/생각났다// 눈물이/만약 파란 눈물이라면/노란 눈물이라면/분홍분홍 눈물이라면//생각하다/웃음이 났다.// 맑아서/몰래 울어도/들키지 않는 눈물//맑은 눈물이/좋았다.//(눈물이 맑아서 전문)
시인은 눈물 색깔조차 무심하지 않다. 파란, 노란, 분홍눈물... 시적화자는 눈물이 맑아서 좋다고 한다. 몰래 울어도 들키지 않기 때문이다. 눈물이 천연색을 띤다면 우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울까. 눈물받이부터 준비해야 하리라. 독자들의 생각을 환기시켜주는 시적 상상력이 흥미롭다.
동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학교 간 아이를 기다리며 화장실을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고양이 푸름이의 변을 듣게 된다. (“야옹, 내가 기다린 시간이 얼마나 긴지 알겠지?”)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도 눈사람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심심할 거라는 상상력 발동으로 함박눈은 직접 눈사람을 만든다.(함박눈이 깜짝 놀라서) 함박눈은 빈 상자를 깔고 앉아 있는 아저씨의 머리, 눈썹, 어깨에 내려앉는다. ‘뭐야, 정말 눈사람이 되신 거야?’ 함박눈은 깜짝 놀라서 내리는 걸 멈춘다. 함박눈이 만드는 눈사람은 온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빈 상자를 깔고 있는 아저씨 눈사람은 온기를 지닐 수 없다. 함박눈이 행동 수정을 위해 멈춰야 하는 까닭이다.
수연이는 성민이 창문 아래 몰래 눈사람을 만들고 사탕목걸이를 건다. 하지만 눈사람이 봄 시냇물로 흐르면서 수연이의 비밀도 퍼진다. 눈사람이 있던 자리는 사탕목걸이만 있다.(눈사람의 비밀 이야기) 수연이의 비밀이 능청스러우며 사랑스럽다.
할머니 시인이 초대한 동시 세계는 살아가는 어느 땐가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막을 헤맬 때 작은 우물을 찾아 줄 동시(시인의 말)라는 걸 깨닫게 한다. 행복하다.
출처 : 2023 생명과문학 봄호